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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Dec 19. 2023

생각보다 강한 나의 superego

수면마취를 이기다

프로이트는 성격의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를 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원초아(id)는 성격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으로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쾌락원리에 의해 작용하며, 원초아의 충동은 주로 성적 본능과 공격적 본능이다. 자아(ego)는 원초아와 초자아를 모두 부분적으로 만족시키는 타협점을 찾으려 하며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원초아와 외계와의 매개 역할을 하여 현실에 맞추어 원초아의 활동을 이성적으로 지배한다. 원초아가 선천적이고 무의식적인 데 비해 자아는 후천적이고 주로 의식적이다. 초자아(superego)는 사회의 가치와 도덕이 내면화된 것으로 도덕원칙을 따른다. 일반적으로 양심을 말하며, 초자아는 어려서 아이가 부모의 도덕적 표준에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이트의 성격이론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23년 5월 29일 11시 6분. 내 딸 사랑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자연분만이 산모와 아기에게 가장 좋은 출산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겁이 많은 난 아기를 임신한 순간부터 무조건 제왕절개로 출산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열 달을 버텼다. 실제 지인들 중에서도 선택 제왕절개로 출산한 사례가 많아 나의 결정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믿으며 지냈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전자간증 의심으로 예정된 6월 1일보다 빠른 5월 29일에 응급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겁이 많은 난 갑자기 당겨진 수술 날짜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드디어 D-day. 결전의 날이 왔다. 시간 맞춰 병원에 도착하고 수술 준비를 마친 후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과 선생님이 수술 관련 사항을 확인하는 도중 심장이 너무 급하게 뛴다며 놀라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겁이 많아 무섭다고 말했더니 심호흡을 시키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곧 심박수는 내려갔고 새우처럼 웅크린 상태로 마취가 시작되었다. 경막 외 마취 후 수면마취로 잠든 상태에서 수술이 시작되었고 눈 떠보니 3시간이 지나있었다.


회복실에서 남편이 내 손을 꼭 잡고 괜찮은지 물었고 난 아기가 어떤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기 사진을 보여주는데 비주얼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아기가 건강하고 예쁘다며 좋아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건강하다니 됐어”라고 말했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씻겨 놓은 모습을 보니 제법 그럴듯했는데 원래 아기들이 처음 태어날 땐 그런 모습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미안해 사랑아.’     


병실로 옮겨지고 남편이 회복실에서 자고 있던 내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퉁퉁 부은 코끼리 한 마리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우리 아기 첫 비주얼의 충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야. 아무리 갓 아기 낳았다지만 이건 심하잖아.”

“무슨 소리야. 헛소리 안 하는 건 너밖에 없었어.”     


남편 말인즉슨 회복실에 있던 산모 중 수면마취의 영향으로 헛소리를 하는 산모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어떤 말을 할지 내심 궁금했는데 전혀 마취되지 않은 사람처럼 멀쩡하게 말하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살짝 깨는 것 같아서 괜찮냐고 물으니까 괜찮아 잠 와서 좀 더 잘게 하더니 다시 코 골고 자더라고. 그러고는 그 뒤에 다시 깨서 아기 궁금하다고 물었어. 그게 다야. 내심 무슨 말할지 궁금했는데 좀 시시했어.”     


남편은 시시하다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뿌듯했다.


‘생각보다 나의 superego는 강하구나.’     


평소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고 식탐도 강한 편이라 id로 충만한 삶이라 생각했는데 수면마취의 영향력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이랄까.     


형이상학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넘치는 식욕으로 형이하학적인 차원에 머물러있는 사람인 것 같아 늘 답답했는데 출산할 때만큼은 형이상학적인, 고상한 산모였다는 자부심.


“먹는 것을 좋아할 뿐 나는 나름 정신줄 잡고 사는 사람이야. 나도 때로는 형이상학적으로 산다고. 봤지?”     

“누가 뭐래?” 남편이 웃었다.   

  

‘사랑아 고마워. 엄마의 형이상학적인 면을 깨닫게 해 줘서.’     

잠든 아기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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