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인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성하게 구별하는 행위였던 기름부음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예수는 기름부음 의식을 치른 적이 없으므로 유대인은 그를 메시아라 부르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 기름부음 의식 없이 메시아로 존중받는 인물이 있긴 합니다. 유대민족을 바빌론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 2세가 바로 그입니다. 맥락에 따라 천사들의 대장 미카엘을 메시아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예수는 생전에 스스로를 그리스도라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는 이 용어의 의미를 ‘인류의 구원자’로 확장시켜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완성시켰습니다.
한반도의 그리스도교는 18세기 개혁적 유학자들의 주도 아래 유교儒敎의 가르침과 불교의 배려를 바탕으로 자생했습니다.
불교 암자인 천진암天眞菴과 불교 사찰인 주어사走魚寺에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권철신, 이벽, 정약용 등이 모였습니다. 1777년 또는 1779년(기해년)에 처음 모였고 성격은 강학講學 즉 스터디그룹이었습니다. 두 곳 중 어디가 첫 번째 모임 장소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보호하려다 죽은 불교 승려도 많았습니다. 천진天眞은 하늘의 진리라는 뜻이고 주어走魚는 달아나는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신자들이 핍박을 피해 물고기 모양을 암호로 삼아 숨어 다니던 모습이 연상됩니다.
18세기 한반도의 그리스도교는 이승훈의 세례, 김대건의 사제수품 등을 거쳐 가톨릭의 역사로 고스란히 편입되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은 스스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나서 가톨릭이라는 기독교 종파를 가장 먼저 만났을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 가톨릭보다 천주교라는 명칭이 더 친숙해진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그리스도인이 서방 어딘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천자로 모신 이상사회가 있다고 믿던 그 시기에 정작 서방 사회에서는 같은 종교끼리 살육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한반도에선 제사풍습에 대한 외국인 주교의 무지하고 편협한 방침으로 순교자들이 대거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16세기 중국 대륙과 18세기 한반도의 선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천자天子, 즉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인정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을 거치면서 예수는 하느님을 대리한 지도자의 모습보다 ‘또 하나의 하느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천자天子를 하느님의 대리자로 받아들이는 것과 ‘또 하나의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므로, 그리스도교는 극동아시아의 전통 관념과 융화하지 못하고 점점 배척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