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양연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이건 프러포즈가 아니다. 지워지지 않을 꽃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 엄마에게 들은 말이다. 공부만 하라고, 다른 건 일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 엄마는 된통 뒤통수를 맞았다. 공부로 성공하기엔 그 싹수가 그리 선명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딸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았으니, 고민에 빠진 건 내가 아니라 친정 엄마셨다. 딸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엄마의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딸이 요리에 관한 한, 못하는 건 둘째 치고 관심도 없으니 이 또한 싹수가 노랗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계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하루가 멀다고 전화하셨다. 당연히 제대로 해 먹지 못했다. 전혀 음식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신혼 때 잠시, 남편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남편 역시 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꾹 참고 말없이 잘 먹어주던 시절이 있긴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모두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시 엄마가 내 곁으로 오셨다.
그때, 다시 이 말을 듣게 되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이번엔 뒤에 붙은 말이 바뀌었다. "대신 돈이나 잘 벌어오너라."
이십오 년을 함께 살았다. 절대 아들이 될 수 없는 사위와 여전히 주방을 멀리 돌아서 다니는 딸과 함께한 시간이다. 중간중간 파업을 선언하시기도 했지만, 손주들이 눈에 밟혀 다시 돌아오시곤 했다.
오 년 전 엄마와의 한 집 살림은 끝이 났다. 영구적인 파업을 선언하시고, 눈물을 찔찔 흘리는 나를 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한쪽은 '엄마'였고, 다른 한쪽은 '엄마의 밥'이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힘든 건지 처음 알았다. 남편과 둘이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고 하늘에서 밥이 떨어지지 않는다. 둘이서 당번을 정해서 해보기도 하고, 시켜 먹고, 나가서 먹고, 정 귀찮으면 건너뛰기도 하면서 사뭇 진지하게 살길을 모색했다. 그 무슨 방법을 찾든 중요한 조건 세 가지를 정하고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서로에게 바라지 말기', '뭐를 먹든 우리가 한 것보다 나으니 감사히 먹기', '될 수 있으면 한 끼는 같이 먹기'였다.
요즘 엄마는 했던 말을 자꾸 하신다.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걸 보는 그때가 제일 좋았다."
들을 때마다 명치끝이 아려온다. 엄마의 화양연화를 내가 뺏은 줄도 모르고 살았다. 꽃을 피우자마자 꽃잎을 떨구어, 나에게 꽃길을 만들어 주셨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그렇게 화양연화를 보낸다. 지르밟은 꽃길 위에서 염치없이 밥을 잘도 받아먹고 살았다.
꽃길을 내려다본다. 꽃물이 발을 물들인다. 꽃신을 신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나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던 엄마의 화양연화가 어느새 손끝까지 발갛게 물들인다. 지워지지 않을 꽃물이다. 나 역시 그러할 때가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무엇으로 딸에게 꽃길을 만들어줄지 고민이지만, 궁하면 통할 것이다. 아이들도 보고 자란 게 있으니 기대는 크지 않을 테고, 스스로 꽃길을 개척할지도 모를 일이다.
붉디붉은 그 꽃물이 우리 안에 이미 흐르고 있으니 괜한 걱정일랑은 접어 두어야겠다. 보름 후면 그 꽃을 보러 간다. 자신의 화양연화를 끌어안고 볼을 쓰다듬어 줄 그 손길이 떠올라, 벌써 마음이 배시시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