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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25. 2019

노아의 저주

- 술취한 자의 명예를 빌려 가나안을 저주하다

홍수가 끝나고 식구들과 새롭게 정착한 뒤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밭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노아가 즐겨 가꾸던 식물은 포도였죠. 그는 인류 최초로 포도밭을 가꾼 사람입니다. 포도는 뙤약볕을 잘 견디는 식물이었고, 특히나 수확한 포도를 그늘에 놓아두면 시큼하면서 한편 달콤하며 마시고 나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즙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포도주의 탄생입니다. 

어느 날 노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천막 안에서 낮잠을 청하였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많이 마셨는지 몸이 더워진 노아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 채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식사를 할 시간이 다 되도록 노아는 잠에 곯아 떨어져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식사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어디 계시기에 안 보이시냐? 또 포도즙 마시고 주무시나 보다. 그것만 드시면 그렇게 몸을 못 가누시니 그거 그렇게 자주 마셔도 괜찮은 건가 모르겠구나.”

노아의 아내가 식구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그거 마시면 아버지가 기분이 좋아지시는 걸 보니 하느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선물인가 봐요. 아버지는 제가 모셔올 게요.”

제일 먼저 집에 들어와 배고프다고 타령을 하던 함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아가 있는 천막으로 달려갑니다. 함은 성미가 급한 편이기도 하지만 술을 마신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잘하면 아버지가 남긴 포도주를 얻어마실 수 있었으니까요.

“아버지!”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간 함의 눈길은 한곳에 머물며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서 세상모르고 잠에 빠진 아버지. 함은 너무 당황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집을 향해 달려갑니다. 집에는 셈과 야벳이 일터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함은 자기가 천막에서 본 것을 형제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왔어?”

셈과 야벳이 함에게 묻자 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버지가 걸칠 겉옷을 집어 들었습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이 무슨 망신인가.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 아닌가. 

천막에 도착한 형제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뒷걸음쳐서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팔을 뻗어 겉옷 하나로는 아버지의 상체를 다른 하나로는 하체를 덮었습니다. 잠시 후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가 깨어납니다. 노아가 잠에서 깨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아들이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모두 듣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함의 어리석은 소행이 괘씸해 버럭 화를 내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함의 자식인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라. 가나안은 비천한 종이 되어서 자기 형제들을 섬기는 처지가 될 것이다.”

저주를 퍼붓고 나서 분이 좀 가라앉자 노아는 이번에는 셈과 야벳을 보며 그들을 위해 축복을 빌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염려하고 지켜준 기특한 아들들을 위하여. 

“셈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셈은 가나안을 종으로 부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야벳을 크게 일으키시어 셈의 장막에서 살게 하시고 가나안은 종으로 삼아 셈을 섬기게 하실 것이다.” 

노아의 저주를 받은 이름은 왜 하필 가나안일까요? 함의 후예들이 터 잡은 지역(구스, 이집트, 리비아, 가나안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스는 검다는 뜻이고 가나안은 자색이란 뜻입니다. 창세기 저자들 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집트, 가나안 등지의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지요. 노아의 이름을 빌린 성서 저자들의 저주인 셈입니다. 가나안의 피부가 짙다는 점을 비약시켜 모든 흑인의 조상이라는 논리를 펴는 신학자도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며 사악한 인종주의에 불과합니다. 

노아는 홍수 뒤에도 350년을 더 살아 도합 950년을 삽니다. 므투셀라가 969년이고 아담이 930년이니 성서 인물 가운데 노아가 장수 서열 3위입니다. 그의 세 아들에게서 다양한 종족이 갈라져 나갔고 많은 부족이 형성됩니다.(창세기 10장) 성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 위에 사는 인류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들의 후손입니다. 


술에 취한 노아, 지오반니 벨리니(1430–1516), 프랑스 브상송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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