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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일기의 미래

제가 이 글을 쓰던 2023년 상반기는 인공지능 챗봇으로 시끌벅적합니다. 인공지능에 대체될 직업 목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시점입니다. 한 때는 대체되지 않을 직업으로 꼽히던 작가나 화가 같은 예술계 직업도 이제는 안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 사용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똑똑한 데다가 글도 아주 이해하기 쉽게 잘 쓰더라고요. 자존감에 '쩌적'하고 균열이 생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인간은 이제 쓸모가 없어지나 보다'란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에 틀린 말을 아주 당당하고 세련되게 하는 '환각' 작용 등 인공지능의 한계점에 대해 알고 나서야 '휴! 아직은 아니네'하며 안도했습니다. 시간문제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일기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다 보니 자연스레 인공지능과 일기를 함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를 '인간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일상적인 사회를 상상해 봤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일기는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까요?


뇌근육 피트니스 센터의 시대

인간지능을 멀찍이 초월한 인공지능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면 저는 '뇌근육 피트니스 센터'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돌이켜보면 운전에 익숙해졌을 때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도 자꾸 운전해서 가려하게 되는데, 덕분에 뱃살이 한층 늘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기계의 힘이 제공하는 편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죠. 


우리는 이미 기계의 힘이 신체근육의 힘을 아득히 초월한 사회를 꽤 오래 살아왔습니다. 신체근육을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든 사회를 살아왔습니다. 그러자 피트니스 센터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신체활동이 줄고 자극적인 먹거리가 풍성한 시대를 살다 보니 이제는 돈을 내고 체계적으로 신체활동을 하도록 돕는 서비스가 생긴 것입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 즉, 뇌근육을 대체해 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신체근육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으로 뇌근육을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생기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뇌건강, 뇌근육 피트니스 센터'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뇌근육의 퇴화

인공지능의 편의에 기대어 뇌근육을 점점 덜 사용하게 되면 어떤 뇌건강 문제가 생길까에 대해 인공지능 챗봇에게 물어봤습니다. 신체활동을 덜하게 되면 체중이 증가하게 되고 그러면 비만 등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것처럼 뇌근육도 덜 사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궁금했습니다. 


나 : 뇌를 잘 사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뇌근육 퇴보가 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구글의 인공지능 챗봇 '바드' Bard (23년 5월) : 뇌근육 퇴보가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력, 문제해결능력, 창의력, 판단력, 자존감 저하입니다. 


편리한 이동수단이 개발될수록 점점 걷기 귀찮아지는 것처럼, 편리한 인공지능이 개발될수록 점점 생각하기 귀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이 듭니다. 물론 동시에 기술발달로 인해 신체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각종 러닝머신 등의 기계도 발달했지만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또한 약화된 인간지능을 회복시켜 주는 뇌건강 피트니스 프로그램 또는 기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다. 


아바타 인생

하지만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우리 일상의 판단과 선택, 문제해결을 다 떠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삶'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의 '아바타'가 될 순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뛰어난 비서이자 협력자로서 조언을 구하거나 정보를 수집시킬 수는 있습니다. 제가 방금 위에서 '뇌근육의 퇴보가 불러올 수 있는 결과들'을 인공지능 챗봇에게 물어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를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로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맡겨야 할 때도 있겠습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차를 운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뒤이어 가야 할 곳이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날라야 할 때는 차를 사용해야 하듯 말입니다. 


책임이란 중량

삶의 선택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는 것은 책임을 나눠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어깨 위의 책임이 가벼워져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뇌근육에게는 중량이 높은 운동을 할 기회가 점점 없어진다는 단점도 있는 것입니다. 책임의 무게가 곧 중량이니까요. 막중한 책임이란 중량이야말로 뇌근육의 한계를 끌어냅니다. 제가 지금 응모전에 이 책을 내보겠다는 책임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저의 뇌근육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글을 쓰고 있듯이 말입니다. 


