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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29. 2019

이스라엘의 초기 지도자들

재판관들

  강력한 영도자인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자신들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믿음으로 전투에 임하며 점점 강력해졌지만 가나안 부족들을 모두 몰아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가나안 부족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헐어버리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자기들의 조상이 신앙에 힘입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는 새 세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차츰 이민족의 신 바알을 비롯한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께서 꺼려하시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신앙이라는 구심점이 약해진 이스라엘은 이민족의 침략을 당할 때마다 큰 위기에 몰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앞장서 겨레를 살린 지도자들이 바로 판관입니다. 사사라고도 합니다.

  지도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이스라엘은 크게 달랐습니다. 지도자가 없으면 어김없이 이민족과 섞여 바알을 비롯한 우상을 섬겼습니다. 판관기(사사기)의 저자들은 당시 그들이 겪은 갖은 수난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조상들처럼 가르침을 명심하며 올바로 가는지 시험하신다고 해석했습니다. (판관기 2:21-22) 

  모압 왕 에글론 치하에서 18년을 살 때는 에훗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공을 바쳐 에글론의 환심을 산 에훗은 왕과 단둘이 다락방에 남는 기회를 잡아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 숨긴 쌍날 비수를 자루가 왕의 몸에 박힐 정도로 깊숙이 찔러 넣었습니다. 그는 왼손잡이여서 검문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훗은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이끌고 지휘자를 잃은 모압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이후 80년 동안 평온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인 삼갈이란 사람도 있었습니다.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의 기강이 다시 흔들리자 이번에는 가나안 하솔 땅의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억압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철병거를 구백 대나 가진 그와 그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에게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기도만 올릴 뿐이었습니다. 이들을 구한 사람은 여자 예언자인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는 납달리 사람 바락을 앞세워 병력 1만 명을 다볼산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시스라는 철병거 구백 대를 모두 이끌고 산 아래 키손 강가로 갔습니다. 산 아래로 다가오는 시스라의 군대를 향해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아가자 기세과 지형지물 활용에 눌린 시스라의 군대는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시스라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달아났습니다.

  달아나던 시스라는 골짜기 가까이 야빈과 평화롭게 지내던 지역의 천막을 찾아 들었습니다. 시스라는 그곳 천막의 안주인 야엘의 대접을 받으며 안심하여 천막 안에 들어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깊이 잠들자 야엘은 망치와 말뚝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그의 관자놀이 깊이 말뚝을 박아 넣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드보라와 바락은 시를 지어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판관기 5장)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년 동안 가나안 곧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야엘과 시스라> (로도비코 카라치)

  드보라 아래 평화롭게 지낸 사십 년 후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의 미디언 족속에게 일곱 해가 되도록 갖은 약탈을 당하면서 시달렸습니다. 

  이때 등장한 용사가 기드온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종족에 속한 사람 기드온에게 하느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아버지 요아스가 섬기던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신상을 불살라 번제의 땔감으로 써버린 일로 여룹바알 곧 ‘바알에 맞선 자’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제단을 파괴한 데에 격분하여 기드온을 죽이러 온 사람들에게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내세운 논리가 재미있습니다. 

  “당신들이 바알의 편을 들어 싸우겠다는 것인가? 당신들이 바알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그의 편을 들어 싸우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자기 제단을 헐어버린 사람과 직접 싸우도록 놓아두라.”(판관기 6:31) 인간이 신의 편을 들어 싸우는 게 아니라 참된 신이라면 자기 제단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낼 것이란 뜻입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사막 부족이 모여 요단강을 건너와 이스르엘 평지에 진을 치자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자기 종족 아비에셀 족을 모아 자기를 따르게 하고 인근 다른 지파들에게 전령을 보냅니다. 그렇게 모인 병력이 처음에는 3만 2천명. 그 가운데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니 1만 명이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써 다시금 소수정예를 추려냅니다.  

 병력을 데려가 물가로 데려가 물을 먹게 하니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이 삼백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기드온은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만 남겨 두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두려움이 없으며 물을 마실 때조차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을 만큼 신중한 소수정예였습니다. 

  기드온은 부대를 일백 명씩 셋으로 나눴습니다. 그들은 횃불을 감춘 빈 항아리와 나팔을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적진 끝에 다다른 세 부대는 일제히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깬 뒤 왼손으로 횃불을 쳐들고 오른손에는 든 나팔을 불며 "주님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혼비백산한 미디언 병사들은 당황하여 저들끼리 칼로 쳐 죽이고 우왕좌왕 달아났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전투는 달아나는 적장들과 임금들을 따라가 쳐 죽임으로써 완벽한 대승으로 끝이 납니다.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온했습니다. 

