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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31. 2019

아모스, 호세아

하느님이 바라는 바

  여로보암 2세는 그의 아버지 여호아스와 공동통치를 체험한 뒤에 왕좌에 오른 사람으로서 솔로몬 시기와 맞먹을 정도로 북왕국 곧 이스라엘을 융성하게 한 왕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부귀영화란 소수의 상류층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농민을 비롯한 민중은 억압과 착취에 시달렸습니다. 아모스는 바로 이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그는 직업적인 예언자가 아니라 드고아라는 곳에서 목자로 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하느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의 상류층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은으로 의로운 이를 팔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팔며, 힘없는 자의 머리를 밟아 먼지 속에 처박고, 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인에게 다녀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눕고,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는구나.”

  당시 종교지도자 아마지야는 아모스를 역모를 꾀하는 자, 나라를 망치려는 자로 규정하며 경쟁국인 유다로 가서 그곳에서나 예언하라며 비난했습니다. 국가의 발전이 곧 축복이라는 아마지야의 논리에 맞서 아모스는 참된 축복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공의가 바로 선 데서 오는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공인 지도자들이 하느님께서 풍요로운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다고 설교할 때, 야인인 아모스는 하느님께서 지배층의 탐욕에 대해 분노하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는 왕은 물론 백성 전체가 큰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아모스의 처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의가 물같이, 서로 위하는 마음을 마르지 않는 시냇물처럼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     




  아모스가 여로보암 2세 후기에 잠깐 활동한 예언자라면,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때와 여로보암 2세의 사후와 외부 민족의 침략에 시달리고 쿠데타로 요동하던 시기를 거쳐 북왕국의 멸망까지 체험한 예언자입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호세아에 와서 더욱 발전적으로 이어집니다. 

  호세아는 불륜과 매춘을 저지른 아내를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남편의 아픔을 우상숭배와 탐욕에 절어 지내는 이스라엘 국가를 내려다보시는 하느님의 아픔으로 감정이입합니다.

  “너는 가서 음탕한 여인을 맞아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 이 나라가 하느님을 떠나 크게 음탕함이니라.”

  아내는 불륜 상대가 약속하는 풍요로움에 이끌려 남편을 버립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후회만 남을 뿐이고, 더욱이 애초에 그 풍요는 남편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상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누리거나 추구하는 풍요가 바알로부터 오는 줄 알지만 실상은 하느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호세아는 정의와 평등과 사랑을 무시해버린 상류층 위주의 국가발전주의를 불륜과 매춘에 빗대어 비판한 것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해 사용한 금과 은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건만 알지 못한다.”(호세아 2장 8절)

  하지만 호세아의 태도는 비난과 저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정한 아내에게 끊임없이 돌아오라 외치는 선량한 남편처럼 하느님 또한 “너 이스라엘아, 내게 돌아오라.” 하고 외치십니다. 회개에 뒤따르는 용서와 치유와 회복과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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