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니고, '내내'
'문득'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내내 생각했으면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저 '문득'이라고 말했었다.
눈에 밟혀서 그 집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동네를 지나다가 문득 생각나서 와봤다고 말했다. 집 앞에 찍힌 무수한 내 발자국이 덩달아 당황하고 있는 걸 보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전화를 걸까, 말까. 내내 손에서 놓지 못했으면서, 결국 누르고 말 거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문득 생각나서 한번 해봤어."
수없이 되풀이하며 연습해 놓고도 들키지 않으려고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내심 못 알아듣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문득은 핑계이면서도 수고스러움이다. 들키지 않을 재간도 없으면서 둘러대다가 혼자 당황하고 들켜버린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될 걸 그랬다. '내내 기다렸어요, 보고 싶었어요, 듣고 싶었어요.'라고 말이다.
어떻게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거냐고 묻는 이들이 가끔 있다.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이 글과 거리가 멀어 보여서 그럴 거로 생각했다. 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문득, 쓰고 싶어졌어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건 거짓말이다. 내내 쓰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문득'이 먼저 고개를 내민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쌓인 시간이 보인다. 늘 그랬으므로, 나도 모르게 고백 아닌 고백이 물방울이 터지듯 불쑥 터져버렸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문득'이 잦아지면 '내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정말 '문득'이었으면 하는 것도 있다. 문득 네가 미워졌어, 문득 쓰는 게 싫어졌어. 이렇게 싫고, 미운 마음은 찰나이기를, 문득 떠올랐다가, 사라질 마음이길 바란다.
매 순간, 매일, 매달 그렇게 문득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면 눈여겨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 내내 혼자 외로웠을 마음을 아는 체 해줘야 한다. 마음을 들키는 걸 두려워하기보다 내내 그리웠노라고 먼저 말하는 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곧 들켜버릴 마음을 숨기려 애쓰지 말고, 고백하며 살아야겠다. 말 나온 김에 수줍은 고백을 해본다.
"읽어줘서 고마워. 내 마음을. '문득' 아니고, '내내'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