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외면해도, 싫다고 잘라 버려도 초록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 결국 사랑 때문에 다시 고개를 내미는 그런 잡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습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글을 쓰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온갖 찌질한 이야기들을 적어두던 노트가 있다. 두 눈 뜨고 봐주기 힘든 글이 유독, 눈에 박힌 모래알처럼 껄끄러운 날이 있다. 술주정에 가까운 자기 비하, 오돌오돌 떨리는 두려움까지도 되살아난다. 속으로 '이런 쓰레기 같은...' 이란 말을 뱉어내면서도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정말 울고 싶어지는 날이면 다시 꺼내어 읽는다. 그러면 절로 눈물이 난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을 것만 같은, 이런 까끌까끌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함께 울어주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던 걸까?
사춘기 시절, 손톱으로 칠판을 긁듯 끄적거리던 글쓰기는 머리가 터지기 직전의 피난처였고, 그 롤러코스터 같던 시절이 지남과 동시에 글쓰기도 잊었다. 정말 잊었던 걸까? 그냥 잊었다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렴풋해진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날이었다. 그날따라 운동이라기보단, 흐느적거림에 가까웠던 댄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로 단장한 인도 블록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깔려있었다. 회색과 붉은 블록을 번갈아 밟으며, 습관처럼 숫자를 세며 조금은 촐싹맞게 걷고 있었다. 좀전의 나와 비슷한, 흐느적거리고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동전 두께밖에 안 되는 틈 사이에 풀이 올라와 있었다. 손톱만 한 노란 꽃도 피어있었다. 난독증인지, 안면인식장애인지, 나는 정말로 풀들의 이름을 모른다. 들어도 모르고, 읽었어도 기억이 안 나고, 본 적이 있었어도 여전히 모른다.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도 가여워 보이진 않았다. 작아도, 밟혀도, 쳐다보지 않아도 저 홀로 꼿꼿했다. 카메라 렌즈만 갖다 대도 이름을 알려주는 세상이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물끄러미 쳐다보며 서 있는 내 곁으로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고, 누구 말마따나 '잡것'이라고 할 수 없듯이, 이 풀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여 잡초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마음대로 이름을 지었다. 담쟁이도 아니고 '글쟁이'라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작 내가 듣고 싶은 이름을 내뱉었다는 걸 알고, 같잖아서 후다닥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글 쓰는 재주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고 외면했었다. 그런데 그 '글'이라는 게 문득문득 등짝에 난 뾰루지처럼 신경이 쓰였다. 보이지도 않으니 속 시원히 짜낼 수도 없고, 덧나지나 않을까 걱정하게 했다. 아물었다고 생각하고 잊고 살았다. 별 탈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틈 사이 피어난 그 조그만 '글쟁이'가 나를 멈춰 세웠던 거다. 그래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찾아봤다. '노랑 별꽃'이란다. 이름이 이뻐서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이름만 이쁜 게 흔한 세상이라서 그런지, 숭고하고도 질긴 생명력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속에서 숨을 고르고, 돌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나에게 보란 듯이 꽃을 피워 보여주지 않았는가.
글에 대한 마음이 잡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뽑아내려 하면 내 존재마저 흔들어 버리고, 잘라내도, 밟아버려도 그 눈먼 사랑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에 눈이 멀어 매번 찾아오는가 싶다. 이제는 성가시다고 하지 않고, 사랑을 하고 싶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끝도 없이 되살아나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런 잡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