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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쪽 나라로 가고 싶어

단편소설 마지막회

by 김설원

난이는 박음질을 하다가 감침질로 바꾼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바늘이 손에서 겉돌고 바늘땀 사이도 배지 않고 뜬다. ‘네가 내 머릿속을 청소해 주면 되잖니’, 작정하고 내뱉은 것 같은 시아버지의 말이 바느질 하는 손을 자꾸만 방해한다. 난이는 골이 삐뚤어지고 땀 폭이 들쭉날쭉한 실을 쪽가위로 뜯어낸 후 처음부터 찬찬히 바늘땀을 새긴다.

“네가 그렇게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네 시어머니가 생각 나. 한쪽 다리를 쭉 뻗고서 바느질하는 모습이 많이 닮았어. 근데 뭘 만드는 게냐?”

“그냥 심심풀이로 꿰매는 거예요…….”

난이가 얼른 다리를 오므리며 말끝을 얼버무린다.

“그거 다 만들면 나 다우. 한여름에 덮고 자면 좋겠다. 그나저나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관장을 하면 어떨까 싶은데…… 벌써 일주일 넘게 변을 못 봤더니 뱃속에 바윗덩어리가 있는 것 같고, 입안에서 똥내가 나.”

난이의 얼굴이 대번 일그러진다. 그날 병원에서 어쩌다 눈에 들어온, 시아버지의 뼈만 남은 앙상한 엉덩이가 하늘하늘한 조각보 위로 떠오른다. 한 달 전 쯤 밥을 먹다 말고 욕실로 들어간 시아버지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배를 움켜쥐고 뒹구는 시아버지를 보자 더럭 겁이 났다. 난이는 얼른 시아버지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갔다. 관장한 후에도 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서 시아버지는 똥독이 오른 얼굴로 고통스러워했다.

“또 병원에 같이 가자고요? 아버지가 죽는 소릴 해도 이젠 몰라요. 그렇게 병원에 가시고 싶으면 잘난 아들딸들한테 전화 하세요.”

난이가 엉두덜거리며 성깔 있게 돌아앉는다. 남편의 밉살맞은 형제들이 눈앞에 아른대자 바늘을 쥔 손이 빨라진다. 난이가 또 한 장의 헝겊을 집어 든다. 방바닥에 흩어진 실밥이 시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 같다. 때마침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한 번 울리고 그치는 벨소리, 경모다. 난이와 시아버지의 눈이 동시에 마주친다. 난이가 조각보를 훌훌 털며 딴청을 피운다. 또다시 벨소리가 들려온다. 경모가 이번에는 한 번 울리면 끊는 신호 따위를 무시하고 휴대전화를 계속 붙들고 있다.

“왜 전화를 안 받냐? 어젯밤에 너랑 통화했던 놈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밤낮 전화질이야.”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아버지의 안광이 날카롭다. 난이가 얼른 휴대전화를 집어 전원을 꺼버린다.

“전화도 못 해요?”

“시아버지 앞에서 다른 놈이랑 전화하는 네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애냐?”

“정신이 똑바로 박히지 않았으니까 이 집에서 여태 살고 있죠. 아이나 있으면 또 몰라. 그이가 숨을 거둔 순간부터 우린 남남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속이 후련하다. 냉정해져야 한다. 시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인정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다. 난이는 주먹을 꽉 쥐고서 후닥닥 집을 나선다.

시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치고 나와서 닿은 곳이 겨우 아파트 놀이터다. ‘지겨워’, 난이는 세 음절의 단어를 독하게 씹어 뱉는다. 낮과 밤이 바뀌었을 뿐 놀이터는 어제 모습 그대로다. 출근 때가 지난 아파트는 우중충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자발스럽게 울던 까치도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어떤 게임의 규칙을 따르듯 난이는 사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 옷차림이 허술한데도 추운 줄을 모르겠다. 시아버지는 지금 청심환이며 진통제를 찾아 먹고 있을 것이다. 난이는 두 팔을 벌려 제 몸을 껴안는다. 앙상한 몸이다. 남편이 영영 떠난 후 홀쭉해진 몸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난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체중계에 날마다 올라섰고, 조금도 늘어나지 않는 몸무게를 보며 단절감을 느꼈다. 과거와 미래는 온데간데없이 추레한 현실만 존재하는 듯한 두려움도 차올랐다.

시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어디선가 걸어올 것만 같아 난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시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외면을 당하든, 그러다 결국 요양원에 맡겨지든 알 바 아니다. 시아버지가, 또는 시댁 식구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머리털이 새카매지는 듯한 시아버지를 떠넘기고서 그토록 성급하게 떠나버린 남편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어디로든 가야겠는데 시소에서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난이는 허벅지에 두 손을 올려놓고서 꽃이 피어난 손톱을 눈여겨본다. 역시 탐스럽지 않다. 일단 네일숍에 가서 이것부터 지워버리자. 난이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자 뭔가 잡힌다. 바늘집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 바늘집이 어느 결에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을까. 난이는 입술을 깨문다. 이백 장의 헝겊을 아직 다 꿰매지 못했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맴돌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난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바늘집 뚜껑을 연다. 은색 바늘 하나가 시아버지의 비명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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