기드온의 병사들

  여룹바알 곧 기드온이 늙도록 잘살다 죽어서 아비에셀 사람의 땅 오브라에 있는 제 아버지 요아스의 무덤에 묻히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눈에 보이는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드온의 식구들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이 여종에게서 낳은 아들로 아비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겜에 있는 외가 친척들을 설득해 돈을 구해 불량배를 고용하더니 결국 일흔이나 되는 자기 형제를 죽이는 참사를 벌였습니다. 이때 막내아들 요담 한 사람만 숨어 있다가 목숨을 건진 뒤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을 저주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3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에게 반역하는 가알이란 자와 그를 추종하던 무리를 학살하는 과정에서 데베스 성읍 망대에 있던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두개골이 깨졌습니다.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여인에게 목숨을 빼앗김을 수치로 여겨 수하를 시켜 자신을 찌르게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죽은 뒤, 잇사갈 사람 돌라가 23년, 길르앗의 사람 야일이 22년 동안 판관으로 활약했습니다. 야일의 아들 30명은 모두 자신들의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각자의 성읍을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야일이 죽고 한 세대쯤 지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을 비롯한 이방 신들을 섬기며 기강이 해이해지더니 결국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다의 딸> 에드거 드가(1834-1917)

  자유분방하고 용맹했으며 말을 잘 타는 군인 입다가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창녀였던 까닭에 형제들로부터 내쳐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자신들을 이방인들로부터 구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그에겐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에 하느님께 약속했습니다.

  “제게 승리를 주신다면, 돌아올 때 처음으로 저를 맞이하는 것을 당신께 번제물로 바치겠나이다.”

  입다와 그의 병사들은 스무 개나 되는 이방 성읍을 물리치고 귀환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를 처음 맞이한 사람은 하필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자신이 맹세의 희생자가 되었음을 알고 아버지에게 두 달 동안 숲을 거닐며 친구들과 처녀의 몸으로 죽는 자신의 처지를 애통해할 기회를 달라 청했습니다. 입다의 딸은 약속한 날에 돌아와 번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후로 온 이스라엘이 해마다 나흘씩 이 일을 기념하며 함께 애통해했습니다. 입다는 6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냈습니다. 

  입다에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7년, 스불론 사람 엘론이 10년, 비라돈 사람 압돈이 8년 동안 판관으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두 지파를 뿌리로 둔 친족들 간에 다소 느슨한 연합을 이루어 청동 농기구로 밭을 일구고 가축을 치며 살았습니다. 이집트는 일찌감치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권력 체계를 갖추었고, 블레셋은 비록 이집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는 군사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신앙심마저 흐려져 구심점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에 40년에 걸친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재판관들의 시대에 가장 유명한 영웅은 삼손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이야기인지 민간설화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이 인물은 단 지파 소라 땅에 살았던 장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본래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는데, 하느님의 사자가 그의 어머니에게 나타나 아기의 출생을 예고하며 그의 머리를 깎지 못하게 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장성하도록 깎지 않은 긴 머리를 사자머리처럼 휘날리며 단신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저항했습니다. 삼손이란 이름은 ‘태양과 같다’는 뜻입니다.

  젊디젊은 삼손은 블레셋 마을 딤나에서 아리따운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의 부모가 이방인과의 혼인을 허락할 리 없었습니다. 삼손은 여자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청혼할 생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길에서 젊은 사자를 만났지만 그는 그 사자를 새끼염소를 잡듯이 잡아 살을 찢고 뼈를 부러뜨린 뒤 버려두고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딤나에서 두 번째로 여인을 만난 뒤로 마음이 더욱 불타오른 삼손은 여인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사디가’ 곧 아내는 친정에 머물고 남편이 때때로 찾는 혼인방식을 허락받았습니다.

  얼마 뒤 혼인잔치를 하러 가던 삼손은 일전에 자신이 죽인 사자의 주검에서 벌떼와 꿀이 있는 걸 보고 그 꿀을 떠서 먹으면서 딤나에 다다랐습니다. 당시 풍습으로는 일주일 잔치 뒤에 마지막 날에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하객으로 블레셋 사람 30명가량이 왔습니다.

  흥에 겨운 삼손은 첫날 하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하객이 수수께끼를 풀면 삼손이 옷을 서른 벌 내어주고 못 풀면 자신이 그들 모두에게서 각각 옷 서른 벌씩 받는 조건으로. 

  "잡아먹는 것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것에게서 단것이 나왔다."

  사흘이 지나 나흘이 되어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하객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가서 협박했습니다. 

  “수수께끼를 알아내지 못하면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겠다.”

