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베르데는 무너진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살릴 수 있을까
1.
메시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일 때, 바르셀로나 중앙 미드필더가 해야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메시가 비워둔 '측면공간을 커버하는 것'입니다. 이전엔 사비가, 최근엔 라키티치가 하고 있는 역할이죠.
수비 상황에서는 측면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공격 상황에서는 측면 공격숫자가 부족하지 않도록 측면으로 넓게 움직여야 합니다. 동시에 중원에서도 장악력을 잃지 않아야 하죠. 이렇게 중원과 측면을 오가는 움직임에는 당연히 수준 높은 활동량과 폭넓은 활동반경이 요구됩니다.
(라키티치의 히트맵. 라키티치는 측면을 커버하기 위해 폭넓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미드필더 한 명(라키티치)이 측면으로 움직이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점은 중원의 선수숫자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중원에 남아있는 나머지 미드필더(이니에스타, 부스케츠)의 수비범위는 조금씩 늘어나게 되죠. 결국 메시가 비워두는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3명의 미드필더가 조금씩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메시의 공격력을 활용하기 위해 부담하는 수비적인 리스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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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가 최전성기를 달릴 때는 이런 측면수비부담의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메시를 비롯한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팀 전체가 강력한 전진압박으로 상대팀을 쉴새없이 괴롭혔고, 상대가 측면 공간을 활용하기 전에 볼을 빼앗았죠. 사실 볼점유 자체가 워낙 완벽해서, 상대가 공격할 기회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경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팀 전체의 기동력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압박은 헐거워지고, 볼점유는 이전같지 않습니다.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공격기회가 늘어났고, 바르셀로나의 측면공간을 공략할 여유도 생기게 되었죠. 바르셀로나는 이제 수비 상황에서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라키티치가 최근 몇 시즌 동안 엔리케 감독체제에서 중용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측면공간의 약점을 커버해줄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라키티치는 중앙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측면 공간을 커버해줬고, 바르셀로나는 측면 공간의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수비 조직력의 균형을 잃지 않고 MSN이란 역대급 공격진의 공격력을 활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라키티치의 헌신적인 움직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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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라키티치의 폼이 조금씩 저하되면서 측면공간의 문제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라키티치가 중앙과 측면을 폭넓게 오가는 데 부담을 느끼면서, 미드필더에서 전과 같은 기동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이니에스타와 부스케츠의 기동력도 나날이 감소하면서, 바르셀로나 중원의 경쟁력은 처참하게 무너졌죠. 이니에스타 대체자의 영입 실패, 백업멤버 부재로 인한 라키티치와 부스케츠의 혹사 등 최근 몇 시즌 동안 미드필더 영입에 거듭 실패한 결과입니다.
최근 슈퍼컵 두 경기만 봐도 바르셀로나 중원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1차전을 보면, 레알 마드리드 중원의 기동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볼경합 상황에선 번번히 볼을 빼앗겼고, 미드필더 간격은 너무 넓어 상대 빌드업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메시가 없는 측면에 계속 공간이 발생하면서 중원이 흔들렸습니다. 라키티치가 측면을 커버하러 움직이면 중원엔 이니에스타와 부스케츠만 남게 되는데, 이 두 선수에게 더이상 높은 수준의 기동력이나 수비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헐거운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상대로 아주 편한 경기를 할 수 있었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상황. 바르셀로나의 우측면에 수비가 많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라키티치가 측면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움직이자, 중원이 헐거워지는 모습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측면으로 볼을 돌린 후 중앙으로 손쉽게 패스를 넣어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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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발베르데 감독은 이처럼 가뜩이나 기동력이 떨어진 중원에서, 라키티치가 측면으로 이동해 중원이 헐거워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슈퍼컵 2차전에서 변화를 줍니다. 아예 메시를 중앙공격수로 출전시키고, 3백을 사용했죠.
메시가 처음부터 중앙 공격수로 출전하고 측면 공간은 윙백이 담당하고 있으니, 라키티치가 측면으로 움직여 중원 밸런스가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진은 1차전과 달리 좀 더 공간을 좁히고 경기를 펼칠 수 있었죠.
(슈퍼컵 2차전의 포메이션. 더이상 라키티치가 측면을 커버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후방에서 볼을 전진시키는 바르셀로나의 플레이 특성상, 3백을 사용해 공격수가 줄고 수비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볼터치가 많아진다는 겁니다.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패스도 많아지고, 이들이 볼을 소유해야할 상황도 많아지죠.
(슈퍼컵 1차전의 패스맵)
(슈퍼컵 2차전의 패스맵)
(3백을 사용한 2차전에서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패스가 훨씬 많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볼소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바르셀로나는 좀처럼 볼을 전방으로 전진시키지 못했고, 결국 메시가 최후방까지 내려와 볼을 전개시켜야 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기본적인 볼전개조차 어려워했다는 점인데, 공격수부터 골키퍼까지 발 밑이 좋은 선수를 선호하는 바르셀로나라는 팀의 특성을 생각하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역량이 몇 년 전에 비해 굉장히 낮아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죠.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3백을 선택한 발베르데의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슈퍼컵 2차전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볼을 소유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들어난 경기였습니다. 오히려 1차전보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바르셀로나의 수비수와 미드필더는 볼소유에 서투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후방에서 볼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자, 메시(동그라미)가 내려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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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국 바르셀로나가 이번시즌 정말 큰 위기를 맞이했다고 판단되는 건, 최근 몇시즌 동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버텨줬던 중원이 더이상 일정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수준 높았던 바르셀로나 중원은 사라진지 오래고, 기동력마저 완전히 상실된 모습이죠.
미드필더의 기동력이 사라지니 메시나 수아레즈가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비공간을 커버하지도 못하고, 상대 압박을 피해 볼을 전방으로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수비적으로도 촘촘한 진영을 유지할 수 없죠. 그러나 이러한 중원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는 파울리뉴의 영입으로 미드필더 보강을 끝내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무너진 중원을 발베르데가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가 올시즌 바르셀로나의 꽤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