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이어도 괜찮아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도, 처음으로 미워한 사람도 가족이었다.
"이게 가족이야?" 바락바락 엄마에게 대들었었다.
"왜 누구는 맨날 받기만 하는데! 왜 누구는 그게 당연한 건데!"
장남인 오빠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었다. 돈으로 키운 자식을 엄마는 돈 때문에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열심히 벌어다 준 돈은 모두 오빠에게 들어갔다.
"장남이 잘돼야 한다. 그래야 집이 일어난다."던 엄마의 바람은 더 이상 해 줄 게 없어졌을 때 끝이 났다. 그런 오빠를 용서할 수 없었다. 덩달아 엄마까지도 미워졌다.
콩가루 집안이라고? 맞다. 남은 가족들은 시루떡처럼 겹겹이 끌어안고 뒹굴며 콩가루를 묻혔다. 오빠 보란 듯이 고소해지고 싶었다.
못됐다고? 맞다. 나는 못돼지고 싶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회한으로 몸부림치는 엄마를 살려야 했으니까. 같은 피를 물려받았다고 다 끈끈한 건 아니란 걸, 가족이라고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가훈'이란 걸 정하기로 했다.
"따뜻한 무관심"이었다.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말하지 않는 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하지만 늘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준다. 말을 건네면 잘 들어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오빠와의 일은 가슴 한쪽에 상처로 남아있다. 그 얼얼하게 매운, 미운 정이란 걸 갈아 넣어서 치댔다. 뽀얗던 배추가 매운맛에 화들짝 놀라 벌게졌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쓰다듬고 야무지게 둘러 감쌌다. 가족이라는 김장독 안에 꾹꾹 눌러 담은 후 세월을 덮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매운 감정들이 발효되고 숙성되어 감칠맛으로 변해 주길 바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달곰한 묵은지가 되어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날이 오면 잘 익은 묵은지를 꺼내놓고,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척척 걸쳐서 달고 단 밥 한 숟가락 먹고 싶다.
"이게 가족이야?"라던 볼멘소리는 '이게 가족이다.'로 바뀌었다.
내 뒤에 있는 사람이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가깝지만 볼 수가 없다. 걷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가족은 동그라미다.
미웠는데, 정말 미웠는데, 아니었나 보다.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 그래서 애가 단 건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거다.
모서리로 상처를 주고받던 'ㅁ'이 부딪치고 깎여서 동글동글 'ㅇ'이 되어가듯, '사람'도 그렇게 '사랑'이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