  닷새째 되는 날에 아내가 와서 눈물로 호소해도 삼손은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엿새째 되는 날에는 결국 수수께끼의 뜻을 알려주고 말았다. 이레째 결혼식 자리에서 하객들은 삼손을 불러 수수께끼의 답을 말했습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했는가!”

  삼손은 자기 아내를 노려보며 하객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내 암소로 밭을 갈지 않았다면 이 수수께끼의 답을 어찌 알았겠느냐! 하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삼손은 그 길로 밖에 나가 서른 명을 죽여 그들의 옷을 빼앗아 하객들에게 던져주고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추수철이 되자 삼손은 아직 한 번도 함께 동침하지 못한 아내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화해의 의미로 새끼염소를 잡아 아내가 있을 딤나에 갔습니다. 장인은 그곳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결혼식에 와 들러리를 섰던 사람에게 자기 딸을 혼인시켜 버린 것입니다. 

  삼손은 그길로 뛰쳐나가 여우를 300마리나 생포해와서 여우들의 꼬리를 붙들어 매고 그 사이에 홰를 끼워 불을 붙였습니다. 여우들은 마구 뛰어다니며 들판과 논밭과 농장을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그사이 블레셋 사람들은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듣고 격분해 삼손의 장인과 아내를 불태워 죽여 버렸습니다. 이에 다시금 격분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그들로부터 도망쳐 에담이란 곳에 있는 동굴 틈에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 지방 레히로 쳐들어가 마구 짓밟았습니다. 이 일이 삼손에 대한 보복임을 유다 사람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유다 사람 3천명이 삼손을 찾아가 하소연했습니다. “너를 잡아가야 우리가 살겠다.” 삼손은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순순히 묶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삼손이 밧줄 두 개에 묶여 블레셋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블레셋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삼손이 기운을 쓰자 단단히 묶였던 밧줄이 마치 불에 탄 삼오라기처럼 끊어져버렸습니다. 삼손은 갓 죽은 당나귀의 턱뼈를 주어 들어 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는 우묵한 곳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 이 일 이후로 그곳은 라맛레히 곧 턱뼈 언덕이라 불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죽여 없앨 기회를 찾았지만 그의 엄청난 힘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여자 델릴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블레셋의 추장들은 델릴라에게 와서는 삼손의 무시무시한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떻게 해야 제압할 수 있는지 알아다 주면 각각 은화 천 세겔씩을 주겠다며 유혹했습니다.

  델릴라의 질문에 삼손이 장난스러운 거짓말로 대답하면 델릴라는 블레셋 사람들을 방에 숨겨놓고 삼손이 시키는 대로 하고는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어요.” 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헛수고가 되었지만. 하지만 델릴라는 끈질기고 탐욕스러운 여자였습니다. 여자가 밤낮으로 하도 졸라대자 삼손은 결국 진실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이야. 내 머리에는 면도칼이 닿은 적이 없지. 머리털이 깎이면, 나도 힘을 잃고 맥이 빠져 여느 사람과 다를 게 없어져."

  델릴라는 삼손을 재운 뒤 일곱 가닥으로 늘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힘을 잃은 삼손을 포박해 그의 두 눈을 후벼 파고 청동사슬로 온몸을 묶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죽이기보다 가둬놓고 조롱하기를 택했습니다. 삼손의 머리칼도 서서히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블레셋 영주들은 그들의 신 다곤 기념일에 삼손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삼손은 감옥에서 불려나와 다곤 신전의 웅장한 기둥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삼손이 자신을 이끌고 나온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이 기둥이 성전 전체를 떠받치는 것이냐?”

  소년이 그렇다고 하자 삼손은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게 한 번만 더 힘을 주십시오. 제 두 눈을 뽑은 저 블레셋 이방인들에게 복수하고자 합니다.”

  삼손은 신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에 양손을 갖다 대고 온힘을 다해 밀었습니다. 이윽고 기둥이 무너지며 신전 안에 있던 영주들과 사람들 위로 죽이니 그 수가 3천에 달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노래했습니다. 

  “삼손이 죽어가며 죽인 사람이 그가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많았다.”

  기브아 지방 사람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능멸하여 죽인 사건이 일어나 복수하고자 할 때 베냐민 지파가 동족의 편에 서지 않고 기브아 사람들 편에 선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열한 지파는 기브아 성읍과 베냐민 성읍을 함께 공격했습니다. 베냐민 여자와 아이들이 모조리 죽어 베냐민 지파가 멸족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족의 멸망 대신 화친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길르앗 지방의 야베스 지파에서 처녀 400명을 잡아와 600명의 베냐민 지파 생존자와 혼인하게 했습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지파 간에 서로 평등한 연합 사회를 이루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겐 아직 왕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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