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우리는 앙숙입니다.

인간 관찰 (블랙) 코미디 에세이 「방송국 놈들」

by 펜피디

이 세상에는 앙숙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마치 개가 고양이를 보면 덤벼들고, 고양이가 개만 보면 털을 곤두세우는 듯한 관계.


“막내 작가님, 배차표 언제 마무리돼요?”

녹화장 가장자리, 막내 피디 철민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마찬가지로 쭈그려 앉아 촬영구성안을 살피는 막내 작가 선아가 있었다.

“내일까지요. 피디님, 사무실에 A4는 언제 채워주실 거예요?”

피디가 재촉하는 지금, 이때다 싶어 질문을 퍼붓는 막내 작가였다.

“그…그거. 배차표 주시면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철민은 가위며 테이프며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고정시킨 가방 끈을 매만졌다. 날카로운 선아의 눈빛이 느껴지자 손에서 땀이 났다.

“내가 A4 말한 지가 언젠데, 그걸 무슨 이…”

선아의 얇고 높은 목소리가 조금씩 데시벨을 키우려는 그때.


“야!“

방금 큐사인을 외친 메인 피디의 고함이었다.


”정신 나갔어? 뒤에 누가 쑥덕거려?“


끔뻑. 끔뻑. 철민과 선아는 눈의 초점을 거둔 채 조용히 눈만 끔뻑거렸다. 두 명 모두 이틀째 감지도 못한 머리카락을 겨우 부여잡고는, 녹화장 바닥과 쭈그려 앉은 엉덩이 사이 10cm의 틈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큐”

스태프들의 시선이 제자리를 찾고, 카메라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그때. 철민의 작은 목소리가 옆을 향했다.


“저희 언제 한번 술이나 먹죠.”



그로부터 9년 뒤.


“으앙!”

메인피디의 고함소리보다 무서운 고함이 집 안을 뒤덮었다.


“왜 또 울어, 아가. 엄마 힘들어.”

선아는 분유가 묻은 티셔츠 위로 아기를 들어올렸다.


“나…나 10분만.”

철민의 잠꼬대였다. 선아의 엄지발가락이 잠자는 철민의 종아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세탁기 돌렸어?”

선아는 여전히 눈만 끔뻑거리는 철민을 쏘아봤다.


”자기는 설거지하고 잤어?”

철민의 억울한 눈썹이 선아를 올려다봤다.


이 세상에는 앙숙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으앙!!!”

옥신각신하는 철민과 선아 사이 거센 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끔뻑. 끔뻑. 철민과 선아는 눈의 초점을 거둔 채 조용히 눈만 끔뻑거렸다. 두 명 모두 이틀째 감지도 못한 머리카락을 겨우 부여잡고는, 아기가 누르는 10kg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오늘 퇴근하고 치맥할래?”


해탈한 듯 눈만 끔뻑이던 철민이 선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익숙한 말에 혼이 나갔던 선아의 얼굴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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