인공지능과의 공존

인간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의 시대를 상상해 보는 일은 이렇게 설렘과 우려의 양가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일입니다. 사실 이 상상마저도 인공지능이 점점 더 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동시에 인공지능을 장악하는 집단이 횡포를 부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인공지능을 악용하는 개인들은 어떤 피해를 낳을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결국은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기계의 시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계의 힘과 신체근육의 힘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왔듯이 인류는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격통의 재배치 작업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기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인간지능을 아득히 초월한 인공지능은 철학, 공학, 수학, 의학, 법학, 역사 등 다양한 영역의 학문에서 극도로 탁월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이해능력이 탁월하더라도 결코 획득하지 못하는 지식 또는 정보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사생활 정보입니다. 일기에 주로 기록되는 내용들입니다.


사생활 보호와 인공지능

지식검색 시대인 지금도 사생활 침해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입니다. 거대 글로벌 스마트폰 기업들이 기기성능향상만큼이나 신경 쓰는 영역이 바로 사생활 보호영역입니다. 해킹으로 보안체계를 뚫고 스마트폰 속의 내 개인정보들이 강탈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평판에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즉, 미래의 인공지능들도 개인의 허락 없이는 일기와 같은 사생활 정보에 결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만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훨씬 더 일기를 잘 쓰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인공지능에게 일기 쓰기를 맡기는 미래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애플이 발표한 '비전프로'란 고글 형태의 기기를 보니 그런 날이 멀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 달린 온갖 카메라 센서들과 생성형 인공지능이 결합되면 상대방의 표정, 말 그리고 행동을 관찰하고 의도를 해석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24시간 편하게 쓰고 다닐 수 있는 안경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일기 대필 정도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스마트 안경과 인공지능에게 일기를 맡겼을 때의 위험은 해킹의 피해가 불어난다는 점입니다. 철저한 보안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생활의 구석구석을 파악당하게 됩니다. 항상 쓰고 다니는 CCTV 데이터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극단적인 예로 스토커가 해킹기술을 손에 넣는다면 피해가 얼마나 클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독재적 인물이 국가의 수장이 되어 이런 기술을 악용하다면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모든 사람을 감시관찰하는 '빅 브라더'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
1984


신뢰할 수 있는 기록, 일기

진정성의 측면에서도 일기는 상당히 특별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지금도 이야기를 정말 잘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실화'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진짜인지를 그 내용만으로는 판별할 수 없는 시대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누군가 가짜뉴스,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는 경우가 있지만 미래의 인공지능의 실력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인공지능 캐릭터들의 마을’이란 주제의 실험을 구글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각 인공지능들에게 카페주인, 상점직원 등의 역할을 맡겼는데 이 가상의 마을에서 자기 일을 하며 서로 대화도 하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가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하루에 대해 일기를 쓰라고 하면 충분히 잘 쓸 것 같아 보입니다.

인공지능 캐릭터들끼리 인간흉내를 내며 대화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출처 : https://rikiphukon.medium.com/stanford-smallville-is-offic

이런 세상에서 일기는 실화임을 가장 신뢰하면 읽을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입니다. 저자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틀림없는 실화임을 확신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나의 일기에 기록된 모든 정보가 정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일 수 있고 잘못 보고 들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게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일기에 기록했는데 그 이야기가 거짓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의도적인 거짓이 포함되지 않은 기록'으로서 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써야 의미 있는 일기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기억력이라는 뇌의 근육을 써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떠올려보며 추가적인 해석을 해보는 뇌활동도 할 것이며 내가 경험한 사건을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것도 뇌근육을 쓰는 일입니다.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건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뇌근육 중량운동쯤 될 것입니다. 만약 뇌건강 피트니스 센터 같은 것이 생긴다면, 거기 트레이너가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운동기구 중 하나가 일기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일기마저도 인공지능이 더 잘한다며 맡겨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회비를 내고 피트니스 센터에 가놓고서는, 힘들다며 중량운동을 로봇에게 대신시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실소가 터지는 걸 참기 힘들 겁니다. '유튜브 각'이 나오는 장면일지도요. 운동은 직접해야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일기를 활용한 뇌근육 운동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일기 넘겨주기

