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귀니 Mar 29. 2024

그놈의 호흡

무너진 체계를 재건하라


"지금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어요. 목, 어깨 통증으로 방문하시는 회원님들의 경우 주로 호흡할 때 양쪽 어깨가 솟아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회원님은 오른쪽에 비해 왼쪽어깨가 많이 솟아올라요."


왼쪽 어깨 부상으로 몸을 잘못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전문가의 눈은 정확하다.


'제대로 왔구나.'


스스로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끼려던 찰나 선생님께서는 또 다른 피드백으로 나의 확신을 굳힐 수 있게 도와주셨다.


"호흡 내뱉을 때 왼쪽 복부랑 자궁, 방광 부근에 경련이 일어나요. 이건 아마 출산과도 관련 있을 듯합니다."


제왕절개로 자궁에 유착이 생겼다. 건강검진 하던 날 받은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한다. 유착방지필름을 믿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유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궁예가 관심법 쓰는 수준인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오른손을 왼쪽 어깨 위에 놓은 채로 자궁과 방광의 움직임을 왼손으로 느껴보기.'


이것이 내게 주어진 숙제다. 인간은 누구나 24시간 내내 호흡해야만 살 수 있기에 어떻게 호흡하는지는 통증개선의 중요한 요인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의식적으로 호흡에 신경 쓰다 보니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임신 당시 흉추염좌를 진단받고 왼쪽 전거근에 침치료를 받고 있었다. 본래 운동부족에 부상에 설상가상으로 임신까지 겹쳐 흉추는 점점 굳어갔다. 흉추는 호흡과 관련 있기에 잘못된 호흡으로 왼쪽 목, 어깨가 굳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왼팔 타박상으로 팔까지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니 갈 곳을 잃은 염증덩어리들은 내 턱까지 치고 올라와 턱관절까지 아파왔다.


임신 당시에는 태아를 품고 있었기에 턱 끝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30년 넘게 유지해 온 호흡의 패턴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이 역시 내가 마음먹기 달렸다.


잘못된 사회 체계는 재건하지 않으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숱한 혁명의 역사가 이를 반영하듯이 어쩌면  우리 몸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치기 전의 내 삶을 그리워하며 불평과 원망의 터널에 갇혀 있을 때가 있었다. 특히 임신 기간에는 내 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워서 많이 울기도 했다.


괴로운 시절을 버텨 건강한 아기가 찾아왔듯이 내 몸의 체계를 바로 세우는 이 시간을 잘 거치면 또 다른 의미 있는 삶이 찾아올 것이다.


완전히 다치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내 몸을 알아가고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워가는 재활운동으로 내 마음까지 바로 세우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길게 호흡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 의식하지 않아도 깊이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숙제는 계속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활은 환자 스스로 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