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na May 27. 2021

[여덟 권] 고전문학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권하는 책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핏츠제럴드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너머 광막하고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p.381


 전에 어떤 분께서 책 선물을 주신적이 있었습니다. 서점에 다녀온 길이라면서 여러 책을 모임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는데, 그중 "돈키호테"를 자신이 읽고 싶어 산 책이라면서 따로 챙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저 책을 안 읽으셨을 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젊을 때 읽었던 것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다르게 읽힌다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은 10년이 조금 지나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0년 전 제가 보았던 개츠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아야 하는데.. 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제가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고전문학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로 요약본으로 고전을 접해보기는 했지만 한 권을 붙잡고 다 읽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개츠비의 욕망을 중점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친구와 살짝 다퉜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문학 수업에서 이 책을 접한 친구는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태도를 두고 순수한 사랑으로 말했고, 저는 어떤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개츠비는 그런 속물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거 같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F.스콧피츠제럴드, 민음사, 2012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고 나니 갑자기 '돈키호테'를 다시 읽기로 했다는 그분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제가 어떻게 읽었던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이번엔 다르게 읽혔습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개츠비에 대한 가여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왜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개츠비를 다르게 보고 있는 걸까요? 아마.. 도 지나온 세월 때문이겠죠?


 사실 저는 아직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그 책과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앞 페이지에서 어떤 인상을 받기가 쉽진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읽다가 그 작품에 대한 친밀감이 생기고, 인물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재밌게 읽기 시작하거든요.

그 단계가 오기까지는 그냥 참고 무작정 읽습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초반인 13페이지를 인상 깊은 구절로 적을 수 있었던 건 제가 이미 읽은 책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줄거리를 아는 상태에서 대충 한번 봐온 기억으로 책에 대한 친밀함이 조금 생긴 상태로 읽다 보니,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이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때문에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자주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야 했다.
                                                                                                                                   p.13

제가 이 구절을 인상 깊은 구절로 옮겨 적은 이유는 이 부분이 화자가 '개츠비'란 인물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개츠비를 만나게 하기 전에 화자의 아버지의 말을 빌려서 주의사항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앞으로 비판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인물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인물을 두고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고 미리 일러줍니다.


이렇게 내가 관대한 것처럼 자랑했지만 나는 이런 관대함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란 단단한 바위 덩어리나 축축한 습지에 근거를 둘 수도 있지만, 나는 일정한 단계가 지난 뒤에는 그 행위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난해 나는 이 세계가 제복을 차려입고 있기를, 말하자면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기를 바랐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특권을 지닌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오만하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해 준 개츠비만이 내가 이러한 식으로 반응하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p.15

  이 부분까지 읽으면서 새삼 개츠비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자선적인 느낌의 소설이기 때문일까요?

 

"누군가가 그러는데요, 그 남자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대요." 우리는 모두 전율을 느꼈다. 세 명의 멈블 씨도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 사람이 전쟁 중에 독일 스파이였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루실이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세 남자 중 하나가 확인이라도 해 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독일에서 함께 자랐고 그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한테서 그 얘기를 들었지요." 그는 우리에게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전쟁 중에 미군에 소속되어 있었거든요." 첫 번째 여자가 말했다. 우리가 그 말을 믿는 듯하자 그녀는 부쩍 관심을 보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가 가끔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짓는 표정을 보세요. 살인을 한 사람이 틀림없어요."
                                                                                                                                p.99

 제목대로 이 책에선 정말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정작 개츠비가 빨리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설명을 듣고, 주위 사람들이 보는 그의 모습을 한번 더 듣고... 아마 이 부분에서 화자는 개츠비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상태였겠죠? 개츠비의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개츠비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확인하기도 전에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을 모으고 떠들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구절을 인상 깊은 구절로 소개한 이유는 마지막 부분에서 한번 더 그들의 행동을 묘사하여 그들의 말의 무게가 얼마큼 가벼운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미소였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보기 드문 미소 말이다. 한순간 외부 세계를 대면하고 있는 - 또는 대면하고 있는 듯한 - 미소였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당신에게 온 정신을 쏟겠다고 맹세하는 듯한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 믿는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최상의 호의적인 인상을 분명히 전달받았노라고 말해 주는 그런 미소였던 것이다.                                                                                                                                                                                                                   p.108

