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세례자 요한은 매우 금욕적인 도덕 선생이었습니다. 옛 선지자 엘리야를 연상케 하는 차림새에 민중과 물리적으로 격리된 생활. 따라서 민중이 요한과 그의 제자단에게 취한 태도는 참여라기보다는 동조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두개파처럼 야비하거나 바리사이파처럼 위선적이진 않았지만, 민중 입장에서 그는 함께하기에 버거운 지도자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는 민중 속으로 깊이 들어감으로써 요한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역사적 예수와 신화적 예수의 중간지대에는 윤색된 예수가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아버지는 다윗의 혈통이라 적었고, 루카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론의 후손이라고 암시했습니다. 전기문을 쓰는 이들의 가치관에는 예수가 왕의 혈통이자 제사장 혈통이란 ‘자격’이 중요했고, 이 점은 고스란히 그리스도교의 한계로 작용합니다. 엘리아의 환생이라는 세례자 요한은 제사장의 혈통이었으므로, 루카는 이 점을 이용해 요한과 예수를 모계 친척으로 설정했습니다. 예수는 공생활 직전에 세례자 요한에게 제 발로 가서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둘이 사제지간이었거나 율법을 논하던 막역한 사이였음을 뜻합니다. 역사적 예수를 언급할 때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과의 관계가 항상 첫 장면을 차지합니다.
예수의 성장기 정보는 지나치리만큼 알려진 게 없습니다. 열두 살 무렵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는 일화(루카 2:41-52)가 고작입니다. 이 일화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성장기 예수의 면모가 조금이나마 드러나 있는 셈입니다. 어른, 그것도 율법 권위자들 앞에서 고분고분 수긍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펼쳐가며 따졌다는 뜻이니까요.
예수의 20대 청년기 정보는 아예 없습니다. 예수가 군중의 눈에 띄었을 때, 그는 이미 30대 초반 또는 중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30대 연령은 장년이지 청년이 아닙니다. 세포리스 요새 건축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도에 다녀와서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었을 거란 의견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율법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유 방식의 토대를 닦은 시간이 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혈통이 다윗과 연결되었는지 아론과 연결되었는지 여부는 유대민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훗날 형성된 그리스도교 교리가 유대교 바리새파 출신인 바울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왕의 혈통, 제사장 혈통은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분파 성질을 띠게 하는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유대 여호와 신앙의 편협과 자아도취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말았습니다.
대중에게 드러난 예수는 율법을 따르되 형식주의에 갇히지 않고 본질과 본의에 입각해 해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 판사와 헌법재판관에게 필요한 덕목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할까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헌금하라.”
“너희 가운데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예수의 공생활은 유대인에게 국한되어 있다시피 했지만 드물게 이방인과 함께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두 가지 일화가 언행록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마크에 의한 언행록(막 7:24-30)에 있습니다.
그리스인으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인 여인에게 더러운 악령에 든 딸이 있었습니다. 딸에게 붙은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에게 예수는 매몰차게 대답합니다.
“자녀부터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에게 줄 빵을 집에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이때 여인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네가 그렇게 대답하니, 가 보거라. 악령이 이미 너의 딸에게서 떠나갔다.”
딸의 병이 나은 이유가 ‘그렇게 대답해서’입니다. 이방 여인의 믿음이 갸륵해서 예수가 병을 고쳤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믿음 자체가 병을 낫게 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마태와 루카에 의한 언행록에 있습니다.
어떤 로마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은 백부장이 평소에 유대민족을 너그럽게 대했고 회당을 지어주기도 한 사람이니 도와주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가 그의 집에 가려 하자 백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제 하인을 낫게 해주십시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으로 수하에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여기서 주님 즉 ‘퀴리오스’는 존칭어로서 힘, 권위를 뜻하는 퀴로스에서 유래했습니다. 백부장이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예수에게 정중한 칭호를 사용한 것입니다.
“가시오. 그대가 믿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낳은 이유가 이번에는 ‘믿은 그대로’입니다. 로마 백부장의 믿음이 갸륵해서 예수가 하인의 병을 고쳤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믿음 자체가 병을 낫게 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크, 마태, 루카 등 언행록의 기록자들 모두 병이 나은 이유를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병든 사람들이 예수의 옷자락에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병이 나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방여인과 백부장은 병자 본인이 아니라 애매하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백부장의 하인 일화에는 독특한 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등 식민지에 주둔하던 로마 장수 가운데에는 동성 애인을 동행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끼는’이라는 수식어라든지 ‘집에 모실 자격’ 운운하며 방문을 기피하는 장면도 그런 생각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의 유일신 신앙에 우호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유대민족이 동성 간의 연애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공생활 기간에 예수는 자신을 유대민족이 대망하는 메시아로 인정하는 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죽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대언자 중의 하나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뒤에 예수는 민족을 해방시킬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미움을 받고 배신당하고 고난 끝에 죽고 마침내 부활할 거라고 말합니다. 언행록들이 기록된 시점은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된 뒤이므로 이 일화는 가공일 가능성이 높지만, 군중의 메시아와 예수의 메시아가 서로 달랐음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 언행록을 집필한 작가들의 목적은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고 글을 쓰는 본인들도 마음을 굳게 먹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복음서들은 각각의 장르 특성이 어떻든지 간에 인생을 다룬 문서이기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예수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죽음의 날이 다가옴을 예측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빵은 내 몸이요 술은 나의 피”라는 비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유언은 그리스도교의 성찬식 풍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함께 모여 식사할 때마다 이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새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죄의 용서라는 종교적 관념에 얽매이고 고대인의 희생제물 관습을 답습한 나머지, 인간 예수가 ‘마지막 만찬’ 때 남긴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할 때마다 ‘몸과 피로 맺은’ 이 계약을 기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일상을 쇄신했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는 속물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었을 때, 그 행위가 종교지도자들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일임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의 행적은 정작 로마 제국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중을 선동하지도 군사를 모으지도 황제나 총독의 정책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 그는 자기 민족을 해방시킬 만한 그 어떤 것도 지니지 않았습니다. 체포당했을 때도 그는 제자들의 안전을 챙겼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체포하러 온 병사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 입혔을 때 그는 얼른 치료에 나서 제자가 함께 체포당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때 남긴 유명한 교훈이 바로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입니다.
반면,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목회서한과 요한계시록 속의 예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역사적 예수에서 신화적 예수로 확실히 넘어갔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교조敎祖의 인간적 면모를 아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는 인간 예수와 신성한 예수를 모두 취하기 위해 삼신 체계에서 차용한 삼위일체 개념을 교리로 정립했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 가운데 어떤 것들은 창조주 하느님을 감정적인 인격신으로 끌어내린 유대의 전통적 오류에 ‘또 하나의 하느님’인 성자를 덧붙이는 모순을 더했습니다. 또한 우주의 신성과 개인의 신성이 교감하는 성령의 역사마저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현상으로 오해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많은 분파는 배타적 다신교처럼 변질된 채 2000년 가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느님은 존재의 근원이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의 참된 일치가 무엇이며 하느님의 대리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삶과 죽음으로써 보여준 사람이고, 성령은 하느님과 인간 개인이 서로 통할 수 있는 ‘생명의 핵’입니다. 이 정도로만 이해해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어 하느님 나라의 신령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