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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Dec 21. 2023

옥탑방의 변신

기뻐했던 기억만 남아도 괜찮아.

희찬이가 초1이었던 작년 여름방학 태권도장에서 축구를 배운 후 희찬이는 공과 한 몸이 되었다. 태권도에 빠져 도복을 입고 캠핑장을 가던 아이는 축구유니폼을 입고 축구공 만 찾는다. 2년간 태권도 선수의 꿈을 키우던 아이가 너무 쉽게 태권도를 내려놓으니 내심 허탈했다. 태권도를 지속해 주길 은근히 기대했지만 아이의 의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빠가 태권도선수출신인것은 우리에게만 의미가 있는일이다. 태권도장을 가던 시간대에 축구클럽을 갔다. 눈을 뜨면 축구공부터 찾았고 축구훈련이 없는 주말에는 연습이 가능한 풋살장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7살 때 할머니가 마이클잭슨의 영상을 보여주었을 때의 일이다. 희찬이는 3개월간 매일같이 마이클잭슨 노래를 듣고 춤을 따라 추었다. 우리 아이가 댄스신동이 아닐까 감동할 만큼 화려한 춤사위. 골반의 부드러운 움직임. 강렬한 눈빛. 박자감각까지 모든 것이 뛰어나보였다. 우리 가족들이 보기엔 그랬다. 무덤덤한 신랑조차도 마이클잭슨의 모자를 미국에서부터 힘들게 공수해 왔다며 희찬이의 마이클잭슨사랑에 불을 지피었다. 희찬이는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뜻도 모르는 팝송을 여러 곡 부르며 곡에 맞게 춤을 추어대니 우리가 들뜨기에 충분했다.  스타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아이계정의 유튜브를 개설하려고 할 즈음 마이클잭슨의 사랑은 식어갔다. 지금은 미국에서부터 공수해 왔다는 모자와 함께 장난감더미 어딘가에 매몰되었다. 댄스실력 역시 볼 수가 없다. 증명할 길 없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축구 역시 그 정도의 빠짐이라고 생각했다. 희찬이의 발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훈련을 하자고 해도 소용없었다. 물집이 생겨도 매일 훈련을 했고 아이가 잠에 들면 그때야 소독을 할 수가 있었다.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발감각을 익혀야한다며 매일 훈련을하는 희찬이를 보며 사실 놀라기까지 했다.


친정엄마와 합가 후 집이 좁아 마침 이사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사 할 집을 찾는 첫 번째 조건은 화장실 2 개 인 넓은 집. 두 번째 조건은 아이의 학교와 도보 5분 거리여야 할 것. 세 번째 조건은 층간소음 걱정 없이 희찬이가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확보가 되는 집.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매물로 나온 이 근처 단독주택은 거의 구경한듯하다. 그사이 희찬이가 축구의 흥미를 잃더라도 상관없었다. 희찬이가 층간소음을 일으킬 다른 무언가에 빠질 확률이 큰 남자아이라는 것. 게다가 장구를 치는 친정엄마까지 생각하면 우리는 꼭 층간소음걱정 없는 집이 필요했다.


올해 1월 드디어 찾던 집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해 학교에서 1분 거리. 화장실 2개인 넓은 집. 마음껏 뛰어도 되는 옥탑방이 있다. 조건 충족완료다. 옥상까지 있으니 엄마의 텃밭은 덤이다. 우리가 원하던 집이었다. 이사당일부터 희찬이는 옥탑방에서 축구를 했다. 공을 집에서 뻥뻥 차며 신나게 뛰었고 나 역시 집에서 줄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희찬이 만큼 신났다. 월 2만 원 회비를 내고 다녔던 주민센터 헬스장을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언제라도 올라가서 운동할 수 있는 옥탑 트레이닝센터가 있다. 바닥은 무릎과 발목에 충격흡수가 되지 않게 신랑이 매트를 깔아놓았다. 회색의 벽이 칙칙한 거 같다며 신랑은 화사한 색감으로 페인트칠을 해주었다. 충격적이었다. 노란색 페인트를 칠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페인트를 칠하기 전의 회색빛 옥탑방이 더 좋았지만 노란색 너무 이쁘다며 자기는 정말 대단해라고 외쳐주었다. 색감선택이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올여름축구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아이의 축구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점점 달아올랐다. 기존 축구클럽에서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까지 한 상황이었다. 학교 축구부 훈련이 끝나고 귀가 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희찬이는 개인훈련을 해야 한다며 옥탑방을 올라갔다. 우리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속옷까지 땀으로 젖어야 만족하고 내려와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열심히 연습하는 희찬이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신랑은 희찬이에게 조금 더 좋은 옥탑방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며 눈빛이 반짝거렸다. 지금껏 살면서 만난 사람 중 추진력이 가장 좋은 신랑은 말을 내뱉자마자 실내용 잔디를 주문했다. 혹시 모를 화학성분의 우려로 물세탁 후 햇빛에 말리는 작업을 보름에 걸쳐 진행했다.

선풍기와 환풍기도 설치해 제법 운동하는 방의 분위기를 낸다. 눈에 거슬리던 노란 벽지도 민트색 벽지로 반은 가려주었다. 전부 민트색으로 벽지를 붙여주면 참 좋으련만 본인의 색감선택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 싫었는지 딱 저만큼만 붙여주었다. 아주 아쉬운 부분이지만 희찬이에게는 벽지색 따위는 상관이 없어 보였다. 실내용 잔디를 깔은 날 희찬이가 하교 후 신랑은 들떠서 희찬이 손을 잡고 옥탑방에 올라갔다. 희찬이는 본인의 미니풋살장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에게 고마움이 담긴 우와를 연발했다. 물에 젖은 무거운 실내용 잔디를 물세탁 후 옥상에 말리는 작업만 3번 진행했다. 신랑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희찬이가 기뻐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벽지색이 빨간색이면 어떻고 파란색이면 어떠한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내가 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애써주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이미 아이가 축구선수가 된 거처럼 기쁜 날을 보냈다.


희찬이를 위해 연습공간을 만들어준 신랑의 뿌듯했던 기억. 아빠에게 고마워 하며 매우 기뻐했던날의 희찬이의기억. 이 둘을 지켜보며 가슴벅차게 행복했던 나의기억. 그 기억을 건진 것만으로도 옥탑방은 우리의 인생에서 깊은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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