  이 미소가 영화 개츠비에서도 하이라이트였죠 ㅎㅎ 영화에서도 강렬한 이 장면을 원작에서도 얼마나 화려하게 설명했는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번 더 생각나게 하더라고요. 이 책에서 개츠비를 만나기까지는 참 오래 걸렸는데, 개츠비를 만나면서 개츠비의 목적과 개츠비와 데이지의 재회까지는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정말 공들여서 개츠비를 만나기까지 준비한 다음 막상 만나고 보니 훅 지나가버린 듯해서 허무한 느낌마저 들게 만듭니다.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어떤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시 한낱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었다.                                                                                               p.199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이 부분이 굉장히 크게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서 돌아보면 저는 그때 이 부분을 보고 개츠비를 욕망을 위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데이지 조차도 진정한 사랑보다는 그가 가질 수 없는 대상이었기에 어떻게든 얻어내려고 했을 것이고, 어떤 결핍 동기가 그를 사로잡은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도 수단이 되어 의미가 변질되었기 때문에 막상 데이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에게 헛헛함이 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 구절에서 많이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도 저는 개츠비에 대한 데이지의 사랑을 의심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구절을 읽으면서 보니, 사랑을 목표로 그것에 매달려 달려온 그의 삶이 가엽게 느껴졌습니다. 이 구절이 역시나 인상 깊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추가로 보이더군요.


작별 인사를 하러 개츠비에게 갔을 때 그의 얼굴에는 다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의심이 생긴 듯한 표정이었다. 오 년에 가까운 세월! 심지어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가 품어 온 환상의 거대한 힘 때문에 말이다.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을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온갖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그 어떤 정열도, 그 어떤 순수함도 한 인간이 그의 유령 같은 가슴속에 품게 될 것에 도전할 수 없으리라.                                    p.205

 지금은 이 부분이 더 와닿았고, 뭔가 허망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은 개츠비가 느꼈을 쓸쓸함이 안타까웠습니다. 5년의 시간 동안 그가 다른 걸 추구했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요? 데이지에 대한 거대한 환상이 닿기만 하면 모든 걸 충족시켜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5년 만에 다다른 환상은 그에게 당황스러움만 심어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허망함을 느낀 개츠비란 인물이 처음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츠비는 여기서 우선 어떻게든 뭐든 예전의 것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합니다. 데이지만 얻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상황을 돌리기 위해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이 단순히 데이지만을 향해서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무리하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을 그에게 세상이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더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린 시절 그가 작성해놓은 계획표에서도 그가 자신의 생활을 규제하고 더 나은 생활을 꿈꾸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노력과 그의 바람이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더 많이 보였습니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너머 광막하고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p.381

 제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와 지금 다르게 보는 것이 아마, 예전엔 이 책의 이야기 위주로 글을 읽어나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이 이야기가 낯설었기 때문에 줄거리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지금은 줄거리 아는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줄거리보다는 개츠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나가서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이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10년 뒤에 다시 읽어보면 지금과 또 다른 마음으로 개츠비를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만난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면서도 쓸쓸한 개츠비였습니다.


 시대상을 잘 그려내고, 시간이 지나도 공감이 될 가치를 고민하고 표현해낸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고전의 조건인데요, '위대한 개츠비'는 기존에 다른 고전에 비하면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합니다.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당시 기존 귀족과 상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새로운 계층 간의 분위기를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 과도기적 시대상황이 왕과 귀족이 등장하고 폐쇄적인 신분제가 나오는 다른 고전에 비해서는 요즘 현실과 좀 더 가깝고 개츠비란 인물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요즘 사람들과도 거리감 없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도했던 여러 고전 중에 이 책이 가장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전의 시작을 '위대한 개츠비'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권]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