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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Dec 18. 2023

유일한 기쁨

네가 나에게 준 선물,  자기 사랑

밤 11시. 사랑이의 마지막 수유시간이다.     


아기를 낳으면 완전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조리원에서 단유를 했다. 모유수유가 아기의 건강과 모녀간의 애착증진에 좋다고 하여 꼭 성공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더군다나 조리원에서 경산모로 착각할 만큼 유축량이 많은 편이어서 아깝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많이 사랑해 주면 된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뭔가 나쁜 엄마가 된 듯한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다행히 사랑이는 분유를 거부하지 않고 소화능력 또한 양호하여 토하지 않아 수월한 편이다. 우리 아기는 꼭 내 마음을 알아주는 천사 같다.

    

사랑이는 주로 밤 8시-9시 정도면 잠이 드는데 마지막 수유시간인 11시가 되면 눈을 감은 채로 분유를 쭉쭉 빨아먹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기가 분유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마음이 벅차올랐다. 매일 하던 일인데 오늘은 왜 다르게 느껴졌을까.     


일에 욕심이 많았던 난 한 가지 분야에서 정점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거쳐온 간호사, 전문상담사 중 어느 한 분야에서도 세상에 당당하게 내밀 수 있을 정도의 성과는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사랑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전문상담사로서 한창 성장을 이루고 있던 시점이라 좋기도 하면서 깊은 고민에 잠기기도 했다. 35세가 출산하기에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여전히 내 삶이 중요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내가 엄마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사랑이가 6개월이 된 지금 이 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니 눈앞이 아찔하다. 눈을 감은 채로 내가 주는 분유를 쭉쭉 빨고 있는 우리 아기의 모습을 보며 혹여 나중에 훌쩍 커서 사춘기가 되어 나에게 반항을 하는 시기가 오거나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난다 해도 지금의 이 시간이 전혀 억울하거나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동육아로 가족들의 도움을 받고 있고 그 덕분에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있기에 혼자 오롯이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다른 엄마들보다는 나은 환경이라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앞에 드러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닐지라도 우리 아기의 엄마로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스스로가 신기했다.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가사의 가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나 역시 임신과 출산을 겪기 이전에는 이런 흐름에 내 생각을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임신, 출산, 육아. 한 생명을 열 달간 품고 또 긴 세월 동안 길러내는 것.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또 때로는 하고 싶지 않아도 묵묵히 해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기를 잘 키운다는 개념은 각자 다르지만 인고의 세월을 버텨도 내 아이가 어떤 성인으로 자라날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세상에서 인정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저 내 아이이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다른 어떤 성과로도 바꾸기 힘든 이 기쁨은 오로지 사랑이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만족할만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존재였을 터.  

   

사람의 가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아닌 존재 자체로 결정된다는 말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다 보니 조금씩 이 말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스스로를 대할 때도 나의 존재 자체로 귀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우게 된다.      


우리 아기는 내가 남들로부터 존경받을만한 대단한 엄마라서 좋을까? 아니다. 그냥 엄마는 엄마니까 좋은 것이다. 사랑이와 함께하면서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을지, 아이가 커서 마음이 헛헛해지면 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채용공고를 뒤지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현듯 또 불안감이 찾아올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사랑이에게 엄마로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그런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또다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사랑이에게 엄마로서 존재하고 있다. 직장의 일은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능하지만 엄마의 존재는 대체불가능하다.      


‘엄마로서 존재하고 있으니 이미 일하고 있구나.’     


이렇게 또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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