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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노미노 Oct 30. 2017

포체티노의 유연한 전술과 손흥민의 '장단점'

손흥민은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1.
포체티노는 최근 토트넘에서 굉장히 '유연한' 전술운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백과 4백을 혼용하며, 그 안에서도 투톱 혹은 원톱을 사용하는 등 매 경기 상대팀에 맞게 다른 전략을 세워오는 모습입니다. 놀라운 건 매 경기 다양한 전술이 운용되는데도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을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겁니다.


포체티노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인데요. 선수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고 이해시키면서, 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을 굉장히 넓혀 놓았습니다. 다이어가 미드필더와 수비를 오간다거나, 베르통헌이 윙백과 중앙 수비를 소화하고, 알리나 에릭센이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는 등 토트넘의 거의 모든 선수가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고, 부상 선수가 생겨도 문제없이 자리를 메울 수 있습니다. 수많은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는 건, 긴 시즌을 보내야 하는 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줍니다.




2.

포체티노는 올 시즌 토트넘에 3백을 완벽하게 안착시킨 모습입니다. 3백과 4백을 혼용했던 지난시즌과는 달리, 이번시즌은 3백의 활용빈도가 월등하게 높습니다. 포체티노의 이런 선택에는 손흥민을 제외하면 선수단에 측면 공격 자원이 부족한 반면, 중앙에서 뛸 수 있는 선수는 많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3백을 통해 윙포워드 자리를 없애고, 대신에 중원과 수비지역에 선수를 늘렸습니다. 알리나 에릭센, 무사 시소코 같이 중앙지향적인 선수들을 무리하게 측면에 기용하지 않고, 중원에서 뛸 수 있게 만들어 준 겁니다. 윙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측면 공격이 단조로울 수 있지만, 중원은 좀 더 단단해진 전형입니다.




(토트넘의 4백과 3백. 4백을 사용하면 윙포워드 자리에 에릭센을 세워야하는 반면에 3백에서는 에릭센이 중앙에서 편안하게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토트넘의 3백은 중앙 지향적인 선수들을 좀 더 활용한 결과입니다.)



기본적으로 3백을 사용하면서 포체티노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특징은 상대팀에 따라 공격조합을 다르게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와 볼을 소유하며 경기를 해야 할 때, 즉 지공상황이 많은 경기에서는 대체로 원톱과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배치시킵니다. 케인을 원톱에 세우고 에릭센알리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형태죠. 3명의 공격자원은 서로 빠르게 볼을 주고 받으며 단단한 상대 수비에 틈을 만듭니다. 기술적으로 수준 높은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창의적인 연계플레이를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보다 수비적인 경기운영이 필요한 상황, 역습으로 경기가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중앙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 중원의 안정감을 높이고 투톱을 기용합니다. 여기서 케인과 짝을 이루는 공격수는 대체로 손흥민입니다. 그리고 손흥민이 출전할 때는 보다 직선적인 공격이 이루어집니다. 볼을 소유하면서 공격찬스를 만들기 보다는,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손흥민과 케인이 뛰어들어가고 패스를 공간으로 넣어주는 형태죠. 에릭센이나 알리의 위치도 자연스레 내려갑니다.


(투톱과 원톱 전형의 차이. 에릭센과 알리의 위치는 보다 내려가고, 중원에는 선수가 더 많아집니다.)





3.

최근 연달아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맨유전은 이러한 포체티노의 전술적 유연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기들이었습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전. 두 경기의 선발 라인업과 선수비 후역습이란 전략은 거의 같았지만,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전혀 달랐죠.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전에서 토트넘은 3백을 바탕으로 양 측면 수비들이 깊숙하게 내려와 수비숫자를 늘렸고, 수비 앞 선에는 3명의 미드필더가 수비라인을 보호했습니다. 점유율에 신경쓰지 않고 수비적으로 내려앉아 역습을 노리는 경기운영이었습니다. 패스숫자 자체도 레알 마드리드전 337개, 리버풀전 377개로 보통 500~700개를 기록하는 이전 경기들과 차이가 있었죠.


그러나 모든 것이 비슷한 두 경기는 단 한 가지, 역습의 형태가 완벽하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두 경기에서 케인의 파트너로 번갈아 출전했던 손흥민요렌테의 차이에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전에는 요렌테가, 리버풀전에는 손흥민이 선발출전했죠.



(레알 마드리드전 선발라인업)


(리버풀전 선발라인업)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토트넘은 요렌테 포스트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토트넘은 수비에서 볼을 잡으면 요렌테를 향해 길게 볼을 넘겨줬죠. 요렌테는 후방에서 오는 볼을 큰 키를 이용해 머리로 떨궈주거나,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을 통해 볼을 지켜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요렌테가 볼을 떨궈주거나 소유할 때 주변에 있던 케인 혹은 에릭센, 무사 시소코가 수비 뒷공간으로 빠르게 쇄도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요렌테가 건네주는 세컨볼을 잡기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죠.


이러한 공격전개는 요렌테가 최전방에서 볼경합을 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수비수 한 명을 붙잡아 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란이나 라모스가 요렌테를 일대일로 마크하는 동안, 비어있는 수비 공간으로 토트넘 선수들이 뛰어 들어가는 겁니다. 요렌테는 몸싸움을 힘으로 버텨내며 볼을 지켜냈고, 팀 동료들이 쇄도하는 타이밍에 맞춰 볼을 넘겨줬습니다. 요렌테가 가장 잘하는 플레이 방식이고, 결과 또한 좋았습니다. 요렌테를 이용한 역습전개는 결정적인 찬스를 계속 만들어냈고, 거의 레알 마드리드를 이길 뻔 했죠.


