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집을 나선다. 훈련을 마치는 희찬이를 픽업 후 실내축구장으로 간다며 들뜬표정이다. 본인 이름으로 오픈한 축구장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일주일 내내 시간만 나면 축구장을 휙 둘러보고 온다. 평일은 무료대관으로 오픈해 두었더니 축구할 곳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던 축구인들이 소문 듣고 모여드는 분위기다. 무료대관으로 운영하니 고맙다며 음료수를 주고 가는 축구인들. 희찬이가 축구공 다루는 걸 보며 신기해하는 주위시선도 즐기는 눈치다. 훈련을 마치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걸어 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에너지를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신랑 역시 얼마 전까지는 희찬이를 데리고 둥지를 찾아다니는 철새들처럼 서울 경기인천 축구장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축구장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은 아니어도 별자리를 찾는 것만큼은 어렵다. 팩스로만 예약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모축구장은 00시 01분이면 예약이 마감되었으니 말이다. 축구할 곳이 많지 않아 희찬이를 위한 축구장하나 꼭 짓고 말겠다던 5년 전 꿈을 이뤘으니 보물단지 숨겨둔 것처럼 매일 드나들만하다.
넓은 부지를 찾느라 오픈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희찬이가 바르셀로나로 가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있다. 올 겨울은 실내축구장이 있으니 도토리를 땅에 한아름 묻어둔 다람쥐 마냥 든든하다. 쌓인 눈을 한편에 치워두어도 어쩔 수 없이 축구화가 젖어 양말까지 축축 해지는일. 속옷까지 젖으며 훈련할 일 없으니 나 역시 실내축구장 오픈날은 주책맞은 눈물에 신경 쓴 화장이 뭉개졌다.
추운 날 훈련을 나가는 신랑과 희찬이에게 더 이상 옷 한 겹 더 입으라는 잔소리를 할 일도 없다. 칼바람이 부는 날 새빨간 얼굴로 아빠와 아들이 한강에서 훈련을 하고 오는 날 이면 하루종일 따뜻한 서재에 앉아있는 걸 미안해할 일도 없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가 시계를 보고 흠칫 놀라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광합성을 하며 집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빌딩이 나온다. 햇빛을 받으면 연한초록색 빛을 띠고 해가질무렾에는 녹색. 밤에는 검은색으로 보이는 빌딩. 신랑이 설계도면 작업부터 참여해 건축자재 하나하나 신경 써가며 올린 우리의 빌딩이다. 건축 공학 전공을 살려 참견과 관심이 어우러진 열정으로 올린 공든 탑이다.
1층은 개방형 도서실. 2층은 독서향상재단사무실로 운영 중이며 한 시간 뒤 서울시 복지정책지원과 와 회의가 잡혀있다. 설립 1주년을 맞은 재단은 브런치브로젝트 2기 동기들의 후원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동기들이 각종 TV교양프로그램을 휩쓸고 네이버 다음 메인을 장식할 때마다 가슴이설레고 기쁘다.(후원금이 더 많이 들어올 것 같은 기대를 한다.)
이은경선생님이라는 큰 나무아래 우리 동기들은 숲을 이루고 있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또 다른 이들에게 언젠가는 큰 나무가 되기 위해 계속 성장 중이다.
좋은 책을 바꾸어 읽자는 취지로 주최했던 ⌈나누어 읽어요⌋ 이벤트를 시작으로 후원기금을 모으고 있다.
두 번째 이벤트 ⌈마음을 책에 담아 보내요⌋가 큰 성과를 거둔 덕분에 기금 5000만 원이 모였다. 후원금으로 신간책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소규모 초등학교에 5000여 권의 책을 보냈다.
⌈마음을 책에 담아보내요⌋이벤트는 반응이 뜨거웠던 것만큼 이후 인터뷰도 많았다. 덕분에 매달 한 권씩 보내드리는 ⌈매달 책에 담아보내요 ⌋를 서울시와 함께 우리 독서향상재단에서 주최한다.
평소 부모님께 사랑표현을 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자녀세대를 겨냥한 '큰 글씨책 보내드리기'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감동적인 후기가 SNS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외로운 노년기를 보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한 '큰 글씨책 보내드리기'행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마음치유 복지방향과도 맞아떨어져 서울시 복지정책지원과에서 먼저 요청을 해온 것이다.
큰 글씨책이 서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터무니없이 작아 내내 불만이었다. 친정엄마는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을 읽는 건지 얼굴을 파묻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대고 책을 노려보았다. 그때마다 줄곧 생각했던 일이었다. 내년에는 직접 인쇄소를 운영할 생각으로 신랑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인쇄소를 운영하며 여러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더 많은 큰 글씨책을 세상에 내놓을 기획을 하고 있다. 신랑의 추진력은 여전하다. 아니 갈수록 향상되어 간다.
3층 글쓰기연구소는 프로그램을 늘려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브런치프로젝트를 통해 글과 친해지고 마음과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갔던 시간들이 쌓여 글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었으니 나 또한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를 권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이유식 ]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한 끼 뚝딱] [돈 잘 모으는 언니의 따끔한 잔소리] [아이의 몸과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운동일지] 연구소 복도에 4권의 책이 늠름하게 서있다. 저자 윤은채. 출판사 라라 앤 글. 출간한 지 시간이 꽤 흘렀어도 처음 출간한 이유식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10년간의 이유식매장을 운영했던 기억들까지 떠올라 짜릿하다. 책을 손에 들었던 첫날의 기억조각이 뇌인지 가슴인지모를 나의 어딘가에 박히는 것 같은 짜릿함이다. 희찬이를 처음으로 내 품에 안았던 날만큼 기쁜 날이었고 한 권 한 권 아파서 낳은 내 새끼다. 지금은 [삶의 순간]이라는 수필을 잉태 중이다.
4층 소강당에서는 매주 월요일 독서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5층은 e-북과 독서앱을 운영하는 신랑의 사무실이다.
신랑은 여전히 새벽기상 후 책을 읽고 업무를 마치면 희찬이 훈련장을 가서 픽업 후 희찬이 발 마사지를 한다. 내일 먹을 그릭 요구르트를 만드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우리는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여전히 같은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사소한 일로 웃는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그릭요구르트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 할 일에 대한 간단한 스케줄을 이야기하며 오늘밤도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