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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31. 2019

이사야, 미가

인류 최후의 구원을 예언하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해 남왕국 유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 탓에 이스라엘이 먼저 앗시리아 제국, 다마스커스 등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방호족들의 쿠데타가 빈번하지 않았을 뿐, 유다의 왕권도 불안정했습니다. 아하지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지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통치자들은 모두 살해를 당해 왕좌를 물러났습니다. 특히 이방 여인 아달랴의 왕위찬탈은 다윗 혈통으로 이어지던 왕권의 위세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유다의 온 백성이 아마지야의 아들 웃시야(아샤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나이 16세였습니다. 살해당한 아버지를 이어 왕에 오른 웃시야와 그를 이은 요담, 아하스의 통치시기에 유다 왕국은 농업, 목축업, 상업이 고루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지배층의 부정부패 탓에 농민 중심의 일반 평민이 참아내야 하는 희생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와 미가 같은 예언자들은 바로 그 점을 지목했습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하느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스스로 씻어 깨끗하게 하라. 내 목전에서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우라. 고아의 인권을 보살피며 과부를 변호하라.”

  지배층의 타락을 지적하며 온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선언을 낳습니다. 

  “와서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빛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빛 같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는 하느님이 가져올 최후의 평화와 메시야가 처녀의 몸에서 날 것임을 예언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분이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시리라. 사람들은 칼을 두들겨 보습을 만들고 창을 두들겨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어 전쟁하거나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즈키야에 이르도록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히즈키야는 노년의 이사야를 국가의 스승으로 대접한 듯합니다.

  미가는 요담과 아하스의 공동통치기간부터 아시리아가 유다를 침공한 기원전 701년 사이에 활약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지주, 사제, 예언자 등 지배층에 속한 사람들의 약탈을 힐난하고 결국 그들 탓에 유다도 멸망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어야 할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될 것이며 성전이 있던 산은 잡초만 높게 우거진 곳이 되리라.”(미가 3:12)

  유다 왕국의 외교정책은 몹시 불안했습니다. 아하스 왕은 이스라엘-다마스커스 연합군의 침공을 받는 와중에 아시리아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결과적으로 아시리아의 군대가 영토를 짓밟게 하는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아하즈와 히즈키야 통치시기에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은 하느님을 의존하기보다 외국의 힘을 더욱 의존했습니다. 히즈키야 왕은 이사야가 경고(이사야 20장, 22장)했음에도 전쟁 위험이 있는 국제 동맹에 섣불리 끼어들었습니다. 

  이사야와 미가는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지난날의 평등한 지파동맹을 추구하는 대신 이상적인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민중을 사랑으로 이끌 참된 군주입니다. 특히 이사야는 하느님 백성을 대신해 고난을 받을 그리스도의 모습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척박한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 같아서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네. 눈길을 끌 만한 풍채도 없었네. 그는 멸시를 당해 버림받고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니 우리도 또한 그를 업신여겼네.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주었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었네.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만 생각했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탓이요, 그가 으스러짐은 우리의 죄악 탓이라. 그가 징계를 맞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얻게 되었고 그가 상함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이사야 53:2-5)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가 5:2)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마침내 멸망하고 맙니다. 수많은 유민들이 유다로 남하했습니다. 이 시기에 등극한 유다 임금이 바로 히즈키야입니다. 아시리아 제국이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없을 때이기도 했습니다. 히즈키야는 이스라엘 영토 상당 부분을 유다로 편입시키며 경제적 기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개혁을 감행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수리(역하 29:3-36),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냄(역하 30장), 이스라엘에 있던 지방성소와 산당들 철거, 십일조 제도 정비(역하 31:2-10) 등. 십일조 제도의 정비는 이스라엘의 기브온, 길갈, 단, 베델, 세겜, 실로 등지에서 제사를 담당했을 레위 지파를 위한 배려였을 것입니다.

  히즈키야의 개혁은 큰 성과를 보진 못하였지만, 훗날 요시아의 통치시기에 본격적으로 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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