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삶은 ‘기쁜 소식’이란 말로 요약됩니다.
로마 제국의 왕족과 귀족은 후계자가 될 사내아이의 탄생을 ‘기쁜 소식’이라 불렀습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 그의 제자들은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나는 다윗 왕의 후계자 즉 ‘유대인의 왕’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의 후계자 즉 ‘민족 해방의 지도자’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훗날 신화적 예수로 넘어가서는 우주의 주재인 하느님의 후계자이자 인류 해방의 지도자로 확장됩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가 다윗처럼 유대인의 왕으로서 또는 모세처럼 민족 해방의 지도자로서 자신들을 로마 제국의 모욕과 압박으로부터 구원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수에게선 개혁가 특유의 강렬한 기운이 있었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어 가는 곳마다 기적의 소문을 끌고 다녔습니다. 기대에 들뜬 군중은 열광했습니다.
예수의 활동은 민중 경제에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인 헤롯 가문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규모로 개축했고, 예루살렘은 수로, 극장 등이 건설되며 도시화를 이루어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었습니다. 헤롯 가문은 이스라엘 영역이 아닌 도시에도 웅대한 건물을 건설하고 미개지를 개간하여 땅이 없는 사람을 정착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헤롯 가문은 어느 정도 합법성을 얻었지만, 막중한 노동과 세금은 민중의 저항과 원망을 샀습니다. 세금징수원들은 매국노로 취급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빚진/죄지은 자들을 우리가 탕감하듯이/사하듯이 우리의 빚을 탕감해/사해 주소서.”
주기도문의 한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는 민중의 죄의식과 경제적 곤궁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부자에게는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분배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심적 물적 채무를 탕감하여 빚을 무효화시키기를 권고했습니다. 설교를 들으러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음식의 나눔으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민중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유형의 메시아에게 점점 열광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분명히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가 갈릴래아 지방 나사렛 출신이란 점도 혁명 측면에서 ‘기쁜 소식’이 될 만했습니다. 나사렛은 요새 도시 세포리스 가까운 곳에 위치했습니다. 기원전 4년, 헤롯 대왕이 죽자 유다라는 사람이 이곳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세포리스는 로마 군대에 진압되어 초토화되었고, 나사렛은 반역자들이 사는 곳으로 천대받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요한 1:4) 훗날 제자들의 공동체는 ‘나사렛 이단’이라는 멸칭으로 불렸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나기 전 100년 동안 가나안과 유대지방은 가뭄, 태풍, 지진, 전염병, 기근 등 일련의 재해를 겪었습니다. 예수가 목자 없는 양떼처럼 시달리며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설교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그의 출신에 대한 소문도 뒤따랐을 것입니다. 그는 작고 보잘것없는 고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했고 독립운동의 기운이 식지 않은 나사렛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를 따라가면 더는 헤매고 떠돌지 않아도 되고 더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궁극은 민생입니다. 예수는 민생의 구원자 측면으로도 ‘기쁜 소식’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죄의식을 다룸에 있어서도 예수의 처신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후대가 ‘팍스 로마나’라고 기록하는 권력에 의한 거짓평화를 선전하며 ‘영광’을 외쳤고, 유대 전통은 율법을 따라 소나 양, 염소 같은 동물의 피를 정결의 조건으로 요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유보 조항에 따라 비둘기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이는 빈부 차별의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제사에 쓰일 동물을 키우는 업체마저 뇌물을 바친 가문에게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중앙 사제들은 농민을 착취하던 대지주이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민중에게 물세례는 기득권의 부패에 저항하는 의미마저 띠게 되었습니다. 구조적 모순 속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민중에게 사회는 죄책감마저 떠안겼습니다. 제사도 제대로 못 드리는 비천한 계급. 물세례는 그들에게 경제적 부담과 죄의식 양쪽에 탈출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민중이 열렬히 환영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을 비롯한 지역사제들이 택한 물세례 정결 의식을 수용했습니다. 이 물세례는 훗날 성찬식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양대 의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예수 언행록은 다양한 문학 형식으로 서술되었습니다. 마크(마르코, 마가)의 이름으로 정리된 문서는 약간의 허구를 섞은 다큐멘터리이고, 마태와 루카의 이름으로 정리된 문서는 전형적인 전기문학입니다. 특히 요한의 이름으로 정리된 문서는 감정이입과 상상력이 백분 발휘된 영성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토마스(도마), 베드로, 야고보 등의 이름으로 정리된 언행록도 각각 개성과 특징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으로서 뺄 수 없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사실 지금도 논란 속에서 보완되는 중입니다. 그리스도인조차 예수가 부활한 육체로 대기권을 벗어나 하늘 어딘가로 갔다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저 ‘신앙의 신비’라는 말로 설명을 기피할 뿐이죠.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식으로 인간의 속성을 양분하는 사고방식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육체를 떠나버린 영혼이 이미 사라진 육체를 재구축하면서까지 굳이 되돌아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씨앗은 죽어 있는 듯 보이지만 조건이 맞으면 싹을 틔워 식물로 자라납니다. 달걀은 죽어 있는 듯 보이지만 조건이 맞으면 부화하여 닭이 됩니다. 어쩌면 인체에 호흡이 끊기고 혈류가 멈추고 살이 썩고 불에 타도 소멸되지 않는 요소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다른 종교에서 말한 ‘아트만’과 ‘무아’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부활은 천사와도 같은 몸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고 언행록(마태, 루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사망 이후 2000년 가까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 현상이 예수의 소식이 전해진 곳마다 따라다녔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신성과 우주의 신성이 만나는 현상. 빛과 자유와 각성이 예수가 떠나고 없는 시간과 공간을 메워 왔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부활 교리에 얹혀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영생과 영벌 등의 고대 다신교의 개념이 구원론을 등에 업고 유대인의 선민사상 못지않은 기독교인 선민사상이 유입되고 맙니다.
일례로, 본래 16장 8절에서 끝나던 마크의 복음서에는 9절부터 20절이 덧붙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끔찍한 구절이 파견 명령 뒤에 붙어 있지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가 자기를 믿고 세례의식을 치른 사람만 구원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한다고 말했다는 거짓말을 슬쩍 갖다 붙였습니다. 예수가 온 생애를 다해 전한 다양한 기쁨을 선민사상으로 변질시킨 기독교는 기쁜 소식을 더 이상 기쁘지 않은 것으로 바꿔 전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