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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무시당할 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일기를 쓴다고 하면 대부분 반응이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정확히 어떤 점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는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꽤 성실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습니다. 플래너 또는 다이어리가 아니라 따로 '일기 쓴다'는 성인을 만나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아서인지 순간 '꽤 신기한데?' 하는 표정을 읽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기분 좋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냐, 일기 쓰게'란 비아냥부터 '그거 혹시 데스노트 아니냐'는 장난스럽지만 은근히 뼈가 있는 듯한 반응을 목격할 때도 있습니다.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몰래 쓸 것이 그렇게 많은가. 겉과 속이 많이 달라서 그런가?'는 식의 비난도 왠지 상상이 됩니다. 


초등학생들이나 쓰는 거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 일기를 숙제로 썼던 기억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있을 것 같습니다. 일기를 좋아하는 어른으로서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좋아서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까지도 일기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초등학교에서 끝나버리는 걸까요.


그러다 보니 일기는 '초등학생의 숙제'로 인식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초등학교 때 배우는 국어, 수학, 영어는 대학, 대학원까지도 배우고 이후에는 수학 선생님이나 영어 교수님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학과 영어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거 초등학생들이나 배우는 거 아니냐?'라는 어이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 또는 영어 아니냐는 말은 몰라도 말입니다. 


일기에도 수준 차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와 현재 40대가 되어 쓴 일기장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명작가들 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일기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기의 진면목은 되려 초등학교 이후 생각과 감정, 행동이 복잡하고 섬세해지는 사춘기, 그리고 자기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는 성인기로 갈수록 더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암산 가능한 산수는 기록이 필요 없지만 복잡한 수학은 풀이과정의 기록이 필요하듯 말입니다. 되려 초등학교 이후로 더 강조되면 좋을법한 것이 일기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기가 '초급 글쓰기 훈련'의 일환으로 소개되는 것도 반갑습니다. 그렇게라도 일기 습관을 들이면 또 다른 일기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일기의 용도가 거기까지로 한정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쪼잔한 데스노트(살생부) 아니에요?

예능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가수가 본인은 지인과 함께 했던 술자리를 기록한다고 이야기하니 옆자리 지인이 이렇게 말하십니다. '조금 무섭습니다! 잘못한 것 하나하나 다 적어놨다가 나중에 혹시 다투게 되면 다 꺼내시는 거 아닌가요?' 소위 말하는 ‘데스노트’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농담이겠습니다만 그 가수분께서는 '식사자리 했던 날짜와 간단한 대화 내용 등 좋았던 것들만 적어둡니다' 라며 웃으며 넘어가십니다. 


'살생부'라고 바꿔 말해보면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물론 진짜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분노일기, 짜증일기'정도 되겠습니다. 사실 살다 보면 직장, 학교 등 어느 집단에 소속되든 나와 상성이 잘 맞지 않는 사람 한 두 명 정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속 터지는 일도 생깁니다. '천적'같은 그 사람들과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항상 할 말이 많죠.


일기를 살생부로 사용하느냐 마느냐는 일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입니다. 흔한 비유인 '누구 손에 들려있는 칼이냐'의 문제입니다. 일급 요리사의 손에서 칼은 일류음식을 만들어내지만 일급 범죄자의 손에서는 끔찍한 손상을 끼치는 것입니다. 기록은 마치 그런 칼과 같습니다. 그러니 일기는 사용의도에 따라 살생부가 아니라 상생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도움 받았던 일들을 기록하면 그것이 상생부 아닐까요. 


일기 아니면 어디에

그런데 천적과의 속 터지는 일들을 일기에 안 쓰면 어디에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가슴에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답답하고요.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은데 그러고 싶어도 안 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일기에 쓰기 딱 좋습니다. 특히 직장에서 겪은 속 터지는 일은 아무리 친한 직장동료라 해도 ‘너만 알아야 돼’하고 말했다간 자칫 말이 새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은 여러 입을 타고 돌다가 전혀 다른 말이 되어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러면 전쟁이 납니다. 직장 밖의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만, 정확한 직장상황을 모르는지라 공감해 주는데 한계가 있기도 합니다. 


