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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도 하고 싶은 숙독가의 욕심 : 도서 구독 시작하기

숙독과 다독 병행하기

책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정말 너무 천천히 읽는다. 아니, 읽는 속도가 느리기 보다는 얼른 읽고 지나가려는데 어느 한 문장, 어느 한 단락에 '붙잡힐 때'가 있다. 여기 한번 걸리면 생각의 연쇄가 일어나고 완독은 또 한 걸음 멀어진다. 하지만 '완독' 자체를 목표로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손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하드 트레이닝' 같은 느낌이었다랄까, 그만큼 얻는 것도 더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인지 '완독을 전제한 다독'은 나에게 숨막히는 제안이었다. '1년에 100권 읽기'같은 책 제목을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오랜 시간 나의 관심과 동떨어진 부류의 책들이었다. 그런 제목의 책을 볼 때마다 속으로 '다독? 아니야, 한 권 진득이, 제대로 읽는게 성장에 더 이득이라고!'라는 편향된 사고방식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꽤 오래동안 '숙독가'였다. (속독가 아니고 '숙'독가! 다독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해본 단어인데 있을까 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진짜 있다. 두번째 의미. (1) 글을 익숙하게 잘 읽음. (2)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음. By 네이버 사전.)


숙독에 기우는 경향이 왜 생겼고 유지가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잘 걸러서 흡수하고 싶다'는 동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의 주장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 머리 속에 집어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책 내용에 따라 그렇게 파헤쳐봐야할 '주장'이 아니라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는 '팩트' 위주인 것도 있어 항상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아래로 깊이 파내려가는’ 작업에서 얻는 쾌감같은 것이 있어서 ‘숙독할만한 책들’만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해력이 느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


하지만 최근 브런치에서 글을 좀 더 본격적으로 쓰게 되면서 다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시는데 그에 걸맞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위해서는 다독이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이다. 내가 쓰는 글은 문학은 아니지만 문학적 글들의 뛰어난 표현력을 배우고 싶어서 고전 소설도 가끔식 읽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감탄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나서 내 문장을 보면 너무 못나 보인다랄까. 그만써야 하나란 생각을 하다가 순간 내 글이 문학이 아님에 안도하며 겨우 다시 글을 쓰게 된다. 좋은 자극이긴 하지만 확실히 너무 강렬한 자극이긴 하다. 어쨌든 어떻게 이렇게 탁월하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걸까 유추해보면, 역시 답은 다독이다. 좋은 표현이 담긴 글들을 많이 읽는 것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어느 정도'란 사고의 틀에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된 점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어렸을 적엔, 모호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했을 땐 사고방식이 이랬다 : '그래서 둘 중 뭐가 맞다는거야? 둘 중 하나만 답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더 해질 수록 '둘 다야. 아니, 그것말고 다른 답도 더 있어.'라는 식의 사고방식도 힘을 얻었다. 좋게 말하면 모호함에 대한 수용범위도 넓어져 사고방식이 좀 더 유연해졌다. 안좋게 말하면 타협적이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주제랑 연관 지으면 '숙독 아니면 다독 또는 그 반대'가 아니라 '숙독이랑 다독이랑 같이'란 의미다.


간단히 말해 나는 여전히 숙독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다독을 선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도서 구독 서비스'이다. 숙독가 였던 나에게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서비스였다. 구독 서비스는 많이 읽을 수록 이득인 서비스이기 때문에 한 권을 사서 오랜기간 즙이 다 빠질 때까지 짜먹던(?) 습관을 가진 나에게는 별로였다. 하지만 다독에 마음이 가고 나니 이것보다 좋은 서비스가 어딧나 싶고 왜 여태 안썼지 싶은거다.


하지만 역시 습관은 깨기 힘들다. 최근에 한권 완독했지만 2주가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이번책은 숙독과 다독 사이 정도의 속도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었다. 현재 브런치에서 메인 테마로 밀고 있는 '역사와 일기'에 관련된 책이었으니까. 다독 대상을 한번 찾아나서야 겠다 싶다. 여전히 숙독의 대상들만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 같다.


다 읽었는데 왜 99%지...?! 색인까지 다 읽어야 하나...


확실히 구독서비스는 다독에 최적화되어 있다. 정말 다독에는 최고다. 그래서인지 숙독가로서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구독 서비스는 숙독을 장려하지는 못하겠다 싶어서 이다. 구독 생태계는 새로운 컨텐츠와 다양한 컨텐츠 개발에 가속도를 붙인다. 실제로 구독 할 서점 몇군데 찾아보니 몇만권씩 책을 보유했는지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다. 나도 좀 더 책이 많은 곳을 선택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한권 계속 붙들고 있는 고객은 '손해보는 바보'가 된다. 똑같은 돈 내고 한달에 30권 읽는 사람이랑 1권 읽은 사람이 가지는 내적 만족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거다.


뭐 물론 구독하면서 한 두권은 숙독하면서 또 다양한 책을 다독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구독을 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구독이 멈추면 내가 숙독하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없다. 그 서비스에 내가 묶이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구독으로 다독하며 숙독할 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진득이 오래 갈 책은 따로 종이책을 구입한다. 본인이 쓰는 뷔페전략과 비슷하다. 일단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소량만 다 담아와서 제일 맛난 것 몇개를 선정하는 것이다. 다음에 돌 때는 베스트 3만 많이 담아온다. 실제로 어떤 구독 서비스는 2개월 마다 한번 씩 내가 원하는 종이책 한권을 보내주는 곳도 있었다. (요금제 가격이 좀 더 올라가긴 하지만.)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엔 메모를 많이 남기기 때문에 다독 하면서도 좋은 문장과 코멘트들은 따로 노트앱에다가 기록해놓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했다. 구독에 완벽하게 메이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러면 또 시간이 걸리니까 나는 속독-다독가는 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더 다독가스러운 면을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서 구독 서비스의 순기능이다. 다독하도록 밀어준다. 여기서 좀 더 가면 이제 영업글이 될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


아무튼 ‘숙독가의 다독가 도전’ 같은 부담스러운 다짐은 못하겠고, ‘다독가 한 스푼 뿌리기’정도는 해보고 싶다.  구독 요금제 본전이라도 뽑아야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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