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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30. 2019

이스라엘 왕국 형성

사무엘 상/하

  암몬의 나하스 왕이 길르앗 지방의 야베스 성읍을 괴롭히며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하려 할 때 동족을 구한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베냐민 지파의 사울입니다. 그는 키가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컸고 철제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장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강력하게 통치하여 이민족으로부터 지켜낼 왕을 원했습니다. 하느님의 사제이자 판관인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 한분으로 족하다 여겼기 때문에 왕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사무엘의 뒤를 물려받아 판관이 된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고 뇌물이나 받아먹는 등 변변치 못했습니다. 동족들의 요구는 그칠 줄 몰랐고, 사무엘은 마침내 하느님의 허락을 얻어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웠습니다. 

  왕으로서 사울의 권한은 주변 국가들의 왕이 지닌 것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블레셋 등과 싸우기 위한 군사적 총사령관 임무를 띤 제한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브아의 북쪽 일대는 물론 좌우에 수비대를 주둔해 놓고 여차하면 이스라엘의 남북 간 소통을 끊을 태세였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동맹의 군사력은 민병대 연합 수준이었고, 다섯 개 성읍(가자, 갓, 아스클론, 아스돗, 에크론)의 동맹체인 블레셋의 군대는 철제 무기를 다루는 상비군이었습니다. 

  사울은 채석공을 기브아로 불러 모아 2층짜리 요새를 지었고 이스라엘을 위한 상비군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아들 요나단에게 무기 제작과 관련된 임무를 맡겼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같은 거구는 아니었지만 영리하고 민첩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훌륭하게 도와 블레셋 군을 국경지대로부터 퇴각시키고 상비군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상비군 사령관은 사울의 사촌 아브넬이 맡았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말고도 모압, 암몬, 에돔 등과 대항하며 끊임없이 전쟁의 뿔나팔을 불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사제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 아말렉을 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생존자를 남기지 말고 아말렉에의 어떤 것도 전리품으로 챙기지 말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사울은 적진을 올가미처럼 에워싸는 전술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말렉 왕 아각의 목숨을 살려주었고 그의 부하들 일부는 살진 짐승과 어린 양 따위를 전리품으로 챙겼습니다. 더구나 사제인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제멋대로 번제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소식이 사무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사무엘이 찾아가 항의하자 사울은 전리품들은 그저 하느님께 제사로 바치기 위함이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격분한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순종보다 제사를 더 기뻐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름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은 점을 치는 것만큼이나 나쁘고 고집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을 버리실 겁니다.”

  사울은 늙은 사제의 화를 누그러뜨리려 사무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왕과 사제는 하룻길을 더 함께 가고 나서야 하느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간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은 퇴각한 뒤에도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도발하며 사울을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잦은 소집에 권태가 생겨 어느덧 전처럼 열심히 왕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사울대로 두려움과 신경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눈치 챈 그의 애첩 리스바가 밤마다 침실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리스바가 임신하자 더 이상 그의 주변에는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그나마 나았지만 사울의 공포증은 밤이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신경증은 거의 광인의 그것과도 같았습니다. 전장의 공포까지 더해져 고통스러웠던 사울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삼마가 왕에게 다가와 자기 동생 다윗을 추천했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양을 치던 소년 다윗이 왕의 거처인 장막을 찾아와 하프를 연주하니 과연 매의 부리로 쪼이는 듯했던 두통이 가라앉아 사울은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은 그의 위세에 짓눌려 날이 갈수록 전의를 상실해갔습니다. 대치한 지 여섯 주 하고도 닷새가 되던 날, 다윗이 사울 앞에 다가와 고했습니다.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구원하시던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사울은 이 터무니없는 상황이 우스웠지만 다윗의 진지함과 총명함과 굳건한 믿음을 보며 마침내 출전을 명했습니다. 소년 다윗에게는 투구와 갑옷조차 너무 컸으며 그의 무기라고는 고작 돌을 묶어 팔매질하기 위해 만든 끈이 전부였습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 앞에 나타나 외쳤습니다.

  “너는 쇠로 만든 무기를 들고 나왔으나 나는 네가 감히 도전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왔다. 오늘 내가 너를 쓰러뜨려서 온 세상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알게 할 것이다.”

  골리앗은 다윗의 외침을 듣고 코웃음을 치며 투구를 벗어던지고 나타났습니다. 

