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로 돌아가는 길
길을 잃었다.
뒤를 돌아보니 흔적조차 없다. 마치 꼬리라도 달려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살랑거리며 흔들어 지워버린 듯하다. 모래언덕 위 발자국처럼 살아온 시간이 작은 바람에도 사라져 버린다. 보잘것없어서인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어쩌면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길 위에서 이렇게 매번 첫걸음이다.
엄마는 나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데 꼬박 하루 반을 노란 세상과 대면했다고 했다. 한 뼘도 되지 않는 그 길을 통과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얼굴은 짜부라지고 퉁퉁 부은 채 그 길을, 겨우 통과했을 때 엄마는 너무 이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대견함이 못남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출산의 기억은 산모에게는 있지만 아기에게는 없다. 어쩌면 그게 내가 받은 첫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그걸 기억한다면 아마도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고통이지 않았을까 싶다.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랐던 부모이지만, 기르다 보면 어디 마음이 한결 같을 수 있겠는가. 대견함은 온데간데없고 이걸 왜 낳았나 싶은 순간들이 도래한다. 부모도 인간이다. 순간의 감정을 우아한 표정으로 감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엄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톤만으로 알 수 있었다. 화가 날 때는 꼭 이름 앞에 성을 붙여서 불렀다. 내 생각에 그건 '네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았다.
열 살 이전의 기억이 별로 없다. 이유는 이렇다. 꿈꿀 때는 그 현실감에, 손에 땀이 날 정도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금세 잊어버린다. 공상이 많은 아이였다.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었다. 상상했던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뭐든 해도 용납해 주었던 엄마 덕에 현실에서의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던 엄마가, 나를 잡기 시작했다. 좋은 시절은 가고 책상 앞에서 시들어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모든 게 싫었다. 주는 대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하라고 하는 건 다 싫었다. 어른들이 미웠다. 등 뒤에서 우리를 양몰이 하듯 했다. 차라리 늑대라도 나타나서 콱 물어 가주길 바랄 정도였다.
탈출을 꿈꾸던 양도 살다 보니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 강한 척 여린 마음을 숨기고 살아야 할 때가 많았다. 때로는 내가 양인지 늑대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갸웃갸웃하면서 제대로 된 삶의 흔적조차 없이 흐릿해진 채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서야 그 숲에 도착했다. 먼 길이었다. 아카시아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들이 춤을 춘다. 세상이 눈부시게 흔들린다. 햇살은 오늘따라 은밀하기까지 한 빛을 내뿜는다. 늑대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상 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숲은 나만의 세상이다. 그 숲속 작은 오솔길이 손짓한다. 이제부터는 흔적을 남겨도 된다고, 무엇으로 그러고 싶은지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경로 이탈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의 핸들을 너무 꽉 쥐고 앞만 보고 오느라 숲을 지나칠 뻔했다. 마음 한편 비밀의 숲에서 다시 첫걸음을 내디딘다.
오솔길 하나를 앞에 두고 가슴이 요동친다. 공상이 많던 아이, 다시 그 아이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