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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Mar 28. 2024

재활은 환자 스스로 하는 것이다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말하는 삶


도수치료와 재활운동을 마치고 병원비를 계산하려는데 데스크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비 안 내고 도망가도 상관없나?'


치료 잘 받고 기분 좋게 돈 내고 집에 가려는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썩 내키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려도 직원이 보이지 않아 결국 불렀다.


"계산합시다."


계산하러 나온 직원이 의도를 알기 힘든 미소와 함께 나에게 한마디 했다.


"계산해 주세요는 들어봤어도 계산합시다는 처음 듣네요."


직원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산합시다라는 말의 어감이 불쾌했나?'

역지사지로 생각해 봐도 그리 불쾌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대꾸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계산해 주세요"와 "계산합시다"라는 두 문장을 곱씹어보았다.


'계산'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같지만 "계산해 주세요"는 수동태의 문장구조이다. 반면 "계산합시다"는 능동태의 문장구조이다.


사실 계산하려는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행위는 실례를 범한 것이다. 능동태의 문장구조를 지적하기보다는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기에 쏘아붙이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서 수동태로 말하라는 요구가 얼마나 무례한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침묵이 답이다.


'내가 만만한가?'


잠시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를 어떻게 대할지는 상대방의 영역이다.


'왜 나는 만만해 보이면 안 되는가?'


역발상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는 특효약이다. 침묵으로 결코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줬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말은 그 사람의 태도를 반영한다. 통증과 더불어산 지 약 2년이 넘어간다. 임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나에게 축복과 통증을 함께 선사했다.


아파서 힘들지만 배운 것도 많다.


조급한 마음은 재활을 그르친다는 것. 데스크 직원의 어이없는 말에 즉각적인 분노로 반응하기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며 내 마음을 살폈다.


의료기관이나 특정인에 의존하기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재활에 임해야 한다는 것. 즉, 재활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결국에는 환자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의 문장은 재활을 향한 나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통 소개해드려도 잘 안 가시거든요. 그런데 환자분은 워낙 의지가 강해 보이셔서 해내실 것 같아요."


40일간 입원했던 병원에서 나를 담당했던 도수치료 선생님이 본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꽤 훌륭한 환자다. 결코 만만하게 보일 사람은 아니다. 상대방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알기에 침묵으로 속마음을 삼켜도 전혀 억울하지 않다.


"기다려서 불쾌했어요. 무슨 이유로 기다리게 하셨나요? 제 말을 지적하기 전에 그 부분부터 먼저 설명해 주시죠."


비록 글일 뿐이지만 삼켰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내뱉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앞으로 그 병원 갈 거냐고?


당연히 간다. 도수치료가 내 몸에 잘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감정으로 큰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도움 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새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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