  “내가 개란 말이냐? 그래서 막대기를 들고 왔느냐?”

  골리앗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모욕감과 분노로 사나워진 골리앗은 다윗을 단칼에 벨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다윗은 침착하게 돌을 묶은 물매를 머리 위로 돌리며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그것을 날렸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어리둥절해진 낯빛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마치 큰 나무가 쓰러지듯이 쿵 하고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돌멩이가 그의 정수리를 정확히 명중시킨 것입니다. 

  다윗은 쓰러진 골리앗에게 달려가 그 손에 들려 있었던 칼을 끄집어내더니 그 육중한 몸뚱이를 밟고 올라가서는 마침내 그의 머리를 잘라버렸습니다. 다윗은 적장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장수를 잃은 블레셋의 병사들은 경악한 나머지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사울을 따라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군인들은 적군을 쫓아가 크게 쳐부수었습니다. 

  다윗 덕분에 힘든 전쟁을 승리를 이끈 사울은 다윗을 불러 치하했습니다.

  “이제부터 내 갑옷 시중을 들라. 너는 이후로 나와 함께 전쟁에 참가해 내 옆에서 싸워라. 앞으로도 오늘처럼 용감하기만 하다면 나는 너에게 천 명의 대군을 물려주겠다. 하느님께서 승리하셨구나.”

  사울은 왕자를 대하듯 다윗을 끌어안았습니다. 왕자 요나단은 그 모습에 질투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요나단과 다윗은 마치 친형제처럼 가까워졌습니다. 다윗은 낮에는 전쟁터에서 병사를 이끌며 승승장구했고 밤에는 사울의 막사에서 시와 노래와 비파로 왕의 심기를 달랬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군사령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사울은 수천을 물리쳤고, 다윗은 수만을 물리쳤다네!”

  다윗을 향한 백성의 지지가 높아지자 사울은 결국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마저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데 이른 어느 날, 사울은 하프를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두 번에 걸친 공격에도 다윗은 무사히 몸을 피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함을 깨달은 사울은 왕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더욱 전전긍긍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궁에서 내보내 군사 천 명만 이끄는 지휘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다윗은 여전히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골리앗을 쳐부수는 자에게 큰 딸을 주겠다는 애초의 약속도 어기고, 사울은 딸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냈습니다. 한편, 사울은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흠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천한 집안 출신이란 이유를 들어 왕의 사위 자리를 사양하는 다윗에게 사울은 블레셋 병사 백 명을 죽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전쟁터에서 죽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다윗은 왕이 원한 숫자의 두 배나 죽이고 돌아왔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딸 미갈을 주어 그를 부마 곧 사위로 삼았습니다. 사울의 불안과 시기심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요나단의 설득으로 한때 시기심을 누르기도 했지만, 다윗의 승전보가 계속 전해지자 사울은 다시금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번에는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꾀를 내어 다윗을 피신시켰습니다. 침대에 인형 같은 신상을 누이고 염소털을 씌워 눈속임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집을 떠나 사무엘에게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라마 나욧이란 곳에서 젊은 예언자들에게 하느님을 받드는 법을 가르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나욧으로 전령들을 세 차례나 보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전령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 그들 모두 황홀경에 빠져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결국 사울이 직접 나서 나욧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전령들과 똑같은 증상으로 사울은 하루 밤낮을 예언자들과 함께 지냈다. 

  사울이 나욧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한 다윗은 길을 거슬러 요나단을 찾았습니다. 

  “내 잘못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네 아버지인 임금님이 내 목숨을 노리는 거지?” 다윗은 친형제처럼 가까운 요나단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아버지는 크건 작건 모든 일을 나에게 먼저 알린다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을 걸세.” 요나단은 그와 같은 말로써 다윗을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 자신이 얼마나 가까운지 아는 사울이 요나단의 말처럼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 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시기심에다 권력 승계 욕심마저 있었던 것입니다. 왕위 세습은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식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이 선택한 자가 누구인지 아는 최고예언자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될 수 있는 것이지 혈통으로 세습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두둔하자 화가 치민 사울은 아들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다윗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다윗에게 기브아 성을 떠날 것을 권고했습니다. 

