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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노미노 Nov 17. 2017

신태용호 '두 줄 수비'의 핵심은 권창훈과 이재성이다

신태용은 어떻게 두 줄 수비에 성공했는가

1.

월드컵 진출 확정 후 본격적으로 팀을 만들기 시작한 신태용 감독은 10월과 11월 두 번의 A매치 기간 동안 다양한 전술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러시아, 모로코를 상대했던 10월 A매치에서 한국 대표팀이 중점을 두었던 건 '볼을 점유하는 것'이었죠. 전술의 핵심 키워드로 '변형 스리백' , '포어 리베로' 등의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11월 A매치에서 한국 대표팀은 10월과 정반대의 전술 컨셉을 준비했습니다. 콜롬비아, 세르비아를 상대하며 중점을 둔 건 무엇보다 '수비를 안정화 시키는 것'이었죠. 이번엔 '442' , '압박' , '두 줄 수비' , '역습' 등의 용어가 전술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볼점유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선수비 후역습'이 한국 대표팀의 전술 컨셉이었습니다.




2.

'수비 안정화'가 이번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최우선 목표라 보았을 때, 신태용 감독이 442를 사용한 건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442'라는 전술 시스템은 수비를 안정화시키는 데 아주 유용한 시스템인데요. 우선 공격수 2명, 미드필더 4명, 수비수 4명으로 1,2,3선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어 수비라인을 3중으로 구축할 수 있죠. 수비수 앞 공간을 미드필더가, 미드필더 앞 공간을 공격수가 보호하는 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3줄로 이루어진 공수간격을 최대한 좁혀 수비를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공격수를 포함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야 하죠.



(442를 사용하게 되면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3줄의 수비가 가능해집니다. 원톱과 달리 공격수가 두 명이면 공격수 또한 효과적인 수비블럭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편 좌우로는 수비수 4명과 미드필더 4명이 1자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축구장의 좌우폭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상 3명이 나란히 섰을 때 좌우 공간을 모두 커버하기 힘들지만, 4명이 섰을 때는 좌우 공간을 모두 커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축구가 탄생한 이후 셀 수 없는 전술 실험 끝에 정해진 사실이죠. 따라서 수비수 4명과 미드필더 4명을 나란히 위치시키는 포메이션은 좌우 공간을 폭넓게 커버하는 선수배치입니다.



(좌우를 보면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각각 4명씩 나란히 서 있는 모습입니다. 좌우를 폭 넓게 커버하는 모습이죠.)



결국 상하로는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3중으로 수비라인을 만들고, 좌우로는 4명의 수비수와 4명의 미드필더가 측면 공간을 넓게 커버하는 442 포메이션은 수비적으로 굉장히 균형잡힌 시스템입니다. 수비지역 상하좌우로 선수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 공격수가 어느 지역에 있든 균일한 압박을 가할 수 있죠.


이것이 아리고 사키의 압박축구가 442를 기반으로 하는 이유이며, 최근 두 줄 수비로 단단한 수비를 구축하는 팀들이 442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비적인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필드 플레이어 10명 모두가 경기 내내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조직력과 모든 선수들의 수비적인 헌신,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할 수 있는 기동력이 필요합니다.



(442라는 포메이션은 결과적으로 상하좌우 균형적으로 선수를 배치하게 됩니다.)



(균형적으로 선수가 배치되어있다는 것은, 상대가 수비블럭으로 들어왔을 때 선수들이 둘러싸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팀은 한국의 강한 압박에 쉽사리 한국의 수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죠.)



놀라운 건 한국 대표팀이 단 한 경기 만에 442라는 전술을 거의 완벽하게 준비해왔다는 것입니다. 경기 내내 최후방 수비수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훌륭한 조직력을 보여줬고, 상대가 공격해 들어오면 강력한 압박으로 볼을 빼앗았죠. 모든 선수들의 헌신적인 수비가담과 수준 높은 조직력이 합쳐진 결과물이었습니다.



(한국의 수비블럭이 워낙 잘 유지되다 보니, 상대팀은 한국의 수비조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한국은 볼이 어디에 있든, 442라는 전형을 완벽하게 유지했습니다.)




3.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단단한 수비조직의 핵심에는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한 이재성과 권창훈의 공이 굉장히 컸습니다. 두 선수는 중앙 미드필더에 어울리는 선수들이지만, 신태용 감독은 두 선수를 좌우 측면에 기용했죠. 그리고 이처럼 중앙지향적인 선수를 양 측면에 기용하면서 얻게 되는 이점은 측면 미드필더들이 중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준다는 입니다.


측면에 배치된 이재성과 권창훈은 수비상황에서 측면이 아니라 중앙을 수비하는 데 집중합니다. 측면에 배치된 두 선수가 측면이 아닌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를 도와주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양 측면에 윙어가 출전해 측면으로 넓게 움직이면 중앙 미드필더가 담당해야 하는 공간은 넓어지지만, 중앙지향적인 선수들이 측면에 배치되어 중앙으로 움직여 준다면 중앙 미드필더가 책임져야 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중앙 미드필더들은 좀 더 수월하게 중원을 수비할 수 있게 되겠죠.



