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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11. 2023

한발 물러나기

작은소리로 응원할게.

희찬이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상대편 수비수와 1대1상황. 머뭇거리는 사이 골은 빼앗겼다. 계속 숨을 헐떡거리며 뛰는데 막상 볼을 잡으면 패스만 하고 골대쪽으로 가지 않는다. 골대 앞에서도 기회가 있었지만 골로 이어지지 않았다. 왼발이 주발인 희찬이가 오른발로 날린 슛이 약해 골키퍼 품으로 들어가거나 압박수비를 뚫지 못했다.

"왜 실컷 뛰어놓고 공 앞에 가서 멈칫하는 거야?"

"부딪힐까 봐 미리 피하는 거지."


"오른발 훈련 늘려야 하는 거 아니야? 왼발이었으면 들어갔을 것 같지? 오른발 약해서 큰일이네~"

"괜찮아 희찬이 잘하고 있어. 여기서 보는 거랑 경기장 안에서 랑 달라~ 어차피 골 넣기 애매한 위치였어" 


조바심에 신랑에게 연신 묻는다.


고개는 몇 번을 돌리는지. 수비수를 의식하며 위치선정은 잘하고 있는지. 패스를 받고 나서 곧바로 다음동작으로 이어지는지. 희찬이만 보인다. 희찬이 몸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이라도 연결해 놓은 듯 좌우로만 움직인다. 다른 학부모들과 축구화. 영양제정보를 공유할 여유가 없다. 눈깜빡이는 찰나 움직임을 놓칠까 눈꺼풀에 힘이 들어간다. 경기를 하는 내내 조바심이 나고 스콘을 입에 쑤셔 넣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지난주에는 3골이나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오늘은 어디가 아픈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 거지? 생각이 많아진다. 경기동영상은 하루나 이틀 후 카톡으로 전달받을 수 있지만 보강할 훈련을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토요일은 경기를 하고 일요일이면 아빠와 개인훈련을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까지 우리셋의 반복되는 주말일상이었다. 축구에 진심인 아들은 훈련일지도 작성하며 한주도 빠짐없이 축구를 한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축구모임이 있다. 평일에는 각자소속된 팀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투표를 통해 참여하는 경기다. 1분 만에 24명의 정원이 차는 치열한 투표이니 만큼 아차 하면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 신랑은 알람을 맞춰놓고 재빠르게 투표를 해 매주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엄마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기가 끝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희찬이가 달려와 엄마아빠를 번갈아 안아준다."수고했어"라는 말과 함께 생수를 주니 벌컥벌컥 마신다. 그제야 삼킬침도 없이 말라있는 나의 목구멍에도 물을 붓는다. 목의 갈증은 가셨지만 가슴의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늘 가는 식당으로 이동하는 차 안. 희찬이는 오늘경기 중 잘한 부분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아빠? 아까 내가 폭풍드리블하는 거 봤어? 잘했지?"

"엄마! 엄마! 드리블할 때 내가 어제 연습한 거 써먹었잖아. 봤어? 그거 진짜 어려운 거거든"

"응 계속 봤지 잘했어 잘했어"

졌는데도 기분이 좋은 아이를 이해할 수 없지만 기분 좋은 식사를 위해 애써 잘했다며 칭찬을 해줬다. 얼굴 표정관리는 자신이 없어 희찬이 얼굴은 보지 않은 채 차밖 풍경만 보며 희찬이 말에 맞장구를 치는 사이 식당에 도착했다.


메타인지가 저렇게도 낮은가? 경기에서는 졌고 몸싸움에서는 이리저리 치였다. 수비도 엉망이었다. 연습한 드리블기술을 써먹었다고 좋아할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신랑은 부진했던 경기 속에서 용케도 잘한 부분을 찾아낸다.

"희찬아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왼쪽에서 날라온공 희찬이가 받아서 패스 정확히 찔러준 거 그거 너무 좋았어! 그거 진짜 어려운 건데 멋있었어! 트래핑도 실수하나 없이 잘했어. 연습 많이 한 보람이 있다 역시 우리 아들"

야무지게 고기를 먹으며 아빠의 칭찬에 어깨가 잔뜩 올라간다.


토요일점심마다 가는 고깃집이지만 어쩐지 고기 맛이 시원찮고 질기다.


처음으로 경기를 따라가지 않고 집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희찬이 물병. 축구화. 수건. 보호대를 챙기며 그냥같이 나갈까? 하고 몇 번을 고민도 했다. 고민하는 나에게 "둘이 갔다 오면 돼~ 혼자 조용히 글 써~이럴 때 써야지"라는 신랑의 배려에 아쉽게 배웅을 했다. 오늘경기는 잘하겠지? 지난주 경기만큼 안 좋은 경기력이면 안될 텐데.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지만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났다. 신랑과 희찬이가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귀가했다. 곧 같은 경기장에서 경기했던 학부모에게 아이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카톡으로 왔다. 

