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바이블 다이제스트

라이킷 2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유용선 Aug 24. 2019

농경민 카인과 유목민 아벨

- 카인과 아벨 설화는 왜 끼워넣었을까?

창세기 2장 4절에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은 창세기 5장입니다. 천지창조를 마치신 조물주 하느님께서 이레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축복하셨다는 이야기까지 마무리지은 저자는 아담의 족보를 나열합니다. 이때 다시 한 번 창세기 1장 27절 구절을 반복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고요. 거기에다 하느님께서 그들(=사람들)을 아담이라 일컬으셨다고 문장을 덧붙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아담입니다. 에덴동산의 남녀 이야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아담은 흙(아다모)으로 지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에덴동산 이야기를 픽션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려다 보니 남자 아담이 여자 아담에게 붙인 하와라는 별명이 최초 여성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저 결국 '아담과 하와'라는 호칭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 모습을 닮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창세기 5:3)

아담의 족보에서 인간 부부가 최초로 낳은 아들의 이름은 셋(Seth)입니다. 성경 창세기의 4장 즉 '카인과 아벨'의 저자는 어떤 분명한 목적으로 이 이야기를 창작해 끼워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몇 가지 상징성을 품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4장을 약간의 해설을 곁들여 정리하겠습니다.

동산 밖으로 쫓겨난 남녀는 가정을 이루어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첫 아들의 이름은 카인, 둘째 아들은 아벨입니다. 큰 아들은 부모를 따라 농사를 지었고, 둘째는 최초의 양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서에 처음으로 직업 관념과 소유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의 일부를 하느님께 바치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성서에 처음으로 예배 개념이 등장합니다. 카인은 곡식으로 제물을 삼았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첫째 새끼를 잡아 거기서 나온 기름으로 제물을 삼았습니다. 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감사를 표하다, 하느님과 화해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창조된 지 130년도 안 되어 농업에 이어 목축도 생겨났다는 서술입니다. 에덴동산 설화에는 제물을 바치는 행위가 나타나지 않다가 이때 비로소 등장한 까닭은 예배를 하느님과 화해하는 의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곡식보다 양의 기름을 더 좋아하신 건 아닙니다. 곡식이나 동물의 기름은 격식이고,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제물은 그것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 즉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와 서로 위하는 마음(아모스 5:24)이니까요. 아무래도 카인의 평소 생활과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카인은 반성하기보다는 옹졸한 생각과 분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 어찌하여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올바르게 행한다면 낯을 들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니 죄가 문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지배하려 한다. 너는 죄를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속내를 들키고 나서도 카인은 회개는커녕 정신을 못 차리고 분노를 키웁니다. 동생 아벨이 점점 더 거슬립니다. 마침내 카인은 어느 날 동생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서 죽여버리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 카인은 이렇게 말대꾸하며 잡아뗍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하느님이 꾸지람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땅이 네 아우의 피를 먹고 울부짖는 소리가 내 귓전에 들리는구나.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이제 너는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은 이전과 같은 효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고, 너는 앞으로 땅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카인은 자기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두려움에 쌓인 카인은 하느님께 불평했습니다.

“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앞으론 제가 주님을 뵙지 못하고 살아야 할 테니, 이젠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려 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철없는 카인을 보니 마음이 측은해지셨습니다.

“그렇지 않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일곱 배나 받을 것이다. 네 몸에 표시를 하여 다른 사람이 너를 해칠 수 없도록 하겠다.”

이 부분에 이상한 점이 있지요? 하느님과 카인의 대화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이 생겨난 지 130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있네요? 아벨과 카인 집필자와 에덴동산의 남녀 집필자가 동인인물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설정과 구성의 치밀함이 많이 부족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누가 카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주십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주마. 카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겠다."(5:15)

카인은 하느님 앞을 떠나 에덴 동쪽에 있는 땅에 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곳은 ‘떠돌아다니다’라는 뜻의 ‘놋’으로 불립니다. 카인은 그곳에서 아들 에녹을 얻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자 카인이 성을 쌓고 제 아들 이름을 따서 성 이름을 ‘에녹’이라 했다. 헉, 이번에는 건축술까지!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벡이 아주 문제가 많은 인간입니다.

라멕은 일부일처를 따르지 않고 아내를 둘 얻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아다이고 다른 하나는 칠라였다. ‘아다’라는 이름의 뜻은 멋이나 장식 따위와 관련되고, ‘칠라’는 어둠과 관련됩니다. 이름과 성격이 밀접한 시절임을 감안할 때, 라멕은 아무래도 여성의 외모나 성적매력에 집착하는 남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서 속 인물 중에 라멕은 카인에 이어 두 번째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카인의 살인이 시기와 앙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라멕의 살인은 자기한테 상처를 입힌 상대에 대한 보복(창 4:23)이었습니다.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카인을 위하여선 벌이 일곱 배이지만 라멕을 위하여선 벌이 칠십칠 배이다.”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라멕이 자기 조상인 카인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지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카인의 직계 후손 가운데 라멕은 여러 면으로 볼 때 불경스럽고, 시쳇말로 망나니 기질이 다분해 보입니다. 그의 아내 아다는 훗날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될 야발을 낳고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될 유발을 낳습니다. 또 다른 아내 칠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습니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누이는 나아마입니다.

한편, 아벨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부부에게 하느님께서는 세 번째 아들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아담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셋’이라 지었습니다. 아담을 남자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여자를 남자의 아내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 창세기 5장보다 후대에 지어진 부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카인은 추방당하고 아벨은 죽은 것으로 설정하여 셋을 장자의 자리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아담의 나이는 백서른 살입니다. 성경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인류의 시조인 남녀는 에덴에서 고작 100년 조금 넘게 산 셈입니다. 아담은 그 후로도 800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습니다. 셋도 큰아들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다행히 셋과 그의 자녀들은 매우 경건했습니다.

이 부분의 저자들은 어째서 형제 살인 사건을 구성상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아담의 계보보다도 앞서 배치했을까요? 그 힌트는 카인 족보의 마지막 인물 라멕에 있습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 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야발의 아우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이다.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말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내게 상처입힌 자를 내가 죽였고 나를 상하게 하였기에 그 소년을 죽였다. 카인을 위하여는 벌이 일곱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라."(창세기 4장 19절부터 24절)

라멕의 아들들 직업을 보죠.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사람입니다. 다른 유목민들과 달리 그는 농경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정착민입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사람입니다. 굳이 생산직에 종사할 필요가 없는 부유층이죠. 두발가인은 금속으로 기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금속으로 만드는 기구는 농기구와 병장기입니다. 유목에는 금속기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죠. 라멕 가문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음으로 보복하고도 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대단했던 사람들입니다. 저자들이 살아 있던 시기에 그 사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층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저자는 그들을 살인자 카인의 혈통이라며 에둘러 비난하고 있습니다. 동족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일이 친형제를 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함께 담아서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반유목 반농경 형태의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카인은 농업을 기반으로 삼은 정착민이고, 아벨은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입니다. 후자는 전자보다 사회적으로 약자였습니다. 약자를 돌보기는커녕 억압하고 착취하고 심지어 살해하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제물을 바치고 형식적인 회개를 일삼는 사람들. 카인은 이스라엘 구성원 중에 그런 기득권층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이 설화를 기록할 당시 히브리 공동체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살인자, 가축을 치는 사람들, 악기 연주자 등이 카인의 후예로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류에게 사회적 반감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 사건은 훗날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과 맞물립니다. "예물을 드리려 제단에 왔다가 형제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은 제단 앞에 그냥 두고 먼저 그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고 난 후에 다시 와서 예물을 드리십시오."(마태 5: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