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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Oct 31. 2023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어? #1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어쩌자고 그런 중요한 결정을 쉽게 내려버렸을까. 그때의 나를 원망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매일 같이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후회가 너무 심하게 덮치면 멀미가 날 것 같아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혹시 그들이 그 돈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뭐라도 좀 달랐을까.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우리 부부는 8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다. 뭐든 마음먹은 즉시 행동하는 신랑 덕분에 가능한 시작이었다. 매장오픈을 결정한 당일 우린 부동산에 가서 매장을 계약했고 다음날 신랑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퇴사처리를 부탁해 퇴사까지는 2주라는 시간이 있었다. 3주 후 오픈이라는 전단지를 제작했다. 신랑은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실행력이 참 좋다. 

 
 

 신랑의 퇴사를 앞둔 2주간은 혼자 아이를 안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오픈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인테리어를 업체에 맡길 수 없는 형편이라 철거작업부터 시멘트로 주방벽 만들기  주방공사 모두 셀프작업이었다.  당시 소방 관련 업무로 건축현장에서 일하던 신랑은 새벽 5시에 기상했고 식사시간을 아끼기 위해 내가 만들어준 삼각김밥을 들고 집을 나섰다. 퇴근 후 귀가하면 오후 7시였고 밤 12시가 넘도록 공사를 해야 했다. 퇴사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셀프인테리어로 3주 만에 개업을 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옷가게를 운영하던 매장을 주방으로 만드는 일은 신랑에게도 대단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힘든 현장일을 마치고 매장공사를 하고 쓰러지듯 잠에 들던 신랑이 그저 안쓰러웠다.




 하지만 미리 제작한 전단지를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수입이 없는 공백을 오래 둘 수 없는 가계상황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저소득계층가정의 기저귀지원을 받았을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오려나... 기저귀지원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아이를 안고 보건소에서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세세히 적어 내려갔던 날의 비참함은 아직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보건소옆 김밥천국에서 아이띠를 매고 식탁 옆으로 몸을틀어앉아 쫄면을 먹으며 맵다고 울었다. 사실 쫄면은 그렇게 맵지 않았으면서.  


 6년간 유학생활도 부모님 지원을 받지 않아 장학금을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학업에도 열중했고 매일 새벽 5시부터 알바를 하며 공부했지만, 돈 때문에 울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난에도 단계가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가난은 많이 아프다. 출산 후 조리원도 성장앨범도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다.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와 언젠가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2000만 원으로 계약한 10평짜리 정부지원빌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은 친정엄마와 여동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 눈물과 눈빛 너무 싫었다. 10개월 동안 신랑의 월급에서 50만 원을 제외하고는 악착같이 적금을 들었다. 50만 원으로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떡해 가능했는지.. 그때의 가계부가 놀라울 따름이다. 물티슈도 아낀다며 한 번 쓰고 빨아 개어둔걸 신랑이 보더니 화를 냈던 일도 있다. 


 10개월간 모은 돈으로 우리는 매장을 오픈했고 간절했다. 감사하게도 매장은 4개월 만에 유명해졌다. 우리 부부 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해 한 사람씩 인력충원을 하다 보니 작은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8명이 되었다. 월수입을 묻는 지인들 질문에 계산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순수익이 얼마인지 계산해 볼 여유조차 없이 바빴고 돈을 쓸시간도 없어  돈이 절로 모였다. 물론 내 기준이고 과거형이다. 우리 부부는 수면시간 5시간을 제외하고는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일을 했고 화장실 가는 짬이 쉬는 시간이었다.  믿음 가는 매장으로 자리매김해나가는 것이 뿌듯하고 기뻤다.  


                   

 더는 정부에서 기저귀를 지원받을 수 없어서 무엇보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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