하지만 기록이 완료된 일기라면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저는 개인의 허락 없이는 인공지능이 우리 사생활, 일기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허락해 주면 그 누구보다도 우리 일기를 더 잘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일기가 수천 쪽이든 수만 쪽이든 말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에게 일기대필을 시키는 일과는 다릅니다. 일기대필은 인공지능이 직접 우리 삶의 원본을 모두 관찰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해킹발생 시 그 피해가 큽니다. 하지만 기록이 완료된 일기를 넘길 때는 얼마든지 편집을 더 할 수 있기 때문에 원본 전체가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도 해킹을 당하면 심각한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원본에 대한 통제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드러나는 피해는 막을 수 있습니다. 


자기 이해의 도구

제 나이의 또래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혈액형 소개가 꽤 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MBTI입니다. 4개의 알파벳만 말해주면 서로가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자기 이해와 사람이해에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점과 부작용도 있습니다. 유형에 따른 편견과 신입견의 문제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16가지 유형으로 수많은 사람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MBTI 전문가들도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해 주는 다채로운 개인역사를 한 두 가지 유형에 맞춰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표현인데, 개인의 역사는 유형에 다 담길 수 없습니다.

김재형
(주)한국 MBTI 연구소 연구부장
*출처 : 유튜브 [우리가 인터넷에서 했던 MBTI는 진짜 MBTI가 아니다... 그럼 진짜는 뭘까]


개인의 역사를 담는 일기는 이런 면에서 우리 정체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기를 인공지능은 탁월하게 요약 및 분석할 수 있습니다. 몇 천 쪽이든 순식간에 말입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심리성격이론뿐만 아니라 철학 등 다양한 연관 학문들을 모두 뛰어난 수준으로 습득하고 있을 테니 다각도에서 일기의 내용을 분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일기를 정교한 자기 이해의 도구로 만들어주는 것이죠. 


자서전 안내자 역할 맡기기 

또 다른 적극적인 인공지능 활용방법으로는 인공지능에게 자서전 안내자 역할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편집한 일기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다음 자서전처럼 나의 일대기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훗날 제가 떠나고 없는 미래에 저의 자녀와 손주에게 저의 일기를 학습한 인공지능 챗봇을 남기는 것이죠. '아버지(또는 할아버지)에 대해 알려줘', '나는 지금 이런 고민이 있는데 아버지(또는 할아버지)도 이런 고민했을 때가 있었어?'라는 식으로 챗봇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또는 할아버지)가 나에 대해 기록해 놓은 일기 전부를 요약해서 알려줘' 등도 가능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해 낸 질문은 이 정도이지만 미래 인공지능들은 더 유용한 질문들도 생각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질문도 가능합니다'라며 제안 질문들도 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사진, 영상, 그림까지 창작한다고 하니, 영상이나 그림형태로 일기 속 이야기들을 들려달라는 식의 요청도 가능해지겠죠. 


인공지능 ME

이 아이디어를 조금 더 발전시키면 일기로 '인공지능 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캐릭터닷에이아이 Character.ai라는 사이트는 역사적 인물이나 소설, 영화 속의 인물들을 인공지능으로 구현해서 채팅할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오랜 기간 축적해 놓은 일기라면 더 정교하게 저를 모방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저를 대하듯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래기술이라면 채팅뿐만 아니라 생전 촬영해 둔 영상 자료를 종합해서 육성 대화, 홀로그램 대화까지도 가능하겠지요. 물론 죽은 가족과 다시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일인지는 학계의 연구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작업은 보안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나의 과거까지 아는 '인공지능 ME'가 해킹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넘기는 일기는 꼭 편집이 필요하겠습니다. 애초에 내가 죽을 때 함께 태워버리고 싶은 내용들은 따로 '소각 일기'를 쓰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은 뒤 가족에게만 소유권을 줄 것'이란 조항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전에 해킹당하면 인터넷상에서 도플갱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이외에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아도 로컬로 작동 가능할 것, 유무선 연결 시 해킹위협에 자체적인 대비가 될 것 등 기타 세세한 조건들도 더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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