  다윗은 성을 떠나 안전한 곳을 찾다 놉이라는 성으로 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느님의 법궤를 훔친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막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대제사장 아비멜렉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성막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임금의 심부름을 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에게서 얻은 빵을 먹고 있을 때 사울의 종 도엑의 눈에 띄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안전하지 못함을 깨달은 다윗은 아비멜렉에게서 칼(다윗이 죽인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쓰던)을 얻어 블레셋의 왕 아기스를 찾아갔습니다.

  다윗은 아기스의 성에서는 미친 사람인 척하며 신변을 지켰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아둘람 동굴에 피신했을 때, 노부모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는 그분들을 모압의 왕에게 위탁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이스라엘은 역사의식이나 민족의식이 그닥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믿고 의지할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본격적인 망명생활이 시작되자 다윗의 은신처로 백성들이 몰려와 그와 한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병 사백 명으로 군대를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찾았으나 그의 아들과 부하들 모두 다윗의 은신처를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사울은 도엑으로부터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숨겨주고 먹을 것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부하들에게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죽이라 명했지만 부하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다들 사울보다 하느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울의 종 도엑은 출세에 눈이 어두워져 사울의 명을 받들어 아히엘렉과 제사장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히엘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도망쳐 다윗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의 보호를 받으며 대제사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모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블레셋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그일라라는 성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을 구하고 그곳을 주둔지로 삼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그일라 성을 포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재빨리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을 빠져나와 숲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요나단이 그 숲까지 찾아와 다윗을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음 임금은 자네가 될 걸세.” (이후로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다윗은 숲으로 산으로 동굴로 몸을 옮기며 사울의 추적을 피해 다녔습니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동굴 속에서 잠시 쉴 때에 다윗의 일행의 눈에 띄었습니다. 다윗은 잠든 사울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조금 잘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자는 부하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어쨌거나 사울은 하느님의 기름 부은 자였으므로 그를 살해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잠에서 깨어나 부하들을 이끌고 동굴을 나오자 다윗이 그를 불러 그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음을 깨닫고 크게 감동한 채로 군대를 이끌고 기브아로 돌아갔습니다. 다윗도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숨을 곳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이즈음 사무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슬퍼하며 그를 라마에 장사지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마음이 변해 다시금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사울의 창과 물병을 훔쳐 나오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사울은 또 다시 감동하며 다윗에게 기브아로 돌아오라 청했습니다. 다윗은 약속을 깬 사울을 믿을 수 없어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얻은 성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신앙심도 흐려지고 몸도 노쇠해지자 사울은 용기마저도 잃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고 하느님의 뜻을 전해줄 제사장도 없었습니다. 사울은 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엔돌이란 곳에 있는 신접한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주술로 혼백을 불러내는 일을 왕명으로 금지한 당사자가 스스로 법을 어긴 것입니다. 사울은 그 여자의 도움을 받아 사무엘의 유령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아들 셋이 다음날 죽게 되고 전쟁은 블레셋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무엘 상권 28장에 있는 이 일화로부터 우리는 구약 성서 저자들의 사후세계관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가 죽음으로써 소멸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지하의 특정한 공간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의 눈앞에 나타날 때는 생전에 즐겨 입던 옷차림으로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다음날 전투에서 블레셋 병사들은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때 요나단과 그의 두 아우가 죽고 사울은 화살에 맞아 크게 다쳤습니다. 사울은 큰 부상을 입은 자신을 블레셋 사람들이 발견하면 큰 모욕과 고통을 안길 것이라 생각해 갑옷을 드는 부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하는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제가 죽일 수는 없습니다.” 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역대기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평가를 내립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주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또한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주님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다."(역대기 상권 10장 13, 14절)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이 그 당시 시글락 성읍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던 다윗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은 다윗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습니다. 다윗이 하느님께 앞으로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자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헤브론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식구들과 부하들을 모두 데리고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유다지파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한편 다른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 중 하나인 이스보셋이 다스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윗은 블레셋의 신하 즉 분봉왕의 위치였습니다. 블레셋이 분할통치 정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다지파에게 다윗은 블레셋과 자신들의 관계를 조정하여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윗 또한 유다지파였습니다. 이방 강국으로 망명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의 왕이 되는 일은 전통적인 사상에 비추어 볼 때는 엄연한 반역이었습니다. 물론 혈통으로 왕좌를 세습한 나머지 지파 또한 전통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 역사는 왕권 확립의 단계에 차근차근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의 가장 선두에 바로 다윗이 존재합니다.

