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친구야! 내가 보이니?

by 펜 끝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갑자기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계기판이 붉어지며 '추돌 주의' 메시지가 떴다. 앞차와 급작스러운 입맞춤을 할 뻔했는데 거리를 확보하라고 알려주다니, 신통했다. 늘 이런저런 거리 조절이 힘든 나에게 꼭 필요한 건데, 몸 어딘가에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 마음이 급한 걸까. 그저 잘 지내고 있으려니 했던 친구의 무심한 듯 절박해 보이는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보고 싶다.'


친구의 입술은 아직 주저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낮술이나 한잔하자며 친구의 손을 이끌었다. 우리의 단골이었던 술집은 이미 헐리고 새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어중간한 오후 시간은 밥을 먹는 사람도 술을 마시는 사람도 없이 한가로웠다. 해가 아직 중천인데 술이라니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 다닐 때는 밥 먹듯 수업 빼먹고 하던 일인데 새삼 처음 해 보는 일인 양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로의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자주 만나지 못했다. 각자 다른 지방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는 이유로 아주 가끔 안부를 전하며 지냈었다. 술이 두 잔쯤 들어갔을 때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양꼬치를 뒤집다 말고 친구가 씩 웃으며 말을 건넨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그 노래 알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놈'이 된다는 노래 말이야."

"남이 아니고 놈?"이냐며 되물었다.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잘 구워서 내 접시에 올려준 고기를 입에 물고 차디찬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나 이혼했어, 좀됐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혼 소식을 전하는 친구를 보며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감정이 정리되고 네 앞에서 울지 않을 자신이 생겼을 때 말하고 싶었어."

내 울음보까지 신경 써주느라 그랬냐고 불판보다 더 벌게진 눈을 흘기고 말았다.

"쿨하게 그냥 '남'이 되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 자꾸 '놈' 소리가 나오는 거 있지."

나도 잘 알고 있는 그 선배가 '놈'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구의 남편은 우리 과의 선배였고 둘은 껌딱지 같던 커플이었다. 친구가 말하지 못했던 이유였나 보다. 양쪽을 다 아는 사이, 일방적으로 누구를 욕하기 힘든 나의 입장 따위를 배려한다고 그랬었나 보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서둘러 챙겨 들고 친구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밤새 술을 마셨고 누구도 취하지 못했다. 마시다 말고 콩나물 해장라면을 끓여왔다.

"너 술 약하잖아. 이렇게 먹어줘야 안 취하거든." 친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맙네."


눈앞에 친구가 있었지만, 서로를 찾지 않았던 동안의 낯선 시간이 강이 되어 발밑에 흐르고 있었다. 그 강 언저리에서 웃다 울며 떠들긴 했지만 정작 그 강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해하는 척 한 건 아닐까. 다 안다고 생각하고 뻔한 위로를 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한, 오래된 우정은 변변치 못한 이유로 너무 먼 거리에서 희미한 안부만 전했던 거였다.


친구의 첫 직장은 건축설계사무소였다. 취미인 줄 알았던 바느질이 너무 좋아 다시 공부해 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늘 한 가지였다고 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는 남편의 말은 부부 사이를 한순간에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누군가 정을 떼고 싶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는 친구의 말에 결국 내 울음보는 터지고 말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 아무것도 몰라줬던 나의 무감각이 미웠고 친구는 더 미웠다. 친구는 자기 뜻대로 패션전공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방을 차리고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남편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람 옆에선 난 늘 쓸데없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이혼을 결심했을 때 함께 타고 달리던 차에서 나만 뛰어내린 기분이 들더라. 아이들은 그대로 둔 채 말이야. 다 큰 자녀들한테는 양육비가 얼마 나오지 않는대. 나 때문에 아이들이 꿈을 접을까 봐 두려웠어. 엄마랑 살자는 말이 목구멍에서 안 나오더라고. "

이 말을 하면서도 친구는 울지 않았다. 20살 그때의 발랄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내일 보리암에 소풍 가기로 했잖아. "일찍 자자."

"새벽 3시니까, 너무 일찍 자는 건 맞네." 친구의 등짝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남해 금산 보리암은 차로 올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산꼭대기 바위 위에 지어진 작은 사찰이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은모래 해수욕장이 정말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4대 '관음보살 기도도량' 중 하나인 사찰이라고 한다. 왠지 기도발이 엄청나게 셀 것만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정한 일정이었다. 불자도 아닌 내가 공손히 합장하고 기도를 했다. 친구는 옆에서 계속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문자 삼매경이냐?"

"누구긴, 남자 친구지."

공손히 합장하던 두 손이 어느새 친구의 등짝을 휘갈기고 있었다.

"야, 진작 이야기하지. 그런 줄도 모르고 너 남자 친구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잖아."

"그래? 계속해. 하나 더 생기면 좋지, 뭐. 그리고 어제 말하지 못한 건 하루에 두가지나 말하면 네가 기절할 것 같았거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제 한 발짝씩만 천천히 다가갈 거야. 그러다 한 걸음 물러나기도 하면서. 이제 급한 거 없잖아. 훅하고 다가갔다가 쌩하고 멀어지는 거 해봤으니까."

"그래 맞아. 너 사이드미러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봐봐.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오늘따라 저 말이 왜 이렇게 멋져 보이는 걸까. "

이제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네 곁에 있어 줄게. 이제 거리 조절이 뭔지 좀 알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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