(이재성과 권창훈은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했습니다.)



(이재성과 권창훈은 수비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중앙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재성과 권창훈이 중앙으로 움직여 수비를 하다보니, 볼을 빼앗았을 때 중앙에 선수가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측면에 중앙 지향적인 선수들을 기용하는 전술은 수비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팀들이 사용하는 전략인데요. 포메이션상 중앙 미드필더가 두 명 기용되는 442는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있는 포메이션보다 중앙에 상대적으로 선수가 적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비라인을 내리고 442를 활용해 '두 줄 수비'를 하는 팀들은 '어떻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만으로 중원을 수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은 이 문제를 코케, 사울 니게즈, 라울 가르시아, 투란 등 중앙지향적인 선수를 측면에 기용하는 것으로 풀어내면서 최근 몇 시즌 동안 축구 전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4명의 미드필더가 중앙에 밀집하면 상대적으로 측면에는 공간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결국 득점이 발생하는 중앙 지역. 즉 수비 앞 공간에는 아주 많은 수비숫자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대표팀의 전술 또한 AT마드리드와 동일했습니다. 이재성과 권창훈. 두 선수의 1차적 목표는 중앙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한국의 중원 지역은 2중 3중으로 보호 받을 수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세르비아 공격수들은 수비 앞 공간에서 좀처럼 볼을 잡기 어려웠죠.


한편 상대의 볼이 중앙이 아니라 측면으로 전개되면, 이재성과 권창훈은 재빠르게 측면수비를 위해 움직였습니다. 두 선수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앙과 측면을 동시에 커버해줬기 때문에 중앙과 측면 모두 단단한 수비가 가능했죠.



(권창훈과 이재성은 중앙을 수비하다가도, 볼이 측면으로 움직이면 빠르게 측면으로 접근해 줬기 때문에 중앙과 측면 모두 수비가 가능했습니다.)




4.

이재성과 권창훈은 공격상황에서도 측면이 아닌 중앙으로 움직입니다. 최전방 투톱 바로 밑에서 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이었죠. 이렇게 두 측면 미드필더가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후방의 중앙 미드필더가 공격을 위해 전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재성과 권창훈은 공격 상황에서 중앙으로 움직였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는 442 포메이션에서는, 중앙 미드필더가 최전방 투톱을 지원하기 위해 자연스레 전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442 포메이션은 중원에 두 명의 미드필더 밖에 없기 때문에 한 선수가 공격에 가담하면 중원에 큰 공간이 생기게 되죠. 


따라서 442 포메이션은 공격상황에서 투톱이 볼을 받으러 내려오거나, 측면 미드필더가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중앙 미드필더의 공격가담을 줄여주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최근 442로 성공을 거둔 AT마드리드 또한 측면 미드필더들이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중앙 미드필더들이 역습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한국 대표팀 또한 이재성권창훈이 공격상황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후방의 중앙 미드필더들은 역습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수비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10월 A매치 기간의 러시아, 모로코전을 보면 기성용이 공격상황에서 높이 올라가 중원이 텅비게 되고, 상대가 손쉽게 역습을 가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그러나 이번 콜롬비아, 세르비아전에서는 기성용이 높게 올라가지 않고 중원에서 상대 역습을 차단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역습 찬스에서 한국 대표팀은 수비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죠.


또한 기성용이 높이 전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후방에서 볼배급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빌드업 과정에서 기성용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 대표팀의 입장에서, 기성용의 공격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였죠.



(이재성과 권창훈 덕분에 기성용을 비롯한 중앙 미드필더들은 공격으로 높게 올라가지 않고, 상대의 역습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상황에서 기성용이 높이 올라가 상대 역습상황에서 중원이 텅 비는 상황이 많았던 모로코전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느껴지죠.)



이처럼 이재성권창훈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공수 양면으로 중앙 미드필더들이 수비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단단한 수비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이었죠.




5.

한국 대표팀은 이번 A매치 기간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콜롬비아나 세르비아 선수단이 완벽한 전력은 아니었고 불안요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수확은 한국 대표팀이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대표팀은 볼을 점유하는 경기스타일을 추구했지만, 기술적으로 볼을 점유하는 건 한국 대표팀이 가진 장점이 아니었죠. 결국 팀의 전술이란 것은 선수단 전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손흥민, 기성용 같은 선수를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경기할 수 있는 선수가 없으니까요.


결국 신태용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이 가진 강점인 '기동력' , '체력'을 살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빠르게 역습을 가져가는 패턴을 선택했는데, 이번 경기로 한국 대표팀이 나아갈 방향을 아주 정확하게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놀라운 건 신태용 감독이 유럽의 선진적인 전술을 빠르게 따라간다는 점이네요. 두 줄 수비를 사용한다거나, 측면에 중앙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등 최근 유럽에서 사용되는 전술들을 한국 대표팀에 적절하게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한국 대표팀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보여줬다는 것. 아직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지만, 이후의 경기들이 기대되는 이유가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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