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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Dec 12. 2024

광야의 40일이 주는 메시지

유대민족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역할과 예수가 생각하는 메시아의 역할은 크게 달랐습니다. 흔히 복음이라 부르는 여러 가지 예수 언행록에는 역사적 예수와 신화적 예수의 모습이 섞여 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가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에서 활동하기에 앞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거룩한 힘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 40일에 걸쳐 단식과 기도와 명상을 하며 ‘시험하는 자’ 곧 악마의 유혹을 받습니다. 이때 악마가 예수를 유혹하며 한 말을 기록자들은 크게 셋으로 요약합니다.     


1. 돌들에게 빵이 되라 명령하라.

일확천금을 꿈꿔라. 노력하지 말고 바라기만 해라. 무엇이든 돈이 될 만한 것으로 바꾸어라. 저 시절에도 한탕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저 아래로 몸을 던져 뛰어내려라. 

악마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한 말입니다. 인격을 포기한 나머지 자기 몸을 학대하고 자살하는 등 생명경시 사상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그런 사람들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음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3. 자신을 포기하고 나(악마)를 경배해라.

우상숭배의 기본자세는 그 앞에 엎드림입니다. 세상이 율법과 양심을 무시하며 잘못 돌아갈지라도 욕망에 굴복하여 무조건 세상 풍조를 따라 가라는 명령입니다. 나라를 잃고 신앙심도 희박해졌을 당시 유대 민중의 자존감 박탈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는 매우 단순해 보이는 대답으로써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칩니다.     


1.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음식을 배불리 먹고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서 제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모름지기 사람은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2.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자해를 비롯한 생명 경시와 섣부르고 조급한 절망은 자유의지를 남용해서 신을 시험하는 행위이다.

3. 세상 풍조를 따르느라 양심과 자존감을 버리지 말고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겨라.      


악마의 교묘한 유혹에 비해 예수의 대답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싱겁습니다. 하느님이 인간 본성에 심어놓은 양심에 어긋난 언행은 무엇이든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훗날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의 이러한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저렇게 철저히 하느님 우선이었지만, 동시대 유대인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이단자였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 우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이긴 예수는 이후 하느님을 바르게 섬기는 방법과 ‘하느님과 같아지는 길’을 제시합니다. 

광야 40일에 상징적으로 묘사된 세 가지 문답은 마치 세례자 요한의 고행과 가르침을 함축한 것 같은 모습입니다. 마크의 복음서는 이 부분을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예수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았다. 들짐승들과 함께 지냈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막 1:13)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세례자 요한과 비슷하지만, 천사들의 시중을 받는 모습은 신과 비슷합니다. 뒤에 쓰인 마태와 루카의 복음서는 대적하는 존재인 사탄을 좀 더 본격적으로 등장시켜 유혹의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예수를 신화적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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