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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Feb 20. 2019

네가 반갑다, 밉다, 그리고 미안하다가 그래.

"2018.02.20"


1. 나는 하진이가 참 반갑다. 바쁜 일로 늦게 퇴근해서 잠들어 있는 하진이를 봐도, 하루 중에 제일 많이 하는 잠자는 일조차 아직 미숙한 하진이가 꽁꽁 싸매여져 나비잠을 자고 있는 것도, 잠들기 전 막 먹은 분유가 덜 소화가 돼 답답해 용을 쓰는 것도.


트림을 더 시켜야겠다는 핑계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얼른 하진이를 안아 든다. 안자마자 금세 트림을 하며 속이 조금 편해졌는지 내 어깨에 볼을 기대어 다시 잠이 든 아가를 토닥이며 혹시나 깰까봐 속으로만 이름을 불러본다. 하루 종일 그리워했던 이름.


그제야 온종일 하진이와 씨름하느라 녹초가 된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하진이의 하루는 어땠는지, 내 아내의 하루는 어땠는지 듣는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다른 말은 없는지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생각나질 않는다. 그냥 한 번 꽉 안아주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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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오자마자 금방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든 아내를 보면 아내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하진이가 조금 밉다. 오늘도 하루 종일 용을 쓰고, 먹은 걸 다 게워내고, 잠도 얼마 자지 않고, 심지어는 누워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네가 엄마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기 때는 원래 그래'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남들이 나에게 수없이 해서 이미 알고 있다. 그래, 아기 때는 원래 그런건데 누굴 탓하겠어.


미운 마음보다는 사실 답답한 마음이겠지. 죄 없는 하진이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밉다. 늘 그렇듯 하진이에게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칭얼대는 것 같아도 배가 아팠다거나, 잠을 짧게 자면서 잠투정을 하는 것 같은데 실은 소화가 잘 안돼 깊게 못 잤다거나. 아이의 모든 증상은 부모의 미숙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칭얼대는 하진이를 다시 안아 들고 소화를 시켜준 뒤 눕히니 금방 또 잠이 든다.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누워 잤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깊이 나비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과 얄미운 마음 뒤로 남는 감정은 미안함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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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이 뽀짝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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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안하다, 미안해. 여전히 하진이가 울면 이유를 모르는 것이 미안하다. 잘 안지 못해 여전히 하진이를 내  품에 콱콱 눌러 붙여 놓고도 네가 불편해하는 이유를 몰라서, 네게 편한 자세를 몰라서 미안해.


내가 바빴던 지난 며칠 새, 하진이는 처음으로 외출도 했다. 물론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병원을 간 것이었지만 조리원 퇴소 날을 제외하면 정식 외출은 처음이었다. 울지도 않고 주사도 척척 맞고 그랬다는데 그날 밤에도 칭찬 한 마디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복잡한 마음에 가만히 내려다보니 하진이는 전보다 또 많이 큰 것 같았다.


하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면서도 조금만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깰 것처럼 몸부림을 치면 어느새 당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불러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도 아이의 '낑' 소리 한 번에 벌떡 몸을 일으키는 아내를 보며 그동안 느꼈던 사랑과 존중과는 또 다른, 존경을 느낀다.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하진이와 아내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바닥으로 내려와 이불을 깔고 누웠다. 오늘 아내가 보내준 아이의 수유 패턴, 수면 교육, 신생아 발달 일지 등을 읽어보니 무엇하나 알고 있는 내용이 없었다. 나름 공부한다고 했던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처음 수업을 듣는 학생 같은 눈빛으로 취침 전 공부를 시작했다. 좀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아내처럼 더 능숙하게 하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미안함이 쌓여 후회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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