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대교회의 예수 신격화에는 뚜렷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근동지역 여러 제국의 황제들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자로 지칭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대에 가까워지면서 지배국의 황제들은 신들의 대리자를 넘어 숫제 자신을 신으로 칭하기까지 했습니다. 로마제국 초대황제인 옥타비아누스는 살아서는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로 추앙받고 사망 직후인 서기 14년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그를 신으로 선포했습니다. 이후 후임 로마 황제들도 아우구스투스를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일신교 유대 사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임금, 제사장, 대언자 등 종교적으로 구별된 지도자를 가리키는 그리스도 개념에 구원과 해방이 더욱 강력하게 덧입혀졌습니다. 마카베 가문의 3대에 걸친 독립 투쟁사도 크게 한몫했습니다. 전설로 전해져오던 다윗 왕의 역사와 바빌론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킨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 등을 모델로 그리스도는 이상적 군주를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스스로 신이 된 황제’와 ‘신의 후계자가 된 그리스도’라는 대립이 성립되었습니다.
기독교가 4세기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부터 황제들이 신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대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갔습니다. 유일신 천지창조, 삼위일체, 처녀 잉태, 부활, 승천, 재림, 심판 등 기초적인 교리가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정립되었고, 그러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 기도문이 작성되었습니다. 정통 또는 보편으로 채택된 교리가 아닌 다른 의견은 이단으로 배척당했습니다. 이렇듯 기독교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종교로 빠르게 번져갔습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은 생활 윤리로 적용될 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었지만, 구원과 영생 따위 형이상학적 문제를 앞세울 때는 세상에 피와 재앙을 안기는 정복자요 파괴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