있어선 안될 일이지만, 만약 갈등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 수준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일기 쓰기는 더욱 유용합니다. 일기가 유효한 증거물로 법정에서 항상 채택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준비는 시켜주니까요. 법적 한계를 명확히 검토한 뒤 녹취나 CCTV 기록을 함께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공평한 기록자가 되도록

천적은 악당으로 만들고 싶기 마련입니다. 내 일기에서라도 그리 쓰면 마음이 편합니다. 하지만 '민낯으로 쉬다'에서도 살펴보았듯, 그렇게 화를 다 토하고 나면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상대방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해 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직장에서 일이 익숙해질 때쯤 느낀 것입니다. 상담실 안에서 제가 관찰자로만 있으면 저 자신의 행동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로 제가 불친절했기 때문에 상대방도 불친절한 반응을 한 것인데 '예의가 없음'이라고 상대방에 대한 기록만 남기면 어떨까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관찰하는 자기 관찰자로서도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1인칭 시점으로 살아가는 이상 완벽한 자기 관찰은 불가능하더라도 말입니다. 


자학 아닌가요?

어떤 유튜버가 과거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심리상담에서 직면하는 것을 '자학'이라고 말하는 걸 영상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일기를 쓰며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또한 비슷한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와 고통의 역사성찰

하지만 인류의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책은 고통의 역사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기록의 축적 위에 문명인류는 성장해 왔습니다. 국가들은 역사책을 객관적이고 진실되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역사왜곡'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불의를 못 견뎌 광장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으로 소중하게 보관하며 그것들을 토대로 연구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에는 오직 성공과 기쁨만 있지는 않습니다. 실패와 고통의 역사도 있습니다. 


(왼쪽)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의 전몰장병 추모명비 *출처 : 위키피디아 (오른쪽) 근처 평화공원에서 만난 파병국 비석

특히 전쟁의 기록은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국가라는 거인의 트라우마적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요한 국가기념일 중 하나가 바로 *6.25 전쟁일입니다. 끔찍한 과거이지만 이를 직면함으로써 전쟁의 끔찍함을 기억하고 이를 예방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부산에는 재한유엔기념공원 이란 곳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10분 거리 인 데다 바로 옆에 평화공원도 있어 때때로 방문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면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수많은 참전국들과 그 나라의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6.25 전쟁일 : 전쟁의 참혹함과 그 희생자들을 기리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념일입니다. 주관 부처는 국가보훈처로, 6.25 한국전쟁을 상기하며 국민의 안보의식을 북돋우는 행사 등도 주최한다고 합니다. 1973년 [6.25 사변일]로 지정되었고 2013년 [6.25 전쟁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옆동네의 부산민주공원에 가면 충혼탑이라는 거대한 탑이 있는데 그 아래에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순직한 부산출신의 국군과 경찰관 등의 이름이 새겨진 공간이 있습니다. 그저 '전쟁 사망자 몇 명'이란 숫자 덩어리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나의 가족들처럼 모두 이름을 가진 한 명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예전과는 새삼 다르게 다가와 이름 비석 앞에서 가족 몰래 속이 먹먹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탑 중앙 아래 돔형태의 방에서 그 이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곧바로 전쟁의 기억을 직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종전 후 20년 정도 지난 뒤에야 기념일을 지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와중에도 누군가는 그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국내외의 여러 기자들은 세상에 전쟁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무릅쓰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당사자들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 알리기 위해 기자처럼 기록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들은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생생하게 남김으로써 자신과 후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런 일은 다시는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참극을 알리고 그것이 멈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역사책은 그렇게 쌓여가고 있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과거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은 즐거운 일이지만 실패와 고통의 과거를 남기는 일은 쉽지 않으며 때로 그것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자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되려 과거에 붙들린 상태에서 해방되려는 노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과거를 샅샅이 헤아려보는 작업은 충분히 어렵다. 내가 선생으로서, 편집자로서, 또한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랬듯이, 고통스러운 지난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적잖은 괴로움을 목격하게 된다. 종기를 째고 고름이 흘러내릴 때 악취를 견뎌야 한다. 내가 책에서 읽거나 옆에서 지켜본 결과, 지나간 삶을 꼼꼼히 되돌아본 사람들은 언제나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고 안도했다. 특히 지난 일에 사로잡혀 심히 괴로워하던 사람들은 오직 돌이켜봄으로써 마침내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메리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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