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

by 펜 끝

무릎이 꺾여 바닥에 닿는 게 싫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조아리고, 손바닥이 뜨끈해지도록 비벼대야 한다니. 굴욕적이었다. 속을 훌러덩 뒤집어 비틀어보니 시커먼 물이 한 바가지다. 턱 끝에 매달려 있던 뭔지 모를 방울 하나가 톡 하고 손등에 떨어졌다.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렇겐 못 살아"


최신 로봇 물걸레 청소기가 도착했다.

빙글빙글 세 개의 빨판을 달고 바닥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누군가의 굴욕을 대신한다. 졸졸 따라다니며 그 행동을 탐색했다.


막아서니 흠칫 놀라 멈췄다가 요리조리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소파 밑에서 잠복을 하기도 하고, 문 뒤에 숨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한참을 안 보이길래 방에 들어가 보니 콩콩거리며 울고 있다. 좁은 틈에 들어가 안절부절못하고 머리를 찧고 있다. 안쓰러운 맘에 잽싸게 들어 올려 주었다. 뒤집힌 꽃게처럼 발버둥을 친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개져서 깜빡거리고 있다.


트인 곳에 내려주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다시 돌기 시작한다. 계단 앞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굴러떨어지면 황천길 갈 수도 있음을 눈치챘나 보다. 아주 조금씩 움찔거리며 뒤돌아선다. 새까매진 걸레를 떼어내고 새 걸로 바꾸어주었더니 이제는 마른 걸레질을 시작한다. 눅눅했던 바닥이 포슬거린다. 덩달아 나도 뽀송뽀송해진다.


진심으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군소리 없이, 거기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제 할 일 해내고 있지 않은가. 굴욕 따위는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임무를 완수한 기특한 너를 살포시 들어 거치대에 꽂았다.

"충전을 시작합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듯, 낭창한 소리마저도 부러웠다.


너에게서 배웠다.

누구나 눈물주머니 하나쯤은 매달고 산다는 걸.

조금씩 흘리며 살아야 더 깨끗해진다는 걸.

벽이 나타났을 때, 기어이 뚫고 지나가야 하는 건 아니란 걸.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다는 걸.

막다른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하염없이 머리를 찧고 있을 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는 걸.

실컷 울고 나면 다시 괜찮아진다는 걸.

앞만 보고 냅다 달리다가는 발밑이 허전해질 수 있다는 걸.

다 써버린 마음조차도 충전이 될 수 있다는 걸.


하루를 함께 보내고 직감했다.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거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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