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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Oct 30. 2023

설거지 자격증

설거지 전문가

세상엔 자격증이 넘쳐난다. 어떤 분야에 능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격증을 취득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특정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일 설거지 자격증이 있다면 단번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 설거지라는 아주 하찮은 일을 위해 자격증을 운운하다니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더욱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요식업을 운영하기에  채용 공고게시를 종종 한다. 모집내용 직무란에는 주방보조-설거지알바구함이라 게재한다. 상세내용에는 [무게 있는  통 3중  스테인리스냄비를  사용해  무겁고  상당히  힘듦]이라며 겁을  주는  멘트까지. 이 정도면  구인활동  의지가 없어 보이겠지만   이력서는  접수된다. 최저시급보다  1000원  많고, 하루  3시간  근무라는  장점이  이유인 듯하다. 사실  설거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채용 이후  30분이라도  설거지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 것보다, 설거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라고   하는 편이  평온한  아르바이트환경을  유지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힘듦을 강조한다. 1차  이력서면접에서  통과하면  2차  대면면접을  진행한다. 면접날 냄비를  직접  보여주며  "무거워  보이죠? 저희  주방  많이  힘들어요. 각오하셔야 해요 " 라며  비장한  각오가  되어있는지  확인 후  설거지알바를  채용한다. 8년간  대면  면접 이후  전원  채용이었다. 비장한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  2차  대면면접을  본 것인지  긴장한 눈빛을  비장한  눈빛으로  잘못  읽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감자껍질제거, 당근껍질제거, 브로콜리손질등  야채손질은  요. 알. 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방법을  알려주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늘  문제는  설거지다. 가정주부도  예외는  없었다. 10명 중 5명은  설거지를  할 줄 모른다. 아니  할  줄  모른다. 설거지는  오염된  식기와  조리도구를  오염되기  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일이다. 설거지는  멍 때리면서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설거지  자격증이 있다면  필기시험의  순서가  아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 오염의 원인을 파악  2. 대상분리 후 감별작업  3. 제거  작업  4. 관리 


오염의 원인파악을 하지 않고 설거지에 돌입한다면 여러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오염되지 않은 곳을 굳이 소중한 팔힘을 들여 닦을 필요는 없다. 만약, 기름이 많이 묻은 식기가 있고 그 아래 야채손질을 했던 조리도구들이 쌓여있다고 가정해 보자. 기름이 많은 식기를 물에 흘려보내는 순간 실점이다. 주방세척제로 간단히 닦으면 되는 작업을 고난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해결해  보자. 쌓여있던 조리도구들이  기름범벅이  되었으니 설거지 온도부터 변경을 해야겠다. 설거지온도에  대한  의견또한 분분하다. 설거지자격증은  없지만  정답을 유추해 본다.

60도 이상의  온수로  오염을  제거한다. 주방전용세제로  세정수를 만든다. 수세미에  묻힌 뒤  대상을  닦는다. 헹굼 작업의 온도는 40도로  한다. 아무리  친환경주방세제라고  한들  세제수증기는  폐에 치명적이다. 절대 세제가  호흡기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뜨거운 물에  세제를  넣지 말란 말이다. 꼭  뜨거운 물로  설거지가  하고 싶다면  마스크라도  꼭 쓰길 바란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우리의 목적은 오염된 조리도구를 오염 전의 상태로 돌리는 일이다. 세제의 잔여물이 절대 남아서는 안 되겠다. 식당에서  숟가락을  집었는데  하얗게  얼룩이  남아있는걸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제잔여물이다.  흐르는  물에  헹구기만  할  경우 눈에 보이는 오염은 제거됐을지 모르지만 세제잔여물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소름 끼치지  않는가? 우리 가족들에게 하마터면 세제를 먹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아래 설거지는  중요시되어야 한다. 헹굼수세미를 사용해 닦아주어야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매직스펀지는 최고의 헹굼수세미역할을 한다.


 설거지 자격증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관리다. 건조에 해당한다. 조금이라도  세균이  남아있을 경우  물기가  있다면  세균번식 가능성이  높다. 설거지까지는  잘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동일  사이즈의  야채볼을   착착  쌓아두는  아르바이트학생이  있었다. 물컵도 새로 산 종이컵들처럼 착착  쌓아두었다. 정렬된 컵을 보며 개운함 이 아닌 컵  사이사이  세균이  번식하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노고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임에도 이유식이라는 특수매장을 운영하는 나로서는 위생관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헹굼 작업이 끝났다면  바람이  통하도록  식기들을  진열하고  물기하나 없이  마른 후에  제자리를  찾으면 설거지자격증시험이 마무리된다.


한식조리기능사는 전문조리사의 자격증이다 조리영역을 필기와 실기로 나누어 치르는 국가시험이다.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맛있게 할 거라 기대한다. 적어도 이런저런 식재료를 마구 넣고 끓여 접시 위에 플레이팅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신뢰감이 있다. 설거지 협회라도 개설해 민간자격증을 만들고 싶다. 각 가정에서 엄마에게 배운 설거지방법이 있을 것이다. 으레 해오던 것을 지적당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첫 출근 첫날 설거지교육을 한다. 설거지를 하다가 지적을 당하는 일을 애초에 방지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서다. 다른 작업은 일일이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설거지는 교육 없이 투입되어 지적을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싶어서. 설거지 자격증은 없지만 설거지 전문가로서 교육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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