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민족은 고대의 여러 제국에 저항하며 성립된 부족 연맹체입니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추정되는 수메르를 비롯하여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제국에 지배당하거나 저항하던 여러 부족으로서 유일신 신앙 체계를 발전시키며 민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에덴(에딘), 시날(수메르 지역), 바벨(바빌론), 에렉(우르크), 우르(우르), 악갓(아카드), 갈레(니므롯) 등 『창세기』에 등장하는 도시들도 그와 같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도입부와 메소포타미아 지역 창세 설화 중 가장 오래된 문서의 도입부를 비교해 봅시다.
“높은 곳에는 하늘이 정해지지 않고 대지에도 아직 이름이 없었을 때, 모두를 창조한 태고의 아버지 아프수와 어머니 혼돈의 티아마트가 있었는데, 그들의 물을 섞어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유일신 사고 체계에 맞춰 다음과 같이 교정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으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느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여기서 ‘영’으로 번역된 낱말의 히브리어는 ‘루아흐’로 숨(호흡)이란 뜻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이 6일에 걸쳐 말씀으로 창조를 진행하고 7일째에 쉬셨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들은 이 부분을 창조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경향이 강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낱말은 “쉬셨다”입니다. 휴일 없이 살았던 히브리인의 조상들은 7일 간격의 휴일 풍습을 정착시키기 위해 안식일 신화가 필요했습니다. 이 핵심을 간파한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비옥한 초승달’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풍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선악, 귀천, 좋고 싫음, 높고 낮음 등 분리와 차별의 문명이 발생하고 변화하면서 자연도 점점 황폐해졌습니다. 에덴동산 설화는 메소포타미아 일대가 풍요롭던 시절의 기억이 반영된 것으로서 풍요를 상실한 집단 기억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 설화를 통해 우리는 고대 사회에서 농경 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에 권력 불균형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이 두 아들 이야기를 넣기 위해 첫째 아들로 전해져온 세스(Seth)를 셋째 아들로 교정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빌론에 존재했던 지구라트 또는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건물’이란 뜻의 에테메난키는 바벨탑 설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높이가 100미터에 달했고, 언어가 서로 다른 여러 민족이 그 공사에 동원되고 그 일대에 모여들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명멸해간 제국들이 숭배한 최고신의 이름은 마르두크였습니다.
히브리인을 이야기할 때는 아브람을 빼놓을 수 없고, 아브람을 이야기하려면 수메르 왕조를 비롯한 근동 제국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수메르 문명은 역사 즉 기록이 남은 시기 이전까지 언급하자면 기원전 5000년을 논해야겠지만 왕조를 언급할 때는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초기 왕조(BC 2900?~2350?)
아카드 왕조(BC 2350?~2150?)
우르 왕조(BC 2112?~2004?)
서기 9세기 문서인 히브리 마소라 본문에 따르면,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아브람은 수메르 제3왕조 즉 우르 왕조 때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본래 특정인이라기보다 제국의 다신교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유일신 숭배자들을 통칭하는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름도 형체도 없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는 당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신 개념이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이와 비슷한 개념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 등 극동아시아 정도였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람은 하느님을 직접 만나서 계시를 듣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창세기』 17장부터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그때 그의 나이 99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고신은 제국이 바뀌어가는 동안에도 오래도록 마르두크였고 지배층은 대부분 유일신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18왕조 파라오 이크나톤이 내세운 태양신 아톤이 유일하다시피 한 유일신이었다고 합니다. 이름도 형체도 없는 창조주 하느님은 하층민과 정처 없는 나그네들의 상징적 존재인 아브람의 신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열국의 조상이 될 것이다.”
천지의 창조주에서 몇몇 민족의 수호신으로 개념이 축소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인의 상징적 시조입니다. 이 시기의 히브리 민족은 남성 생식기의 포피를 제거하는 할례 풍습을 지닌 것을 제외하고는 독특할 게 없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여종에게서 얻은 장자 이스마엘은 아라비아, 수리아, 팔레스틴 동남부 유목민의 조상이 되고 본처에게서 얻은 둘째아들 이삭은 에돔 사람과 유대인의 조상이 됩니다.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의 별명이 이스라엘이고, 그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명과 손자 두 명이 히브리 민족 열세 개 부족의 시조입니다. 물론 경전의 주장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사실은 아닐 겁니다. 부족 연맹체인 이스라엘에게는 공동 조상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고대 어느 나라나 비슷합니다.
『창세기』에 이은 『탈출기』는 엑소도스, 출애굽기로도 불립니다. 히브리인은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란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은 설화가 적힌 문서가 바로 『탈출기』입니다. 고대 이집트 제국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이 지도자 모세의 영도 아래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율법을 갖춘 국가를 형성하고 마침내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 지역을 점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모세에 이르러 더욱 축소되어 유대인의 수호신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의 후손도 이삭의 장자 에사오의 후손도 민족의 적이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