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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Jun 29. 2024

뗀떼모찌 성향이 이끈 운전공포증 극복기

택시비로 만 원 쓸 순 없잖아?

초등학교 1학년 코흘리개 시절 피아노학원 놀이터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는 나의 절친 도나. 서로 결혼을 하며 나는 경기도에, 도나는 부산에 거주하며 지난 몇 년 간 왕래가 쉽지 않았다. 현재 공동육아로 부산 친정에 지내면서 종종 만남을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한 요즈음이다.


"오늘 밥 사 줄 테니 만나자."


얼마 전 사랑이 돌잔치가 끝나고 함께 호캉스를 즐겼는데 그 당시 호텔값을 내가 부담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 알았어!"


흔쾌히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XX동에서 4시 30분쯤 레슨 끝나는데 너희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


현재 팔통증으로 운전이 쉽지 않은 나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도나는 흔쾌히 나를 데리러 와 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차가 너무 막히네. 내가 택시비 줄 테니 우리 동네로 와줄 수 있어?"

"알았어. 내가 갈게."


네이버로 검색해 보니 택시비가 만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참 고민하다가 운전대를 잡았다. 임신 후기부터 겁이 나서 운전대를 내려놓았고 사랑이가 돌이 지났으니 적어도 1년 정도는 운전을 쉰 셈이다.


"오늘 차 몰아보려고. 키 어디 있어?"


남편의 우려 가득한 눈빛을 덤덤하게 무시하려 애썼지만 사실 약간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밥을 사준다는 친구에게 택시비까지 부담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버스를 타자니 배고픈 친구가 오래 기다려야 하고 날씨도 덥다.


'왕년에 왕복 60km 자차로 출퇴근했잖아. 출장도 많이 다녔고. 그 감각이 어디 가겠어?'


애써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유튜브 뮤직 어플을 열어 양카전용노래 플레이스트를 재생시켰다. (나 펭귀니 K5하이브리드 차주다. K5는 오래전부터 '양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내 차는 튜닝을 전혀 하지 않아 점잖게 보이지만. 자고로 K5는 순정파가 최고다.)



'얼마만의 운전이야!'


대낮인데 호기롭게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끼고 시동을 걸었다.


약간은 설레기도 했다.


코스가 쉬운 편이라 나의 운전 공포증을 극복하기에도 제격이라며 마음을 다잡는 순간 갑자기 유턴구간이 나타났다. 나 펭귀니, 오여사로 예전부터 유턴을 두려워했지만 이 구간을 건너뛰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 불볕더위에 기다릴 친구 생각을 하며 이 악물고 핸들을 돌렸다.


'휴~'


우여곡절 끝에 친구와의 만남 장소에 도착했다.


"이 집 맛있어. 먹어봐!"



영롱한 갈비의 자태를 보니 운전의 두려움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운전한다고 힘들었지? 팔은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잘라줄게."


내 앞에 수저를 놓아주더니 고기까지 잘라주는 그녀는 천사다.


"다 먹었으면 카페 가야지?"



도나의 손에 이끌려 방문한 한옥카페.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건강차는 익숙지 않아 모르는 말 투성이다.


"입문단계니까 무난한 메뉴 중에 골라봐."


한참을 고민하다 아이스황차와 오매자청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효능을 검색해 보니 황차가 화병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어 아이스황차로 결정했다.



친구의 바나나쉐이크가 탐났지만 내 건강을 생각해서 메뉴를 권유해 준 도나의 마음을 배신할 순 없다. 


차는 그저 거들뿐 수대삼매경에 빠져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어쩌면 그간 내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 두려웠던 건 팔통증보다도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팔이 아파도 글을 쓰고 아기를 안고 이유식을 먹였다.


교통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한 지금,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알아간다. 조금씩,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다 보면 팔통증이 씻은 듯이 가시고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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