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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18. 2023

화가난다

상처와 분노의 정비례

이제야 눈앞에서 사라졌다.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미워했다. 희찬이의 부어있는 눈 얼굴 팔다리를 볼 때마다 괴롭고 화가 났다. 지난 4개월간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그놈들은 이제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너무 미워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저 놈들도 부모가 있을 텐데 이렇게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싶기도 했다. 신랑은 그런 나에게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으면 그 지점까지 생각이 가느냐고 미워하지도 말고 연민도 느끼지 말고 용서하라고 한다.

하지만 희찬이의 팔다리를 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지난달 일이다. 이마 라인을 타고 내려오며 뜯어 먹었는지 이마에 4방 눈 위에 한방 에 2방 을 물렸다. 티셔츠를 벗고 엎드려 자는 희찬이의 등과 팔꿈치에서는 이 놈 들이 잔치를 벌인 건지 15방도 넘게 물다. 다른 무리의 놈들은 허벅다리와 종아리를 각에 맞춰 서있었던 건지. 직진본능이 있는 건지 7방이 빨간 일자점선을 이루고 있다. 새벽에 기상하는 나는 늘 휴대폰 불빛으로 희찬이가 잘 자는지 확인하고 나온다. 그날은 이곳저곳을 긁어대길래 설마 하며 형광등을 켰다. 역시나 천장에 붙어있는 놈들. 찢어서 불태우고 싶었다. 잔인하게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냥 전기모기채로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만 같아 다른 죽일방법을 잠시 모색했다. 하지만 이 놈들이 어딘가로 숨어있다가 다시 희찬이 피를 뽑아갈지 모르기에 어차피 방법은 전기모기채 밖에 없었다. 놈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전기모기채에 태울 때마다 탄내가 올라온다. 피를 많이 빨아먹을수록 연기가 많이 나더라. 그럴수록 분노는 더해진다. 8마리를 죽였다. 죽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그렇게 그것들이 죽는 걸 보며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놈들이 사라졌지만 짜증과 속상함은 남아있다. 사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대상은 따로 있다. 이방에 그놈들이 들어오도록 어젯밤 환기를 시킨 후 방충망을 제대로 닫지 않은 이 방의 공동주인이다. 희찬이 몸에 약을 하나하나 바르며 하나 둘 셋넷 숫자를 센다. 숫자가 더해갈수록 목소리에 짜증과 한숨이 포함된다. 도대체 몇 방을 뜯긴 거야! 귀찮아하며 그만 발라도 된다는 희찬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복식호흡으로 수를 세며 약을 바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마음속으로는  몇. 방. 물. 렸. 는. 지. 듣. 고. 있. 어.?? 자. 기. 때. 문. 에. 물. 린. 거. 야.  

애석하게도 아니  답답하게도 속으로만 생각한다. 고의가 아닌 일로 신랑에게 화를 내서 가정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든 화와 분노를 모기 놈들 한테 집중시킨다. 이 놈들아 제발 내 새끼 좀 건들지 마. 희찬이 몸에서 빨간 반점이 희미해지는 것과 분노의 깊이는 정비례한다.


학교에서 A와 B가 팔을 잡아당기며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두 아이는 넘어지고 마침 뒤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던 희찬이에게로 넘어져 희찬이 눈과 A의 뒤통수가 부딪혔다고 한다. 흰자가 보이지 않을 실핏줄이 터져 징그러울 만큼 새빨갛다. 멀리서 보아도 눈 두 덩이는 시퍼렇게 부었다. 신생아 때 엉덩이 몽고반점이 얼굴에 생겼다. 안과를 가보아야 할 것 같다며 급히 오라는 전화를 받고 학교를 달려갈 때는 아무 일만 없기를 바랐다. 다행히 눈에 이상은 없었고 걱정은 분노로 변했다. A와 B의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다. 일주일 후 하굣길 마주쳤지만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눈인사를 하고 스쳤기에 아마 아이들이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기에 A와 B를  미워할 수도 없다. 고의가 아닌 일로 얼굴을 붉혀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면 어땠을까? A와 B의 부모님께서 괜찮냐는 전화 한 통은 오지 않았을까? 말해주시지 않은 선생님도 잠시 원망을 했다가 고의가 아니기에 다시 이해가 된다. 화낼 대상은 없는데 화가 나서 미쳐버리겠다. 시퍼런 멍이 사라질 때까지 나의 분노도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차라리 모기한테 물렸으면 모기라도 원망할 텐데 원망할 대상이 없다. 원망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공허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가슴속의 화를 스스로 다스려 야한 상황이 분하기도 하다. 이 또한 눈의 멍이 희미해지는 것과 분노의 깊이는 정비례하겠지.


방충망을 똑바로 닫지 못한 신랑을 이해하는 척.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너그러운 척.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분노와 화로 가득 차있다. 그 안에는 분노와 화를 다스리려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마음속으로 이 정도 미워할 특권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인내한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는 나도 있다.


아이의 상처는 아물고 나의 분노는 분명 사그라든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위해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뒤에 숨어 아이의 상처를 차등시했다는 사실. 아이게게 향하는 미안함은 곧 나에 대한 공격이 되고 상처가 된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 분노한다. 내가 나에게 낸 상처가 더 고통스럽더라. 한동안 일기장은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원망이 가득 차있었지만 이 또한 줄어드는 중이다. 분노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과 분노의 깊이는 정비례하니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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