(토트넘은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요렌테의 포스트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요렌테는 유연하게 팀의 공격전개를 도왔죠.)


(토트넘이 만들어 낸 대부분의 결정적인 기회는 요렌테의 연계플레이를 통해 나왔습니다.)



반면 리버풀전에서는 손흥민스피드를 활용합니다. 손흥민과 케인은 경기내내 리버풀의 수비 뒷공간으로 뛰어 들어갔죠. 공격수를 향한 패스의 방향도 레알 마드리드전과 전혀 달라집니다. 레알 마드리드전에는 요렌테가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며 볼을 잡을 수 있도록 공격수를 향해 패스를 보냈다면, 리버풀전에서는 손흥민과 케인이 달려가서 볼을 잡을 수 있도록 수비 뒷공간으로 패스가 전개되었습니다.


손흥민케인은 리버풀 수비수들과 스피드 경합을 통해 상대진영 깊숙한 곳에서 볼을 잡습니다. 알리에릭센 또한 레알 마드리드전과 달리 손흥민과 케인에게 패스를 넣어 주는 데 치중하죠. 리버풀이 수비라인을 높게 형성한다는 것을 이용한 역습전략이었고, 결과는 대승이었습니다.



(토트넘은 손흥민을 이용해 리버풀의 뒷공간을 공략했습니다.)


(골장면 또한 뒷공간을 공략한 결과였죠.)



포메이션을 비롯해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경기패턴도 같았지만 손흥민요렌테. 투톱의 한 자리에 어떤 선수출전하느냐에 따라 공격전개방식이 전혀 달라진 것이죠. 그리고 토트넘은 이러한 차이를 상대팀 수비의 특성에 맞게 사용했습니다. 스피드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리버풀 수비를 상대로는 손흥민의 스피드를, 수비수의 개인능력이 월등히 좋고 스피드가 빠른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요렌테의 포스트플레이를 활용했습니다.


놀라운 건 전혀 다른 두 전술을 토트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는 것이죠.




4.
반면 맨유전은 경기방식자체가 앞선 두 경기와 달랐습니다. 수비를 탄탄하게 구축한 후 역습을 시도하는 맨유의 특성상 토트넘은 상대적으로 볼을 소유한 후 공격을 시도하는 상황이 많았고, 토트넘은 이전 경기들과 다르게 역습이 아니라 지공을 펼쳐야 했습니다.

따라서 토트넘은 투톱이 아니라 원톱 밑에 미드필더를 많이 배치하는 형태로 경기에 나왔습니다. 손흥민과 알리가 투톱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공격상황에서는 결국 에릭센과 시소코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공격숫자가 손흥민, 알리, 에릭센 + 시소코가 되는 모습이었죠. 케인, 에릭센, 알리가 공격라인을 형성하는 것처럼 원톱 밑의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원톱 체제에서 달라진 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케인 대신 손흥민이 출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맨유전 선발라인업)


(맨유전 패스맵. 손흥민과 알리가 최전방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에릭센과 무사 시소코가 높게 올가가서 플레이하면서 사실상 손흥민, 알리, 에릭센, 무사 시소코가 함께 공격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손흥민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에릭센, 알리와 같은 주변 미드필더와 세밀한 연계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케인이 평소에 보여주는 모습이고, 지공 상황에서 요구되는 역할이죠.


그러나 손흥민은 맨유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좋은 연계플레이를 몇 차례 보여줬지만, 토트넘이 원하는 만큼의 활약은 아니었습니다. 답답했던 공격의 책임을 모두 손흥민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케인이 출전했을 때와 비교하면 토트넘의 공격작업 자체가 꽤 둔탁했죠. 토트넘의 공격이 날카롭지 못한 만큼 맨유는 역습찬스를 자주 가져갈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토트넘이 지공을 펼친 것에 비해 점유율도 높지 못했습니다. 


(손흥민은 좋은 연계플레이도 보여줬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선수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는 움직임, 연계플레이 모두 손흥민과 교체되어 들어온 요렌테가 더 좋았죠.)




5.
결국 손흥민은 유연한 포체티노의 전술 아래에서 장점단점이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 수비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공격방식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이지만, 세밀한 플레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약점을 보이죠. 이것이 케인, 에릭센, 알리로 이어지는 토트넘의 주된 공격전술에서 손흥민의 자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상대 뒷공간을 허물어야 하는 경기에서 손흥민이 무조건 선발로 선택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단점이 뚜렷한 손흥민의 특성은 주전경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포체티노는 굉장히 유연한 전술을 보여주는 만큼 선수들에게도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는데요. 포체티노는 3백을 토트넘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자리가 줄어들자 손흥민을 윙백으로 실험해보는 등 손흥민을 다양한 자리에서 테스트 했죠. 그러나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자 최근 경기에서는 투톱이 필요한 경기 이외에는 손흥민의 선발을 쉽게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맨유전이 손흥민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경기라고 생각했는데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서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더욱더 제한적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손흥민이 좀 더 좋은 선수가 되려면 다양한 역할에서 뛸 수 있는 유연한 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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