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담 Feb 12. 2019

엄마! 파란색은 남자색이야, 여자색이야?


1. 2월 11일 월요일,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하기 전날 밤, 유독 하진이가 짜증을 부렸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팍, 쓰고 짜증을 내는데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늘 그렇듯 아빠는 헛다리를 짚기 시작한다.


"어.. 옷이 좀 불편한 것 같은데? 따가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양말을 벗겨볼까? 더워하는 것 같은데?"


내 호들갑을 못 본 척하며 하진이를 달래던 아내도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내 - "도대체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건데에..."


아내는 하진이를 붙잡고 애원하듯 물었다. 대답할 리 없는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계속 신경질 가득한 소리를 냈다. 모유수유를 한 지 얼마 안 됐기에 모유는 나올 리 없었고, 양이 부족해서 저러는 거라면 분유라도 좀 타서 먹여볼까..라는 생각으로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 하진이가 먹을 분유를 준비했다.


적당히 식혀 하진이 입에 물리고 5분이나 지났을까. 빡! 하는 소리와 함께 하진이는 큰일(!)을 보고 있다고 알렸다. 각목 부러지는 듯한 소리는 하진이 뱃속의 가스가 방출되는 소리였고, 하진이는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아파서 그렇게 칭얼댔던 것이었다. 계속해서 힘을 주는 하진이의 배를 만져주며 우리는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배가 아팠구나..."


.

.

편하게 잘 수는 없니...?

.

.


2.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천사 같은 얼굴로 퇴근한 고모를 반긴 하진이때문에 나와 아내는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우리 이쁜 하진이가 짜증냈을리가 없다'는 동생과 투닥거리다 잠을 청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연휴와는 다르게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 하진이의 '등 센서'는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었고, 아내는 하진이를 품에 안고 앉은 채로 잠을 청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한 뒤, 하진이를 혹여나 놓칠세라 꼭 안고 졸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게 집을 나왔다. 출근해서 업무를 보며 카톡으로 하진이와 아내의 사진을, 소식을 받아 보는 것은 퍽 낯설었다.


오전 근무시간이 지나가고 점심시간, 직원들과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엄마와 다섯 살가량 되었을까 싶은 아들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야무지게 밥을 먹으면서 엄마와 곧잘 대화를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 하진이는 언제 커서 앉아서 밥 먹고, 얘기하고 그럴까..."


푸념 섞인 내 혼잣말에 직원들이 웃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됐는데 벌써 많은 걸 바란다며 타박을 듣고 있는데 그 너머로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아이 - "엄마, 근데 흰색은 남자색이야?"


엄마 - "아니. 남자도 여자도 다 할 수 있지!"


저 나이가 되면 이제 남자, 여자를 구분하고 '남자만의', '여자만의' 것을 따지기 시작한다. 나도 어렸을 때 분홍색 옷을 입고 유치원을 갔다가 여자 옷을 입었다며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야 성에 대한 차별이나 구분을 없애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고, 이름을 지을 때도 남자답고 여자다운 이름보다는 중성적으로 예쁜 이름을 짓곤 하지만 그땐 그랬지. 요즘 애들도 저런 생각을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듣고 있는데, 아이가 질문을 이어갔다.


아이 -"엄마, 그러면 파란색은 남자색이야?"


시작됐군. 아이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고 한 번 '왜요'를 시작하게 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질문의 늪에 빠지게 된다. 저 아이는 오늘 '색과 성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모양이다. 저 엄마는 아이에 궁금증에 어떻게 대처할까. 귀찮은 듯 넘기기? 대충 맞다고 해주기? 하지만 들려온 아이 엄마의 대답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의 것이었다.


엄마 - "우리 ㅇㅇ는 초록색 좋아하지? 그럼 ㅇㅇ이 색은 초록색인 거야.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 있는 거지 남자색, 여자색이 따로 있는 건 아니야.


엄마는 하늘색을 좋아하는데, 그럼 하늘색은 누구색이지?"


.

.

우리 아이는 무슨 색을 좋아할까.

.

.


3.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큰 고민 없이 대답했다.


아이 - "응! 엄마 색깔."


엄마 - "맞아. 엄마는 하늘색을 좋아해.


앞으로 우리 ㅇㅇ이가 하늘색을 보면 엄마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 대단하다.


뜻밖의 장소에서 육아 고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이가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어떤 대답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하진이 옷을 사면서, 역류 방지 쿠션을 사면서, 입고 깔고 덮을 무수한 유아 용품들을 사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남자아이인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하진이에게 남자아이에게 맞는 것들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하진이가 자라면 난 하진이에게 준 것처럼 요구하겠지, 남자아이에게 맞는 것들을. 공을 차고, 씩씩하고, 울면 안 되는.


'최악이다...'


나 자신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진이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 도담이라고 불리던 때 아내와 아이의 진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억지로 시키지 말자,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해주자, 편견 없이 자라 많은 사랑을 받고 그만큼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자.


편견은 나에게 있었고 오늘 순대국밥집의 그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계속 모르고 살 뻔했다.


하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게 하려면 엄마 아빠가 더 많은 대화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 하다.

하진이가 남자색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색 옷을 고를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육아! 잘하는 엄마와 자라는 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