  다윗이 유다를 통치한 지 7년 하고도 반이 더 지났을 때, 나머지 공동체의 지도자 이스보넷과 그의 장군 아브넬 사이에 내분이 일었습니다. 다윗의 부하 요압은 다윗과 아브넬과 협상할 때를 노려 그를 찔러 죽였습니다. 아브넬은 기브온 전투에서 요압의 동생 아사엘을 죽인 사람이라 요압으로서는 복수를 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보넷은 정체 모를 자객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원로들은 다윗의 군사력과 지도력을 인정하여 마침내 그를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통일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된 다윗은 더 이상 블레셋의 분봉왕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면전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인근 아둘람 요새를 근거지로 삼아 산악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기선을 잡은 다윗은 블레셋을 밀어붙여 확실한 우위를 점했습니다.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에게서 되찾은 하느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다시 지은 성막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예루살렘은 남북 두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라 새로운 중심지로 적합했습니다. 성서에는 이때의 법궤에 관한 일화가 하나 적혀 있습니다. 법궤를 싣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짐차를 몰던 소몰이꾼이 법궤가 떨어질까 봐 손을 대자 곧바로 엎드려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먼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장들을 보내 법궤를 무사히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처럼 법궤는 제사장만이 손댈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요나단에겐 므비보셋이라는 아들이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유모에 안겨 피난하던 중에 다리를 크게 다쳐 절름발이였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넓은 땅을 주고 이후로도 줄곧 보살펴주었습니다.      

  다윗은 집권한 뒤에 잦은 정복전쟁을 펼쳤습니다. 그는 상비군을 통해 이웃나라들을 침략하여 물적 기반을 쌓았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사울 시대의 궁궐터는 일반 사람의 집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없으나 다윗 때에는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라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백성이 잦은 건설 사업으로 착취당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초기의 평등한 사회는 사울을 거쳐 다윗에 이르러서는 고대 근동지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절대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흠모하여 권력을 이용해 우리아를 최전선에서 죽게 하고 그 여자를 취했습니다. 이 일로 예언자 나단이 질책하자 그제야 다윗은 자기 잘못을 깨달아 시인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녀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어 태어난 아들이 바로 훗날 다윗의 뒤를 이을 솔로몬입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은 아주 잘생긴 데다 머리도 좋았습니다. 북쪽 사람들의 송사를 주로 해결해주며 인심을 얻은 그는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이 싸움에서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피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이방인들로 구성된 용병을 이용해 압살롬의 이스라엘 의용군을 진압했습니다. 용병 가운데에는 잇대라는 이가 지휘하는 블레셋 족속의 부대도 있었습니다.

  사울 가문 출신인 세바는 북이스라엘의 권익을 지킨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에게 붙으면 돌아올 몫이 없고, 이새에게 붙으면 물려받을 유산이 없다.” 그의 선동으로 이스라엘이 규합했습니다. 다윗은 이번에는 요압을 중심으로 하는 사병들의 힘으로 봉기를 진압했습니다.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으로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남북 간에 지역감정의 골이 무척 깊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부하 요압을 시켜 전국의 군인 인원을 헤아리던 시절에 여부스 사람 오르난(아리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사용하던 모리아 산을 금 육백 세겔을 주고 샀습니다. 당시 전염병이 크게 돌았는데, 다윗이 이곳에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올리자 전염병이 멎었습니다. 다윗은 모리아산 꼭대기에 커다란 성전을 지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선 그에게 '너는 군인으로서 많은 피를 흘렸으므로,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역대기 상권 21장부터 28장)

  다윗은 모세 때와는 조금 다른 계약을 하느님과 맺었습니다. 모세의 계약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계명들을 충실하게 지키는지, 즉 순종/불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의 계약은 하느님의 주체적인 언약입니다. 

  “나 너의 하느님이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사무엘하 7:5)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사무엘하 7:16)

  다윗은 하느님께 물리적인 집(성전)을 짓겠다고 나서고, 하느님은 집안(왕조)을 지어주시겠다고 응답합니다. 그것도 영원토록. 사실 이 부분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약속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관심은 민족 하나의 번창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에 있을 테니까요. 다윗이 친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한 일 또한 당시 이스라엘의 전통이라기보다는 가나안 지역의 왕권 제도에 가깝습니다. 다윗의 새로운 계약은 분명 이제까지와는 다른 왕정 이데올로기였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 이후로도 여전히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겐 민족의 신이고 기독교인에게는 인류의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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