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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25. 2019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 할례의 성립

아브람이 아흔아홉 살이 되던 해,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앞으로도 이제껏 그랬듯이 흠없이 살도록 하여라. 이제 내가 너와 계약을 맺겠다. 너의 이름은 이제 아브람(큰 아버지)이 아닌 아브라함(존귀한 아버지)이다. 너에겐 아주 많은 자손이 생겨나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다. 지금 네가 나그네살이 하는 이 가나안 땅은 너와 네 후손의 영원한 소유가 될 것이다. 이제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 남자들은 어른과 아이와 종 할 것 없이 생식기의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그리하면 내 계약이 너희 몸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포피를 잘라내는 일, 즉 할례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거룩한 약속의 상징이 되었다니 무척 뜬금없습니다. 하지만 개척해야 할 곳이 많은 척박한 땅에 자리를 잡아야 했던 떠돌이 집단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사실 할례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집트, 가나안 몇몇 부족들 사이에 이미 널리 행해진 풍습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 민족은 할례를 하지 않아 훗날 다윗이 "할례가 없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경멸합니다. 위생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남자의 성기 위생은 여성의 성기 위생과 직결되고 이는 곧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는 일과도 밀접했을 테고. 이민족들이 각자의 영토에 정착하여 우상을 섬길 때에 아브라함을 비롯한 떠돌이 집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깁니다. 그들은 할례를 하는 풍습을 공유하며 결속을 다집니다. 이 풍습은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 등지로 퍼집니다.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아내 사래는 이제부터 사라(존귀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러라. 그녀에게 복을 내려 네가 그녀로부터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사라로부터 여러 민족이 나올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나이는 어언 아흔아홉 살이요 아내인 사라의 나이는 아흔 살이었으니까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주님 앞에서 오래 살기 바라나이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1년 뒤 사라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지으라고 명하며 이삭이야말로 약속의 아들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하느님의 축복과 허락을 받고 태어났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첩으로 삼은 종의 몸에서 인간의 간구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심으로써 태어났고, 이삭은 정실부인의 몸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정실부인 소생인가 첩의 소생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 약속’에 의한 것인가 ‘인간의 간구’에 의한 것인가입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인간의 간구’는 성서를 관통하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입니다. 성서는 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인간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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