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귀니 Feb 04. 2024

겪어봐서 안다는 말, 고통으로 성장한다는 말의 함정

No pains, No.gains?

힘든 일을 토로할 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다 지나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내뱉은 말들이었겠지. 나 역시도 철없던 시절에 저런 무책임한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판 적이 있었다.


고통을 겪어보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 그리고 고난으로 성장한다는 말은 진짜일까?


흔히들 고통받는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No pains, No gains'라는 영어속담도 있고 성경에서도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설명한다.

그렇기에 개인이 겪는 고통은 성장을 위해 모두 감수해야 할 당연한 일일까? 어떤 고통도 성장을 위해서 감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인간인 걸까? 그렇다면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 고통을 잘 감내하며 비교적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할까?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고통은 분명 인간의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극복 가능한 좌절, 극복 가능한 고통만이 삶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경험, 깊은 상처를 남긴 외상적 사건은 개인의 삶에 왜곡된 신념을 갖게 하여 병리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하고 그 방식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아이를 양육할 때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삶을 건강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세상을 살아가는 안전한 방법,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가정이라는 안전한 장 안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와 함께하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단지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방임이고 폭력이다.

사람의 고통은 모두 개별적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그 안에서 모두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시선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배부른 소리야.", "나약해서 그래.",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나중에 다 지나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성장을 위해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객관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현재 경험하고 있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심각한 무력감이 느껴질 때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나약하니까.", "너도 문제가 있을 거야.", "남 탓 하지 마."

그래 틀린 말은 아니겠지. 다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나 역시 남탓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데 이 역시 내 마음의 영역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도움이 절실했지만 배부른 소리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시간들을 향한 억울함의 분출이었던 건 아닐까.

그들의 모습 속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보았기에, 치유되지 못한 내 상처를 바라보는 냉담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대해왔던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결국 내 상처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상처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