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합니다. 아이도 완전한 성인도 아닌 이 시기는 중간인으로서 자아정체감을 형성해 나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은 청소년기의 특징을 섬세하게 잘 묘사한 작품으로 현시대 우리나라의 학교 문화와 청소년기 또래관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예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지만 아직까지도 학벌주의로 인한 입시경쟁이 과열된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아이들의 성적은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의 서열이 되는 경우가 많죠. 교육열이 높은 지역일수록 이런 특징은 두드러집니다.
휘영은 유복한 사업가 집안의 자녀로 학업 성적이 뛰어나지만 늘 1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긴장과 불안이 높은 아이입니다.
휘영의 아버지는 휘영의 교육을 위해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합당한 성과를 내지 못할 때마다 배우자와 휘영에게 자신의 돈을 낭비한다며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교사를 매수하여 성적 조작까지 요구하며 아들 휘영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새로 부임한 담임교사인 한결은 자신만의 소신이 분명한 인물로 쉽게 휘둘리지 않죠.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는 한결의 모습은 '이 시대 청소년 교육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지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라이벌인 상훈에 의해 성적조작 사건이 발각되고 휘영은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입니다.
"어차피 엄마 아빠가 해결해 주실 거잖아요."
시험에서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얻고 휘영이 엄마에게 했던 말을 통해 아이의 자율성을 침범하는 교육의 위험성을 알 수 있죠. 아이의 좌절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 매우 고통스럽지만 모든 좌절을 막아주는 양육태도는 아이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즉, 부모의 위치에서 줄 수 있는 진짜 사랑은 아이의 좌절을 함께 견디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아이들은 도움 받는 것이 감사한 일임을,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배울 수 있죠.
수빈의 엄마는 명문대를 졸업한 커리어 우먼입니다. 딸 수빈이를 자신과 같은 엘리트로 키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고군분투하죠. 휘영의 엄마에게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며 수빈을 그룹과외에 참여시키려고 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수빈이는 엄마의 일방적인 압박이 달갑지 않습니다.
급기야는 수빈과 준우의 연애 소식을 알고 나서 경호원까지 고용하여 딸을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준우가 이전 학교에서 강제 전학 왔다는 이유로 수빈과 준우의 연애를 반대했죠. 사실 준우의 강제전학은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수빈 엄마에게는 이런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수빈과 준우는 각자의 자리에서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서로의 관계를 인정받으려 노력하죠.
반면 준우의 엄마는 아들의 연애를 존중했습니다. 준우와 수빈을 헤어지게 해 달라며 찾아온 수빈 엄마에게
"전 준우 선택을 존중해요."라며 아들 준우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식당 일로 아들과 떨어져 살며 충분한 금전적 지원을 해 줄 수 없는 엄마였지만 아들 준우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인격적 존재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죠. 준우의 엄마는 아들 준우의 성적보다 행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들 준우가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죠.
결국 준우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에도 준우의 엄마는 준우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휘영이와 수빈이, 준우의 부모님은 모두 아이를 사랑했지만 아이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알아준 부모님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준우의 엄마였습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우수한 학벌로 상위계층에 진입하는 것이 행복의 전부라고 믿는 믿음은 몰아붙이고 강요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지..."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선택권을 빼앗긴 채 강요와 억압으로 이뤄 낸 성취를 이룬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원하는 대로 따랐고 합당한 성취도 이뤘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교육은 청소년기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 존재의 가치를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의 위험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좌절을 견디는 힘을 길러주는 것. 세상에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가 필요로 하는 도움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것. 좋은 성적을 얻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