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7화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갖겠다는 거야?”
나의 두서없는 설득이나, 또 권주옥을 앞세운 부모님의 작전에 말려들 언니는 아닌 듯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내가 삐딱하게 물었다. 언니가 배시시 웃더니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다.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길쭉한 바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지금 네 눈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안개 밖에 안 보이지? 안개 속의 실체를 봐야 한단 말이야.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고개를 휙 돌리지 말고, 안개가 걷히기를 차분히 기다리면서…… 어머, 약속 시간이 다 됐다. 빨리 가자. 왕링이 기다리겠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언니는 약속시간을 입에 올리며 얼른 일어났다. 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서. 우리 집안에 자욱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어떤 실체가 드러나는지 잔말 말고 지켜보라는 뜻인가. 현재 언니에게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귀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자식을 뒀거나, 중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겠지. 어떤 사정으로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는 처지라서 결혼은 속박이라는 자기합리화를 내세우며 부모님과 맞서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언니의 견고한 의지가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순간 의심 없이 떠오르는 생각은 이번 방문길에서 언니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내 임무가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왕링은 승용차의 문을 죄다 열어 놓고 뒷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언니가 좀 더 자게 내버려 두자고 했지만 빨리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어 왕링을 흔들어 깨웠다.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는 왕링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번들하다.
“아까 유파 전화 왔었어. 일미식당 오래.”
“일미식당?”
“응, 맛 좋아, 유명해.”
유파가 우리를 불렀다니, 언니와 나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오늘 우리는 왕링의 승용차를 오후 여섯 시까지만 타기로 했다. 그래서 유파의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는 저녁 여덟 시까지 해상공원에서 시간을 때울 작정이었다.
“우리를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내몬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네. 유파가 또 인상을 구기고 있을 텐데 가지 말까? 유파가 만드는 그 우중충한 분위기는 정말 질색이야.”
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대자 언니가 얼른 타라며 내 등을 떠민다.
일미식당은 위해 중심가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내장이나 닭, 오징어 따위를 꼬챙이에 꿰어 구운 꼬치를 즐겨먹는 모양인지 그런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비릿한 냄새가 열기와 섞여 온몸으로 스며든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냄새도 더위를 불러일으킬 수 있구나. 식당 앞에 펼쳐 놓은 파라솔에도 손님이 넘쳐 도로가 시끌벅적하다. 일미식당으로 들어가자 유파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하며 모자를 벗었는데, 앞머리가 눌린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하며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
조선족이 운영한다는 일미식당은 이 일대에서 손꼽히는 집이라고 했다. 순박하게 생긴 종업원이 주방, 카운터,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며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국인이 꽤 많았다. 손님들의 대화 속에 한국어와 중국어가 섞여 있고, 한글 간판도 흔해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실감이 나지 않는다. 유파가 종업원에게 여러 종류의 꼬치를 주문하더니 일단 맥주부터 가져오라고 했다.
“고모님의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러라 했어. 더군다나 우리 아버지의 유품을 보낸다기에 더 강하게 거부했지.”
유파가 말하는 고모님은 우리 외할머니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자식이기를 포기한 유파를 외할머니가 설득한 모양이었다. 유파가 맥주 한 병을 금세 비웠다. 콜라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언니가 맥주를 반 컵이나 마셨다.
“내 시끄러운 과거지사는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 저승사자가 곧 데려갈 남자라도 나는 그이랑 꼭 살고 싶었어. 그게 한 달이든 일 년이든…… 여기서 만난 지인들은 내가 다른 한국 엄마들처럼 아이들 교육 때문에 정착한 줄 알아. 나를 인생 실패자로 취급하는 한국이 지긋지긋해서 건너온 줄 모르고…….”
언니는 유파의 술잔이 비워지면 재깍 맥주를 따르고, 그녀가 잘 먹는 서비스 안주가 떨어지면 종업원을 불러 빈 접시를 채웠다.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