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지막회
해외 이주는 남편 사망 후 계획한 일이고, 그 설계도에 따라 인생을 경작하고자 아득바득 돈을 모았으며, 위해에서는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택시를 몰며 밥벌이를 한다는 유파의 말을 우리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왠지 숙연해지면서, 유파를 볼 때마다 스며들던 이상야릇한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집을 구하려고 중국을 드나들 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배를 탔어. 탑승자 대부분이 보따리장수들이야. 그들 중에는 한 달 가까이 배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대. 의지가지없는 타국에서 애들이랑 사는데 나라고 왜 겁이 나지 않겠어. 하루에 보통 열두 시간씩 운전을 해. 야간에 차를 몰면서 깜박 졸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죽을 뻔한 적도 있어. 나는 애들이랑 보란 듯 살고 싶어. 아니, 그렇게 될 거야. 자기들이 가져온 유품에 우리 아버지가 들어 있었어. 바다에 뿌리고 오는 길이야.”
갑자기 취기가 올라 어지러웠다. 언니도 순간 당황했는지 유파에게서 눈길을 거둔 채 무생채만 집어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자매는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나무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단단히 포장해 놓은 그것을 단순히 '운반' 하는 것에 목적을 뒀을 뿐이다. 우리 집안의 불화로 언니는 물론이고 나도 머릿속이 어수선해서 한국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어제 우리가 딸자식 때문에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살다가 숨을 거둔 유파의 아버지와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 앞에서 내 입이 더 굳게 닫혔다.
“독한 양반, 알아서 갈 길 가시지 왜 나를 찾아와. 평생 거들떠보지도 않더니……어제 본 칠피구두는 내가 아끼던 신발이었어. 애들 아빠랑 살림을 차리고 보니까 그 구두를 집에 두고 왔더라고. 그 당시에는 친정으로 가지러 갈 처지가 아니었어. 문전박대를 당했으니까. 우리 엄마가 편지를 썼데. 아버지가 당신의 화장한 몸을 나한테 보내 달라고 했다나. 산에 묻지도, 납골당에 들여놓지도 말고 바다에 뿌려 달라면서. 아까 바위에 앉아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아버지를 바다로 보내는데, 가슴에 묵직한 돌처럼 얹혀 있던 만성 체기가 이제야 조금 가라앉는 것 같데.”
언니가 조심스럽게 유파에게 건배를 청한다. 나도 얼떨결에 술잔을 부딪쳤다. 나는 여전히 더운데 언니는 이 후텁지근한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언니가 유파의 찢기고 헐벗은 삶을 목격하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는 부모님의 기대는 확실히 빗나간 것 같다. 앞으로 부모 자식 간의 신경전은 더욱 팽팽해질 테고, 그 마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언니가 선택하려는 삶이 내게는 변함없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데도, 언니가 줄을 놓지 말고 끝가지 버텼으면 하는 이 심리는 또 뭔지 모르겠다. 그때 빼빼 마른 여자애가 자그마한 빨간 기타를 어깨에 메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자애는 노래를 들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음식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내들이 빨간 기타를 불러세웠다.
여자애가 기타를 치면서 중국 노래를 불렀다. 무슨 동요 같았는데 원래 구슬픈 가락인지, 아니면 동정을 사려고 일부터 꾸며 부르는 건지 여자애의 노랫소리가 내 가슴을 적셨다. 유파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바다로 영영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유파는 어떤 작별 인사를 했을까. 나는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말을 맥주와 함께 삼켜 버렸다. 이런 저런 벽에 부딪치면서 심신이 피폐해진 언니가 결국 유파처럼 낯선 나라로 훌쩍 떠나버리지 않을까 싶어 나는 혈육의 팔을 꼭 붙들었다. 여자애가 계속 기타를 치며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까이쓰더, 까이쓰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유파에게 처음으로 들어 익힌 중국어를 속으로 내뱉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