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인 창조, 타락, 구원의 논리는 예수의 사상이 아니라 유대사회 지배계급의 사상이었습니다. 이 논리는 『창세기』에 편집된 여러 가지 상징적 설화를 근거로 내세웁니다. 문서 앞부분에 배치된 두 개의 설화(에덴동산, 카인과 아벨)와 바벨탑,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 이야기가 그것들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신이 인간도 창조했는데, 본래 불멸의 존재로 지어진 인간이 신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바람에 죽게 됩니다. 어느 특정한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인간이 남녀로 분화되기 전에 내려졌다가 남녀로 분화된 뒤에 여자가 먼저 어깁니다. 인간은 하느님과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단절되고 추방당해 이후 살아가는 동안 땀을 흘리는 수고 즉 노동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다신교에서는 신들이 노동을 시키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창세기는 인간의 잘못으로 노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류는 타락하여 여러 민족과 언어로 분열되고 급기야는 대홍수에 의한 멸종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창세기』 저자들은 유일신 숭배의 모범 캐릭터인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확장해 민족의 시조로 삼습니다. 고대 다신교 문화는 영아를 살해하여 제물로 바치는 야만스러운 짓이 자행되었고 문란한 모습을 보인 것 같습니다. 『창세기』에는 그러한 사회상을 비판할 목적으로 쓴 설화도 들어있습니다.
아브람은 셈의 후손입니다. 이는 유대인의 여호와 신앙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셈족 종교의 하나임을 뜻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문명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우르는 일반 도시도 아닌 수도였습니다. 우르의 제3왕조(BC 2050~1950)를 건설한 우르-남무의 법률은 함무라비 법전을 거쳐 유대 민족의 십계명이 됩니다.
『창세기』의 유일신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유일신이 있고, 인간이 불순종해서 타락한 탓에 갖은 불행이 벌어진다.”
아시다시피 십계명 1조는 “나 아닌 다른 신을 두지 말라.”입니다. 유일신을 믿는 고대 히브리인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형태를 죄악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이는 모순입니다. 신이 정말로 유일하다면 다른 신들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니까요. 그럼에도 유대민족은 자기들의 수호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과 경쟁하고 자기 백성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신으로 묘사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인간이 하느님께 불순종해서 단절되었으니 구원받으려면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차원이 크게 다른 존재인데, 인간이 신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어째서 죄가 되나요?
유대 민족의 조상은 주로 노예와 용병, 나그네 출신이었고, 따라서 명령불복종에 대한 죄의식과 준법정신이 강했습니다. 집단무의식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고령층에 불순종 교리가 잘 먹히는 이유는 그들이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등 노예의 삶을 지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유대인의 사상을 답습한 기독교의 불순종 원죄 이론은 폐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신의 계획이 아닌 인간 예수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이 신의 계획이라는 교리는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유대인 바울의 한계가 드러난 주장입니다. 불순종을 죄라고 믿어온 유대 학자로서 그 대칭점에 예수의 순종을 대속 조건으로 갖다 놓은 거죠.
예수는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신념을 지켜냄으로써 자기 안의 신성과 우주의 신성을 끝내 일치시켰습니다. 그 일치는 ‘하느님과 같아짐’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주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선악을 임의로 분별하여 강제하는 율법도 아니었고, 지구라트를 높이 쌓아올리는 물질문명도 아니었으며, 최고 권좌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통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선택에는 어리석은 백성의 죄를 대속하고 그들의 죄의식을 소멸시키고자 한 유대인다운 열망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삶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기쁜 소식’이란 표현은 승리, 해방, 후계자 탄생의 맥락에서 쓰이던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께서 구별한 그리스도(메시아)를 하느님의 후계자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면서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해방이 필요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