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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안개

단편소설 3화

by 김설원

유파의 본명은 ‘권주옥’이며, 그녀는 우리 외할머니의 남동생이 뒤늦게 얻은 외동딸이었다. 가까운 일가친척이라도 경조사 때나 인사를 나누는 형편이라 ‘외할머니 남동생의 외동딸’은 더더욱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우리는 그녀를 중국에서 처음 봤다. 얼굴은 알지 못해도 심심찮게 나도는 소문으로 우리는 권주옥의 사생활을 웬만큼 알고 있었다. 위해여객터미널에서 언니가 “권주옥 이모님이시죠” 라고 말하며 인사를 건네자, “내 중국식 이름이 유파야. 앞으로 유파라고 불러줘” 하면서 재깍 이름을 정정했다. 자신의 본명을 대놓고 괄시하는 태도였다.

외가 쪽 집안들은 겉으로 보기에 어디 모난 데 없이 반듯했다. 자손들이 하나같이 반반한 직장과 야무진 배필을 얻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은 외가와 무관한 듯했다. 이런 매끈한 집안에 떠오른 돌연변이가 바로 권주옥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병을 앓고 있는 가난뱅이와 눈이 맞아 파란을 일으켰다. 가출을 했다, 동거를 한다더라, 임신을 했다, 기찻길 옆 단칸방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집안이었다면 권주옥이 저지른 ‘비행’은 조용히 묻혔을지도 몰랐다.

친척들이 어쩌다 모이면 그 말썽꾼을 헐뜯다가 가정교육 운운하며 부모까지 싸잡아 무시했다. 그러다 권주옥이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떠난 게 작년 봄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장모를 모시고 살아서, 또 외할머니가 권주옥의 어머니와 친분이 두터워서 그 내막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권주옥의 부친은 관절염, 당뇨병으로 병치레를 하다가 결국 폐렴으로 최근에 숨을 거뒀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외동딸에게 유품을 남겼다고 했다. 물론 권주옥은 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삼복더위에 유품을 들고 중국까지 날아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반드시 직접 전해 달라 했던 망자의 유언 때문에 항공우편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우리 부모는 해괴망측한 고백으로 집안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큰딸을 그 심부름의 적임자로 내세웠다. 나는 언니를 감시하는 경호원 같은 자격으로 한데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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