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토탈사커와 수비문제
1.
클롭의 리버풀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선수가 '함께 공격하고, 함께 수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구의 핵심은 선수 간격이 '좁다'는 것에 있죠.
리버풀은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아주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데요.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축구의 이점은 '주변에 같은 팀 선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동료 선수가 많다는 건 공수양면으로 커다란 강점이 됩니다. 볼을 가진 상황에서는 패스 선택지가 많아지고, 수비 상황에서는 보다 촘촘한 수비를 구축하거나 상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죠. 간격이 좁은 상태에서 공격이나 수비를 한다면 적어도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공간' 안에서는 상대팀보다 '선수숫자가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리버풀은 선수 간격을 좁게 만들어 선수들을 밀집시킵니다. 리버풀 경기를 보면 상대팀이 리버풀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볼을 빼앗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주변에 동료 선수가 많은 만큼 '함께 공격'하거나 '함께 수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공격수가 수비수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자연스레 수비에 참여하게 되고, 반대로 수비수는 공격수와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공격 상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죠.
마네와 살라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모레노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좁은 간격'은 모든 선수가 공격과 수비에 참여하는 '토탈사커'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공수간격이 좁은 리버풀은 살라, 마네를 비롯한 공격수들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합니다.)
(공수간격이 좁으면 수비의 공격가담 또한 수월해집니다. 예를 들어 측면 수비수 모레노는 최전방 공격수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공격상황에서 볼을 잡는 위치 자체가 아주 높습니다. 자연스레 공격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죠.)
2.
리버풀은 이처럼 모든 선수가 '함께' 플레이하는 축구가 가진 공격적인 장점을 잘 살리는 팀입니다. 기본적으로 공격상황에서 많은 선수들이 공격에 가담하게 되죠.
선수들이 촘촘하게 모여있다보니, 공격 상황에서 상대 페널티박스 주변에 많은 선수들이 배치됩니다. 리버풀은 살라, 마네, 피르미누로 이어지는 3명의 공격수와 쿠티뉴, 핸더슨, 바이날둠(엠레찬)으로 이어지는 3명의 미드필더, 그리고 좌우 윙백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선수들이 공격 상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죠. 아주 공격적인 형태입니다.
(리버풀은 공격상황에서 최전방 3톱, 3명의 중앙미드필더, 좌우 윙백까지.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상대방 지역으로 쇄도합니다.)
좁은 간격은 역습 상황에서도 위협적인 공격력을 보여주는데요. 역습 상황에서 리버풀 선수진은 모든 선수가 '함께'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비에 성공한 순간 모든 선수들이 전방으로 달려나가고, 역습의 공격 숫자가 많아지면 역습의 위력은 배가 됩니다. 전방으로 달려나가는 선수들의 기동력이 워낙 우수하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간격을 유지하며 '함께 공격하고 수비하는' 리버풀 축구의 정체성이 발휘되기 때문에 가능한 움직임입니다.
(리버풀은 역습 상황에서 모든 선수가 '함께' 올라갑니다. 역습의 위력은 배가 되죠.)
3.
이처럼 리버풀의 축구는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지만, 수비적인 단점 또한 명확합니다. 좁은 간격을 유지한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선수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있는 만큼 경기장에는 넓은 공간이 비어있게 된다는 뜻이죠.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팀의 피할 수 없는 리스크입니다.
즉 리버풀은 넓은 공간을 공략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대가 빠르게 경기장 반대편으로 방향 전환을 하거나 전방으로 볼을 길게 넘겨줬을 때 리버풀은 수적으로 급격히 불리해집니다. 선수들이 뭉쳐있는 지역 안에서는 수적으로 우위를 가질지 모르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겁니다.
리버풀의 실점 위기 상황 또한 대부분 볼이 넓은 공간으로 넘어왔을 때, 특히 공격상황에서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볼을 빼앗겼을 때 발생합니다. 볼이 리버풀 선수들이 적은 지역으로 전개되면, 리버풀은 적은 수비숫자로 상대 공격을 막아내야 하죠. 리버풀이 실점이 많은 건 수비수들의 수비력이 불안한 점도 있지만, 수비수에게 너무 많은 수비 부담이 돌아가는 리버풀의 전술도 실점에 한 몫 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들은 넓은 방향전환을 통해 볼을 전개합니다. 리버풀 선수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기 때문에, 경기장 반대편으로 볼을 전개하면 리버풀의 선수숫자는 급격하게 적어집니다.)
(번리와의 경기가 대표적인데요. 번리는 경기 내내 노골적으로 롱패스를 통한 공격전개에 힘을 쏟았고, 득점까지 기록합니다.)
(상대팀이 롱패스를 시도하고, 리버풀의 수비숫자는 부족한 모습. 리버풀의 실점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나옵니다.)
4.
따라서 리버풀이 실점 위기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대가 볼을 넓은 지역으로 전개시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서 볼을 빼앗아 와야 하고, 선수들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죠. 즉 상대가 볼을 전개할 여유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가 볼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볼을 빼앗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볼을 완벽하게 점유해 상대에게 볼소유권을 넘겨주지 않는 것입니다.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것의 장점이 수적 우위를 가지는 것이라면, 수적 우위를 가지는 지역에서 확실하게 볼에 대한 우위를 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시즌 리버풀의 축구는 상대의 볼전개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특히 공격작업을 하다가 볼을 빼앗겼을 때, 곧바로 압박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대가 리버풀 수비 뒷공간으로 여유롭게 패스를 보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격상황에서 볼점유가 서툴러 상대에게 공격권을 너무 많이 넘겨주는 것도 문제죠.
더군다나 경기장을 넓게 쓰는 방식의 경기운영이 리버풀을 공략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많은 팀들이 롱패스를 활용해 리버풀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축구를 하면서, 그에 따른 수비적 대비는 빈약한 모습입니다.
(번리 vs 리버풀 경기에서 번리의 패스맵. 번리의 공격전술자체가 크리스 우드를 향한 롱패스에 집중되어 있지만, 리버풀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 롱패스가 효과적이란 것을 보여줬죠.)
5.
그 결과 리버풀은 이번시즌 12경기 중 10경기에서 실점했고, 무려 20골을 먹혔습니다. 우승경쟁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기엔 너무 많은 실점이죠. 클롭은 부진한 성적에 대해 '득점이 부족하다'는 인터뷰를 하곤 하지만, 득점을 하고도 실점을 허용해 비기거나 지는 경기가 많은 것을 보면 '실점'은 분명히 리버풀의 저조한 성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리그 성적만 보더라도, 현재 리버풀은 리그에서 3번째로 실점이 많은 팀입니다)
물론 수비진의 역량이 부족한 부분도 사실이지만, 꾸준히 수비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보면 전술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리버풀은 현재 쉴 틈 없는 압박, 역동적인 공격을 보여주는 만큼 수비적인 리스크가 큰 스타일의 축구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A매치 기간 이후 다시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수비적인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내느냐가 리버풀의 올 시즌 초반 성적을 결정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