"오늘 희찬이 날아다녔는데 왜 아빠만 왔어? 오늘 희찬이 진짜 잘하더라"

영상이 궁금해 급하게 답장을 하고 동영상을 봤다. 유연한 몸놀림과 현란한 드리블로 본인보다 키가 훨씬 큰 친구들 3명을 재치고 멋진 슛을 넣는 영상이었다. 현장의 함성까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있어 나 또한 저절로 탄성을 질렀다. "어머 우리희찬이 왜 이렇게 잘해 너무 멋있다. 와아 진짜 발기술 손흥민이다. 너무 멋있어!"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아이를 붙잡고 할 수 있는 칭찬은 다했다.

3골이나 넣어 3개의 골 넣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멋있다 칭찬을 하는데 희찬이가  나를 안아준다. 늘 애교가 많은 외동아들이라 엄마의 리액션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나도 희찬이를 품에 꼭 안았다.


"엄마 저번주에는 칭찬 안 해줬는데 오늘은 칭찬해 주네? 빠까뿌꼬삐꼬(애교짓할 때 하는 특유의 멘트다.)

"희찬이가 저번주 에는 조금 적극적이지 않고. 볼도 계속 양보했잖아. 오늘경기는 정말 최고였네. 엄마가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다. 너무 잘했어 우리 아들"

"저번주에는 덩치 큰 친구들이 많아서 내가 부딪힐까 봐 그런 거야. 그래서 엄마 표정 안 좋은 것도 나는 다 알고 있었어~맞지? 엄마가 주말경기에서 부상당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그랬던 건데. 오늘은 아빠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다한 거야"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저번주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았다는 것을 희찬이가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미안했다.좋아하는 축구를통해 웃고 즐거워하는모습 그거하나 바란 나였다.언젠가부터 잘하길 바라고 다치지 않길 바랐다. 다른 아이를 행여 넘어트려 그 아이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인사하는 일이 생길까 불안했다. 분명 1년 6개월 전 에는 경기 룰 도 모르고 신나게 뛰는 아이가 행복해 보여서 마냥 좋았는데 그사이 욕심 많은 바라는 것 많은 걱정많은 엄마가 되어있었다.


축구경기는 생각보다 격렬한 스포츠종목이다. 아이가 축구를 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보호장구라고는 손바닥만 한 보호대가 전부다. 무릎까지 오는 양말 안에 작은 보호대는 선수들의 다리를 지켜줄 수 없다. 축구화에 밟히기라도 하면 발가락뼈가 부러진다는 건 유소년축구선수 학부모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다. 아이가 경기하는 걸 보는 것은 월드컵 결승전보다도 흥미진진하고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이 있다. 하지만 아이의 부상 앞에서는 무너진다. 몸싸움에 밀려 몸이 휘청거리고 태클에 걸려 철퍼덕 넘어지면 속이 많이 상한다. 무릎에 피나는 것쯤은 늘 있는 일로 소독 없이 경기는 진행한다. 과격한 플레이를 하는 친구라도 있는 날이면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상처가 팔 이곳저곳에 있고. 심판의 눈을 피해 옷을 잡아당겨 옷이 늘어나거나 찢어지는 일도 다반수다. 체구가 작은 편인 희찬이는  넘어지는 일이 많을수밖에 없다. 뛰면서 부딪히면 강한 충격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돈후 얼굴부터 바닥으로 떨어진다. 결국 벤치로 나오게 되고 괜찮다며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지옥이다. 다리에는 수십 개의 파란 멍 빨간 멍이 물감을 쏟은 것처럼 빈자리가 없다.  


"희찬아 주위 잘 살펴야 돼. 어깨 부딪힐 거 같으면 옆으로 피하고. 태클 들어올 것 같으면 앞으로 가지 말고 옆으로 가야 돼. 태클은 절대로 하지 말고. 몸싸움은 그냥 피해. 다치지 않게 알았지? 적극적으로 해! 두골정도 넣어보자!" 

작은 부상조차 피하며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란 건 나도 안다. 안쓰러운 나머지 경기 전에는 말이 많아진다. 아이가 다쳐 피가 나면 놀래까 싶어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고 다쳐서 파랗게 되면 "뼈 안 다쳐서 괜찮아"라고 했다. 꽤 쿨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속상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그것조차 드러내지 않을 만큼 괜찮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이내 눈물이 떨어졌다.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는 엄마라 아이는 엄마를 약 올리듯 아빠에게 뛰어간다.

"아빠~~ 엄마 또 울어~~"

"왜~또?"

"몰라?내가 오늘 잘해서 감동받았나 봐"


땀에 젖은 유니폼. 가뿐 숨소리.멍투성이 다리. 뒤에서 한발 물러나보니
너의 한걸음 한걸음이 엄마에게는 늘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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