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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25. 2019

아브람 등장

- 보이지 않고 이름도 없는 신을 섬기는 사람

바벨탑의 붕괴 이후 세상 곳곳으로 흩어진 사람들은 탑을 쌓던 시절에 버릇을 들인 ‘눈에 보이는 신’ 곧 우상을 숭배하는 버릇을 끊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영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면서도 한갓 자연물이나 물건 따위를 마음으로 의지하는 어리석은 습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우상을 곁들여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다양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서워하는 동물이나 오래된 나무나 바위 따위를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바벨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갈데아 지역에 우르라는 이름의 성이 있었습니다. 현재 유프라테스 강 하구로부터 약 20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고대 수메르 왕국의 성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을 갈데아인이라 불렀습니다. ‘우르’는 달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달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같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상업적으로 번창했고 문화 수준도 높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양을 치며 농사도 짓는 데라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셈의 후손인 그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란은 우르에서 태어나 장성하여 아들 롯과 두 딸 밀가와 이스가를 낳고, 그만 젊은 나이에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아브람은 나이 일흔이 넘도록 우상숭배에 눈을 돌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름도 없는 창조주만을 참된 마음으로 숭앙하며 살아 하느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복누이인 사래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나홀은 조카인 밀가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와 손자 롯을 데리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났습니다. 데라는 하란이란 곳에 자리를 잡고 살다 이백 오세에 죽습니다.  

하란에 살던 어느 날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아브람은 나홀과 그 식구들을 하란에 남겨둔 채 자기 아내 사래와 종들과 재물을 챙겨 길을 떠났습니다. 조카 롯도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일흔다섯 살. 일행이 마침내 가나안 땅의 어느 벌판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이 땅 곧 가나안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나타난 장소에 제단을 쌓고, 다시 그곳을 떠나 베델(루스) 동쪽 산악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델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치고 제단을 쌓아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성에서 살지 않고 소와 양을 먹이기 좋은 곳에 살며 차츰차츰 재산과 영토를 불려나갔습니다. 

얼마 후 가나안 땅에 심각한 기근이 들어 소와 양을 먹이기 어려워진 아브람은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얼마간 이집트에 살던 그는 그곳을 떠나 처음 가나안 땅에 왔을 때 천막을 치고 제단을 쌓았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조카 롯도 재산이 늘어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곤 하는 등 두 집안이 한 지역에서 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롯은 요르단 들판 여러 성읍에 각각 나뉘어 살게 됩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우선 선택할 수 있게 아량을 베푼 결과입니다. 롯이 처음 천막을 친 곳은 화려한 성읍이었던 소돔과 고모라와 가까웠고, 결국 그는 식솔을 이끌고 소돔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롯이 정착해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곳은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가 패배합니다. 그 바람에 상대 진영 군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당합니다. 소돔에 살던 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적군에게 잡혀갔습니다. 

조카의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잘 훈련된 장정 318명을 이끌고 단이라고 하는 적진에 가서 한밤중에 적군을 기습하여 롯과 롯의 식구들은 물론 재물도 되찾아 옵니다. 아브람은 구해온 사람들과 재물 가운데 본래 소돔의 것이었던 것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혹시나 자신이 부유해짐에 하느님이 아닌 소돔의 공이 끼어들까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살렘(Salem) 도성의 왕 멜기세덱(Melchizedek)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승리한 아브람 앞으로 나와 하느님을 찬양하고 아브람을 위로하고 축복합니다. 아브람은 적에게서 되찾은 모든 재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습니다.(창 14:18-20) 사실 이 부분은 맥락상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멜기세덱이 왕이면서 사제라는 점도 시대상과 맞지 않고, 특히 이 장면에 처음 등장한 십일조는 훗날 모세 이후에야 자리 잡은 개념입니다. 출생, 혈육, 족보, 죽음 등 그에 관한 어떤 정보도 다른 곳에 없습니다. 시편 110장(너는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은 영원한 제사장이다. 주님 당신의 오른편에 계신 주께서 노하시는 날에 뭇 왕들을 무찌를 것이다)에 잠깐 언급되었고, 신약시대의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구절을 들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이 멜기세덱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살렘은 예루살렘입니다. 맥락을 무시한 채 창세기에 등장한 멜기세덱은 예루살렘을 거룩한 곳으로 여기게 하고자 다윗이나 솔로몬 시절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이 멜기세덱의 제사장 법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훗날 예수가 아론이 아닌 멜기세덱의 법통을 따라 하느님의 제사장 직분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의 모델도 이 장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롯은 식구들을 데리고 다시 소돔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도 매우 문란하였지만, 롯이 재산을 늘리며 살기에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헤브론 가까이 있는 자신의 천막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 하느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내립니다. 아브람은 자식이 없어 상심해 있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방패이다. 너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또한 네 몸에서 나온 아들이 너를 상속할 것이다. 너희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이 아브람의 후손이 차지가 될 것이라 거듭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이 모든 약속을 믿었으며 당시의 풍습을 따라 가축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예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제사를 바친 그날 해가 질 무렵, 아브람은 깊은 잠에 들었다가 공포와 암흑에 휩싸인 채로 하느님으로부터 음성을 듣습니다. 

“장차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4백년이나 종살이를 하게 되고 다시 가나안에 돌아와서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리자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땅을 너희 후손에게 준다.”

아브람에게는 이집트에서 데려온 여종 하갈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가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남편이 여종의 몸을 빌려서 아들을 낳으면 자기가 아들을 얻은 셈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은 지 10년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사래의 예측과 달리 하갈은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자 여주인 사래를 업신여기기 시작합니다. 사래는 하갈을 미워하고 핍박했고, 하갈은 사래를 피해 임신한 몸으로 광야로 도망칩니다. 광야의 샘터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던 하갈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사래에게 돌아가 그에게 복종할 것과 태중의 아기가 아들이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하느님께서 들으신다)로 지으라 명했습니다. 하갈이 아브람과 사래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아들을 낳았을 때, 아브람은 여든여섯 살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훗날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여 부족을 이루는데, 그가 바로 아랍인의 시조입니다. 이후 13년이 흐른 뒤에 사래도 이삭을 낳습니다.

히브리 부족 연맹의 공동조상으로 숭앙받는 아브람은 실존 인물이었다기보다는 모델이 될만한 유형을 한 이름으로 칭함으로써 형성된 캐릭터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가 살았다고 기록된 가나안은 훗날 ‘약속의 땅’으로 칭해집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가나안은 훗날 블레셋의 영향으로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데, 오늘날까지 이삭 또는 이스마엘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영토 분쟁을 일삼는 곳입니다. 아브람의 후손이란 말의 적용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혈통을 좇아 그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과 아랍인 모두? 또는 신앙의 후예인 유대교인, 이슬람교인, 기독교도?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들이 전쟁을 거두고 같은 하느님 아래 대화합을 이루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페테르 파울 루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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